2023. 8. 2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57)

  본문 : 13:1-2

  제목 :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1.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저는 젊어서부터 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했고 그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될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면서 사는 것이 될까? 하는 것이 늘 궁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이것이 내 뜻이니 이렇게 하라고 말씀해주셨으면 인생이 참 쉬운 것일 텐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목사가 되는 일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셨으면 좀 더 일찍부터 더 열심히 했을 것인데 그런 일도 직접 말씀은 해주지 않으시니까 미적거리다가 좋은 세월 다 보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나가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방법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도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하나님의 뜻들을 기록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하여서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개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알고 결정하고 살아가는 삶 중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로 가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까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잘 다듬어진 큰 돌로 웅장하게 세워진 성전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좋게 보시지 않고 오히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끼고 자랑하고 사는 것 중에도 하나님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버릴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무너질 허무한 것에 너무 애착심을 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본문 1절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오셨다가 나가시는데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성전의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것 좀 보십시오. 굉장한 돌이지요! 얼마나 훌륭한 건물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성전 건물의 외형적인 웅장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성전이 당시의 건물 중에는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아주 크고 좋은 돌들을 잘 다듬어서 튼튼하게 잘 쌓았기 때문에 아주 웅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이 받지 못한 특별한 은혜를 받은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계명이나 율법’, ‘죄 사함을 받는 제사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성전을 그들에게만 주셨습니다.

 

  이 많은 혜택 가운데 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제사를 드릴 장소이고,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십계명이 거기에 있었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다해서 가장 좋은 재료로 가장 웅장하게 성전을 건축하고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성전 건물의 웅장함을 통해서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특별한 선민임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외형적인 건물의 화려함을 원하시는 것은 아니셨습니다.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고 교만해질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처음부터 화려한 건물을 원하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성전을 짓게 하신 것은 천막으로 된 성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광야에서 성막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성막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어디에 계시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성막을 짓게 하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지금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고 백성들은 그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 길을 갔습니다. 성막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덮여 있었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이스라엘 자손이 행진하였고 머물러 있으면 그들도 진영에 머물러 있었다고 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이 성막이 성전으로 건축되었는데 이스라엘 역사에 성전은 세 번 건축되었습니다.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착한 후 약 5백 년이 지난 후에 솔로몬 왕에 의하여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약 5백여 년이 지난 후 갈대아 사람들에 의하여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성전도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패하여 거의 다 죽고, 남은 소수의 사람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그다음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다시 건축하였습니다. 이 성전도 5백여 년이 지난 후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이방인들에 의해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다음이 헤롯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유대인으로 개종한 헤롯왕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뜨려 지리라고 하신 성전이 이 헤롯 성전입니다.

 

  이 세 성전이 하나같이 다 웅장하고 멋진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들도 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최고로 경배하기 위해서 세운 정말로 좋은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성전이 다 파괴되고 그것도 하나님도 모르는 짐승 같은 이방인들에 의해서 무너졌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못마땅하셔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세운 성전을 무너뜨려야만 했을까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외형만 자랑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전은 우리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의 겉모양만 자랑하듯이 우리도 겉모양만 자랑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진심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따라 사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본문 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전의 외형만 보고 극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이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무너뜨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인데 그렇게까지 저주를 하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지은 목적이나 용도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성전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 성전을 인간 자랑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왕상 8:27-28)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아주 겸손하게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너무 엄청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지은 이런 처소에 계실 분이 아니심을 고백했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백성들이 성전에 나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라는 간곡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만들어준 성전에나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그 성전을 지은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을 하늘 끝까지 높이고 인간은 그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은혜를 구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자신들이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그와 비슷합니다. 교회당이 성전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동일합니다. 교회당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 은혜에 감사드리는 곳이지만 그런 교회당을 크게 지은 인간의 업적을 자랑합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있건 말건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 복음이 있건 말건 건물이 크고 웅장하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알리는 곳에는 교회 건물과 그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 얼굴만 크게 나옵니다.

 

2) 성전 제사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1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라고 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이지만 기도하기 이전에 먼저 짐승을 제물로 바치고 죄 사함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과 만나주시지도 않으시며 그들의 기도도 들어 주지 않으십니다그래서 성전에 들어가서 제물을 바칠 때는 자신이 지은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짐승을 대신 죽게 함으로 일시적이나마 죄에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런 의미도 모르고 짐승만 잡아 바쳤으며 회개도 없이 죄를 지은 손으로 뻔뻔하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물을 바치면서 그 손으로 계속 죄를 짓는 것을 정말로 봐줄 수 없는 악한 모습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런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죄가 그렇게 흉악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를 지셔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죄를 무서워하며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뒤로는 계속해서 더 무서운 죄를 짓고 다닙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 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르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3) 성전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마가복음 1115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성전에는 성전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와서 자기 이익을 위한 장사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성전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라도 거기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지면 그 종교는 타락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도 상업화 때문에 교회가 너무나 엉뚱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도 사명감보다는 직업으로 목회를 하고 성도들도 개인의 이익을 얻고자 교회에 다닙니다. 거기에다가 이단 사기꾼들까지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가 너무나 타락하고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4) 성전을 통해서 보여주시고자 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21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21절에는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성전 되심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구약성경의 핵심은 오실 예수님에 관한 기록입니다. 성전도 결국은 예수님을 보여주는 예표가 됩니다. 성전의 모든 것들이 다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통해 교회를 통해 알려주시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교회에만 다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교회에 아니니까 교회에 오기 싫어지고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교회를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그들이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외면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없는 교회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선포하지 않은 교회를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필요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교회 그런 교회의 교인들은 이미 다 무너져버린 성전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예언하신 대로 수십 년 후에 이 성전도 로마군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성전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도 없이 2천 년 동안을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성도들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양용근 목사 순교 기념사업회 활동 보고

  지지난 주에 모처럼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여수로 순천으로 광양으로 다녀왔습니다. 주일 낮 예배는 여수 애양원교회 앞에 있는 성암교회에서 드렸습니다. 애양원교회와 뿌리를 같이하고 있어서 양용근 목사님이 조사 신분으로 그 교회 초대교역자로 기록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갑자기 갔는데 담임목사님이 설교를 부탁해서 원고 없는 설교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최경필 작가가 쓴 전남 동부지역 기독교 역사를 기록한 완전한 순교라는 책 출판 감사예배에서 책에 대한 서평을 하였습니다. 전남 동부지역 교회 역사를 순교의 역사로 보고 그 핵심에 완전한 순교자라고 할 수 있는 양용근 목사님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양용근 목사님을 호남 최초의 순교자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순천에 있는 전남 기독교방송국에서 대담프로를 녹음하였습니다. 제가 출판 기념회 때문에 순천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국에서 급하게 연락이 와서 2회에 걸쳐서 양용근 목사님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왔습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서 서평을 하면서 또 방송을 하면서 한결같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순교자 양용근 목사님이 어떤 삶을 사셨느냐가 아니고 순교에 이르기까지 지키려고 했던 그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이 무엇이었는가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순교자의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착한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어떤 업적들을 남겼는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를 순교에까지 이르게 한 그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순교자가 순교에 이르기까지 그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순교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바쳐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그 믿음이 무엇이었는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순교자의 가슴 속에 있는 믿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가 섬겨야 할 참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바른 신앙을 따라 사는 길은 참 힘든 길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길입니다. 일본강점기 때도 거의 모든 교회가 외형적인 교회를 지킨다고 하면서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참된 믿음은 버렸습니다. 그런 시대에 믿음을 지키려고 했던 양용근 목사님이 가신 길은 험하고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이런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의 목회가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만남이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여행에 혼자 긴 시간 운전하면서 자꾸 입에 흥얼거려졌던 노래가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노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을 계획해 놓으셨네라고 시작되는 노래입니다.

 

  백여 년 전에 할아버지가 초대교역자로 시무하던 교회에 그 손자가 그 후배 성도들을 만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30년 전에 이곳에 와서 광성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또 새로 오신 성도들도 만나고 지금도 여기 계신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남만 계획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만남을 통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다 계획하셨다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순교 신앙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신 것도 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이라고 믿습니다.

 

  더 나가서 미력하지만 서로 손을 잡고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순교기념사업회를 통하여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 광성교회와 성도님들이 이 일을 위해서 응원해주시고 뜨겁게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사명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