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41)

  본문 : 막 10:28-31

  제목 :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8.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제가 요즈음 기회만 있으면 양용근 목사님의 순교 역사를 정리한 소책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목사님의 순교 역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양용근 목사님을 알리자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가졌던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리려고 합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기에 순교하면서까지 그 믿음을 지키려 했는가를 알려서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의 위대함을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순교 신앙이 참 소중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요즘 같은 세상에 순교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다 똑똑해져서 바보처럼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 손익 계산을 하면서 삽니다. 지금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를 잘 따져서 철저하게 이익이 되는 일만 따릅니다. 바로 지금 이익이 되는 일이나 재미가 있는 일만 따르려고 하고 나중이나 미래에 천금을 준다고 해도 지금 이익이 없으면 따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 사도의 질문에도 그런 이해타산을 따져보는 질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르는 제자의 입에서 자신들의 희생에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데 그 보상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헛고생만 하는 것인지 정말로 그 희생에 합당한 보상이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희생하고 교회에 다니는데 과연 그럴만한 대가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괜히 쓸데없는 고생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실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대답을 통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충분한 대가가 있는 것임을 살펴보시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본문 28절에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앞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과 비교해서 자신들은 그렇지 않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제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못해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부자 청년과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뒤에 숨겨진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냥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보상이 무엇인지를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이 베드로의 질문을 기록하면서 그 뒤에 숨겨진 의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19:2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부자 청년처럼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고 재물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그 보상이 무엇인지를 예수님께 여쭈어본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버린 것에 대한 보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도 충분히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가족도 직업도 재산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 외에 모든 제자가 다 순교로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도 시대나 초대교회 시대와는 다릅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도 특별한 사람 외에는 열두 제자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때로는 취미생활도 하면서 즐겁게 살아도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이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아끼고 사랑하고 좋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방해한다면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끼는 손이라도 발이라도 잘라버리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말로 중요한 눈이라도 뽑아버려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는 것이 천국에 가려고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늘 작은 죄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작은 죄를 짓게 하고 작은 재미에 빠지게 해서 점점 크게 만들고 결국은 그런 것으로 인해서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이런 작은 죄부터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주님을 따를 것인가 세상의 재물을 따를 것인가에 대해 양자택일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세상의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세상의 좋은 것들을 버린 자는

 

  본문 29절에서 31절에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된 것이 아니라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백 배나 보상을 받고 다음 세상에서도 더 엄청난 것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건 진짜 중요한 말이며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진리임을 말씀하실 때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라는 말을 쓰십니다.

 

1) 나와 복음을 위하여

  무엇을 위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버려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됩니다. 가족을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재물도 잘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소중한 것을 버릴 때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를 마태복음에서는 내 이름을 위하여라고 했고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나 복음이나 예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 나라는 다 같이 연결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복음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이고 예수님의 이름의 뜻도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서 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느 것을 위한다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 나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세상의 좋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 함께 사는 가족들입니다. 그 가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논이나 밭입니다. 이런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복음을 위해서라면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 세상에서 받을 보상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백배라는 말은 성경에서 농사짓는 일을 비유해서 쓰고 있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 배나 얻었고”(26:12-13)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농사를 지었는데 그해에 백 배나 추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옥토의 비유에서도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13:8)라고 했습니다. 작은 씨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희생하면 그로 인해서 삼십 배 육십 백 배까지 결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백 배의 결실이라는 것도 이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면 그로 인해서 백 배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 때나 그리고 특별히 기독교가 박해를 받을 때는 이 세상에서의 보상은 전혀 얻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통 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작은 손해를 본다면 그로 인해서 얻는 것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면서 희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일 먼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손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에 안 오는 그 시간에 세상에 있으면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휴일이라 대부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작은 즐거움 평안함 그런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거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귀한 일입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고 유익한 일입니다.

 

  또 희생하는 것이 있다면 헌금하고 좋은 일 하는데 돈이 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희생에 대해서 충분한 보상을 하십니다. 그 돈을 세상 쾌락을 위해서 쓴다면 우리를 죄악에 빠지게 하지만 하나님께 드릴 때 그로 인한 좋은 것들이 백 배나 넘치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희생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착하게 사는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은 손해가 되는 일처럼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악하게 삶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를 생각하면 착하게 사는 것이 매우 유익합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사탄의 종으로 삽니다. 사탄이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이런저런 죄들을 짓게 만들고 타락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삽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고 유익하고 보람된 삶인지를 알고 그런 좋은 길로 가면서 세상을 살게 됩니다. 그런 평안함으로 인해서 마음도 즐겁고 몸도 건강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주의해야 할 말씀은 박해를 겸하여 받고라는 말씀입니다. 백 배의 결실이 있기까지는 한 알의 씨앗이 희생하는 것처럼 적은 희생은 있어야 이런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교회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복을 받기 위해서는 때로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희생이나 헌신의 삶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받는 기쁨이 배가 되고 견고해집니다.

 

  마가가 특별히 이 말씀을 추가한 것은 이 마가복음이 당시 로마에서 박해를 당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쓴 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고난도 있음을 알리는 것이고 그 고난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말씀해주기 위해서입니다.

 

3) 다음 세상에서 받을 보상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수고한 것의 백배나 보상을 받게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복이 백배라고 해도 그냥 길어야 백 년 동안 받을 수 있는 복이지만 다음 세상의 복을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복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백이라는 숫자를 수백 개 쓴다고 해도 표시할 수 없는 영원한 세상에서 무한대의 복을 받으면서 살게 됩니다.

 

  그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서 백 년 내내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수천 배 수만 배 셀 수 없는 무한의 복이 그 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뿐만 아니라 그 품질이 엄청나게 다른 그런 삶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 복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19:28)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 우리도 보좌에 앉아서 왕 노릇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왕이 된다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왕과 같은 지위에서 왕과 같은 대접을 받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평가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정죄를 당하고 살았지만 그때가 되면 우리가 심판하고 정죄하는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에서의 삶은 우리가 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최고의 것으로 표현함으로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최고의 삶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삶이 실패로 끝났다고 해도 최고의 것을 얻게 되고 꼭 얻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31절에 기록된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보고 마치겠습니다.

 

  여기 먼저 된 자는 그들이 가진 재산 정도나 교육받은 정도나 지위나 명성이나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을 말합니다. 선한 일도 많이 하고 보람된 일도 많이 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꼭 천국에 먼저 들어가거나 좋은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외형적인 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좋은 일도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세상에서 좋은 일 많이 하지 못해도 그 마음에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가식적인 믿음으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외형적으로는 초라하지만 그 속에 진실한 믿음을 가진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외형적으로도 좋은 일 많이 하시고 마음속에도 진실한 믿음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는 꼭 확실히 들어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순교의 길은 생각조차 하지 못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작은 것을 희생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은 비교할 수도 없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이 세상에서도 백 배나 받고 다음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토록 왕 노릇 하면서 살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에 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만 배나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