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3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47)

  본문 : 행 21:27-34

  제목 :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27.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사도 바울이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온 것을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환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되는 것이 있었는데 예루살렘에 교회에 있는 유대인들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율법이나 제사제도나 관습들을 지키지 말라고 선동하여서 모세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으로 오해를 하고 만나면 혼을 내주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를 비롯한 교회의 장로들이 사도 바울에게 서원한 사람들과 함께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게 하고 그로서 그들이 바울도 율법을 지키고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는 사람으로 알게 하여서 잘못된 오해를 풀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서원을 하고 그에 따른 결례를 행하는 것 자체가 복음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또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배반자로 여겼고 유대교를 없애려고 하는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잡아서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부터 그런 유대인들과 사도 바울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유대교를 옹호하고 율법과 성전을 옹호하는 유대인들과 하나님께서 율법이나 성전을 통해서 주시고자하는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사도 바울과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본문 27-3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도 성전에 왔다가 사도 바울을 발견하였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잡아서 죽이든지 항복을 받든지 하여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드디어 만났습니다.

 

  그 때가 유월절 절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절기를 지켰고 사도 바울도 더 많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절기에 맞춰서 예루살렘에 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을 충동해서 사도 바울이 율법과 성전을 비방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사도 바울을 붙잡아서 성전 밖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없으니까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거기 모인 유대인들이 나쁜 사람들이거나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에 열심을 냈던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저 멀리 아시아(지금의 터키 지방을 말함)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만사를 제쳐놓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의 죄상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율법을 비방하고 이곳(성전)을 비방하고 헬라인 즉 이방인들과 함께 다니면서 이방인들을 데리고 성전에까지 들어와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주 특별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선택해서 특별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주셨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신들에게만 율법을 주셨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을 주셨다는 것이 엄청난 자랑이었고 그들의 자부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거기 따른 여러 가지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했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의인이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죄인으로 죽임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신 때가 언제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흉년을 피해서 가나안 땅에 살지 않고 애굽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애굽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서 400여 년 동안을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거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만 섬기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기 위해서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애굽에서 애굽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서 400년 동안을 사는 동안 그들에게는 노예로서의 근성이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지켜주는 법도 없었습니다. 인간이 아닌 개나 돼지와 같은 짐승처럼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아야 하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서 사는 법을 만들어주셨는데 그것이 율법입니다. 애굽 사람들처럼 온갖 잡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노예에게 대하는 것처럼 함부로 남의 것을 착취하고 때리고 죽이는 비인간적인 삶을 살지 말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두 마디로 집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주신 법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입니다. 노예처럼 살지 말고 노예를 학대하는 애굽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자유인으로서 자유를 누리며 서로를 사랑하면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처럼 잡신들을 섬기지 말고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심지어 하나님을 섬길 때도 우상숭배를 하는 것처럼 섬기지 말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율법의 노예가 되어서 또 다른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고 율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착취하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니까 율법을 지키기는 하는데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지키는 시늉만 합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은 없고 공의만을 내세우고 자기 의만 세우고 다른 사람은 정죄하는 일에 사용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율법을 다 잘 지킬 수가 없는 타락한 인간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식적인 사람이 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 더 큰 죄인이 되게 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합니다. 율법의 가장 큰 뜻이 이것인데 이런 큰 뜻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가졌다는 자부심만 내세우고 그 뜻을 알려주는 사도 바울을 오히려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유대인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율법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서 주신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율법 앞에서 내 모습을 비추어 보고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이 죄악에서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분이며 그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를 알 수 있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 몇 가지 지켰다고 착한 일 좀 하면서 살았다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속에는 시커먼 죄악들을 가지고 살면서 겉으로 착한 척해서 자신은 의로운 사람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알량한 몇 가지 의로움 때문에 십자가를 붙잡지 못하고 믿음의 위대함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며 가장 어리석은 바보들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따라 바른 삶을 삶으로 세상의 종 사탄의 종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에서의 제사도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알고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 짐승처럼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죄인이며 장차 저 어린 양으로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실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도 하나님의 뜻과 달랐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불러 주셨는지를 그들은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복을 주신 것은 그 후손들을 통해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이방인들을 멸시했고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죄로 여겼습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을 유대인을 배반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런 마음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 구원 받으면 되고 나만 신앙생활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복음을 주신 것은 특별히 우리 광성교회처럼 복음을 확실히 알게 해 주시고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해 주신 것은 이 복음의 위대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복음을 받고 이렇게 믿음이 위대한지를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런 귀한 일을 하는 교회를 위해서 충성된 일꾼이 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기쁘게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이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본문 31-34절에 “31.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도바울 죽이려고 달려들자 이로 인해서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동이 천부장에게까지 들렸다고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치안유지를 위해서 로마 군인들이 파송되어 있었습니다. 그 부대의 천부장은 부하를 천여 명을 거느린 부대의 장을 말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23장에서 글라우디오 루시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소란한 현장의 소식을 들은 천부장이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데리고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셨습니다. 천부장이 달려가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치고 죽이려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이 사도 바울을 쇠사슬로 묶으라고 명령하고 그들에게서 격리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이렇게 사람을 치고 죽이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거기 모인 유대인들이 뚜렷하게 바울의 죄상을 말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이런 말로 어떤 사람은 저런 말로 소리만 지르니까 진상을 알 수가 없어서 바울을 부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잘 따져보고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를 잘 살펴보고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누군가가 선동을 하니까 그 말만 듣고 흥분해서 이성을 잃고 달려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같이 시내로 다니는 것을 보고 이방인을 성전까지 데리고 갔다고 오해를 하고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사도 바울이 왜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바울을 싫어하는 몇몇 사람의 선동에 의해서 아주 나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참 이성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가 못합니다.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그냥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들이 하면 그것이 유행이라고 다 따라하고 남들이 입고 다니고 남들이 들고 다니면 다 그냥 따라하려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좀 생각을 해보고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따져보고 따라하든지 말든지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지 싫어하실 일인지를 분명히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교훈은 이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성전에서 끌고 나와서 죽이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에서 파송된 군대의 천부장을 동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일에 개입을 하시지만 특별히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일에 함께 하셨듯이 우리가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우리의 삶에 역사하십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셔서 천부장을 통해서 그들 손에서 사도 바울을 구해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알지 못하고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이 성경의 핵심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역사하심을 믿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힘써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