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2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96)

본문 : 행 15:22-26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

 

“22.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예루살렘 총회를 마치고 총회장격인 야고보가 판결문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문을 편지에 기록하여 이방인의 교회에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 편지를 가지고 갈 사람을 뽑았는데 바사바라고 하는 유다라는 사람과 실라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바나바와 바울이 다시 돌아갈 때 함께 보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이미 살펴보신 대로 초대교회 최초의 총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의 총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총회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가?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이런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초대교회 총회의 중요한 결정사항이었고 우리가 배운 로마서나 다른 서신서들의 핵심적인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일 종교 개혁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부르짖는 핵심구호였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사항을 전달함에 있어서 누구를 보내는가도 중요하고 어떻게 전달하는가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감당할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보냈고 결정사항들을 문서화해서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는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그들을 대표해서 서신서를 가지고 갈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가는 서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본문 22-23절에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한 교회의 구성원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구성원은 사도, 장로, 교회, 인도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제자를 말하고 장로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즉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인도자는 어떤 직분이라기보다는 앞장서서 일하는 지도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특별하게 살펴볼 것은 이들이 모두가 서로를 형제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디옥에 보내기로 선택한 인도자인 바사바와 실라도 형제 중에 뽑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뽑아서 보내는 사도와 장로들도 형제라고 했고 성도가 된 이방인들도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라는 말은 원래 한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맺어지는 사이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관계이고 사람들이 갈라놓을 수 없는 사이가 형제지간입니다.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며 도우며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형제간에 잘 해야 한다. 형제간에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런 교훈이 별로 없습니다.

 

잠언에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친구는 변함이 없이 서로 사랑해야 하고 형제는 위급할 때 서로 돕기 위해서 있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는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에 더해서 위급할 때 자기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함께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형제지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제는 사촌이 아니라 형제가 논을 사도 배가 아픈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 피를 나눈 사이이고 제일 가까운 사이이고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와야 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형제라는 말을 더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방인들과 구별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서의 형제지간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민족의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오늘 본문과 같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도가 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형제자매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도 육신의 형제자매 못지않게 아주 중요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형제자매보다 더 가까운 형제자매들이 되었습니다. 육신의 형제자매보다 더 사랑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더 힘껏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형제자매보다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호칭을 장로님 집사님 보다 형제자매라는 호칭을 더 잘 쓰는 교회도 있습니다. 어떤 이단성이 있는 교회에서는 아예 목사장로 호칭도 없애고 모두들 형님 동생 오빠로 부른다고 합니다.

 

물질도 네 것 내 것 없이 서로 통용하고 목사님이 돈 벌어오면 장로님이 쓰고 장로님이 돈 벌어오면 집사님이 쓰고 누가 돈을 벌어 오든지 서로 나누어 쓰면서 산다고 합니다.

 

우리도 한번 그래볼까요? 어차피 우리가 다 천국에서 같이 살 사이인데 돈 벌어서 같이 쓰면서 살아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천국 같은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그런 좋은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우리 인간이 타락한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내일부터 그렇게 하자고 약속하면 모든 사람들이 가서 돈 벌어올 생각은 하지 않고 놀고 있다가 남이 벌어 온 돈 쓰려고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 벌어오면 다른 사람이 다 쓸 텐데 고생하면서 일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의 형제들은 그렇게 서로 나누는 형제가 아니라 각기 세상에서 살아가되 신앙적인 문제에 있어서 서로 도와주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가 있으면 물질적으로도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사이가 교회 안에 있는 형제자매 사이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생김생김도 서로 다르고 학벌의 차이 빈부의 차이도 있고 비교적 착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좀 까칠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고 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한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신앙이 좀 연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건강상으로 여러 가지 형편에 연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연약한 사람을 우리는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사람들을 더 애처로운 마음으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도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모든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서 오히려 더 연약한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본문 24절에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과거에는 짐승처럼 생각했던 이방인들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들이 주안에서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안디옥교회에 가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을 괴롭히고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서 다시 평안함을 누리며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편지를 써서 사람들 편에 보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은 거짓 선생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성도들을 괴롭히고 혼란에 빠뜨립니다.

 

똑바로 살아야 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천국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바보다. 세상에서 복도 받고 성공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짓선생들이 교회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런 거짓 선생들의 잘못된 주장에 현혹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사이비들에게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입니다. 이런 혼란에 빠지지 않고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는 것이 형제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의 문제점은 교회가 장사꾼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에게 하기 위해서 목 좋은 곳에 큰 교회당을 짓고 모인 사람들에게 많은 헌금을 하게하고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사업가들처럼 교회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눈에는 교인들이 장사해주는 손님처럼 보일 것입니다. 손님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서 온갖 거짓선전들을 다하고 온갖 그럴듯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런 장사꾼들의 특징은 장점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 불리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우선 좋은 것만 이야기해서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런 듣기 좋은 이야기에 속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가지고 설교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놓고 그 해석을 자기 유익한대로 하는 사람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장사꾼보다 더한 사람은 사기꾼입니다. 사기꾼은 거짓말로 시작을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처럼 꾸밉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이단들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

 

본문 25절에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된 것처럼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도 형제로 인정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이 이상한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확인하여 편지에 써서 사람들 편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무슨 증명서를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미리 아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보냄으로 함께 간 사람들이 거짓선생이 아니고 예루살렘교회에서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바나바와 바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그런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전적으로 신임한다고 하면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의 말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고 따라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진리를 바르게 구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마다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누가 하는 말이 진리인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진리를 구별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그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조심을 할 것은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신실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가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익이 없다고 해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희생과 헌신이 없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이익을 위해서 거짓 복음을 전하기 쉽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렇게 전해진 것은 이 복음을 위해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거짓 복음을 전할 동안 오직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복음을 우리가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순교자의 후손으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저도 그런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면서라도 이 복음을 바르게 전하고 싶은 열정이 제 가슴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함께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에게도 주신 큰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생명까지 아끼지 않았던 신앙의 선배들을 뒤따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 멋진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 서로가 끝까지 이 믿음을 지키며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을 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거짓선생이나 이단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바른 진리 안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전한 이 복음을 우리가 믿고 따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를 하고 사는 신실한 성도님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