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46)

  본문 : 행 21:22-26

  제목 :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22.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3차 전도여행을 마친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고 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의 지도자와 장로들 그리고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온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지만 걱정이 되는 일이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분명히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사도 바울을 만나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인데 어떻게 하면 그 오해를 풀고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인가가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이디어 하나를 내어놓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유대인들이 하는 결례를 행하게 하여서 바울도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견에 동의하고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을 따라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그 결례가 복음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따라 결례를 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나 관습을 무조건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율법이나 관습을 주신 뜻을 바르게 이해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왜 율법을 제정해 주셨는지 왜 제사를 드리게 하셨는지 왜 정결의식을 행하도록 하셨는지를 바르게 알고 행하자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모르고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행하던 것을 바로잡고 그를 통해서 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사도 바울의 신변을 염려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와 장로들이 사도 바울에게 결례를 행하여 오해를 풀라고 제시했고 사도 바울은 이를 흔쾌히 수용하고 결례를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본문 22-24절에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변을 염려한 야고보와 교회 지도자들이 유대인들의 관례에 따른 결례를 행하라고 권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그 오해를 풀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모세의 율법이나 관습이나 할례를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오해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길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이야기 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성경 몇 군데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할례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갈 5:2)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 6:1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할례를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할례를 고집하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아무런 유익이 없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관습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전 10:25-27)

 

  음식을 먹는 것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이나 제사음식을 먹는 것이나 그것 자체 가지고는 문제를 삼지 말고 그런 관습을 꼭 따를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양심에 따라서 행하라고 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4)

 

  지난주에 인용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제 율법과 죄와 죽음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며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갈 3:24-25)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즉 초등교사가 되어서 우리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고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우리가 더 이상 그 초등교사 즉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반복해서 이렇게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하면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흉악한 죄의 사슬에서 자유 함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강조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능력을 축소시키고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쁜 짓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비난하다가 보니까 행함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들이 하는 말이 힘이 실리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르게 사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복음의 능력을 부인하고 행함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똑 바로 살아야 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을 보면 물론 그 중에 비교적 바른 삶을 살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도 혹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도 온갖 욕심 악한 생각들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선한 척 바르게 사는 척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 죄인일 뿐입니다.

 

  회개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평가 기준으로 볼 때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입니다. 어차피 해서는 안 될 불륜인데 내가하면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서 죄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죄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착각하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긴다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차라리 포기하고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가를 인정하고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구원을 받는 확실한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 제일 확실한 구원의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관하여 할례에 관하여 관습에 대하여 이렇게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제시한 결례를 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동안 가르쳤던 자신의 생각을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이나 관습을 폐하자고 하는 것은 율법이나 관습 자체를 무익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의롭게 되는 것에 아무런 유익이 없고 또 유대인들이 율법이나 관습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을 제정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행하고 또 율법을 주신 가장 큰 뜻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서원을 한 사람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의 권유에 따라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제시한 때로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서원’이라는 말은 “기도하다”, “원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하기 원하고 그것을 위해서 결심한 것을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 앞에서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따르는 것 보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한 것이기 때문에 서원은 반드시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원은 부모님들이 자녀에 대하여 한 서원이 있고 본인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서원도 있습니다. 일평생을 약속하는 서원도 있고 시간을 정하여 일시적으로 하는 서원도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모님이 아이를 낳으면서 목사로 주님 앞에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거나 본인이 결심을 하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평생의 서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교회 건축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것이나 어떤 일정한 기간 동안 특별하게 살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도 서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서원을 한 사람들이 서원한 사람으로서의 특별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는 의식을 결례라고 합니다. 서원한 사람은 주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거나 독주를 마시지 않거나 시체를 만지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서원한 사람은 평생 그렇게 살았고 일시적으로 기한을 정한 서원은 그 기간이 끝이 나면 머리를 깎고 끝났음을 보고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그 기간 동안 금식을 하거나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거나 오락이나 가무를 삼가거니 특별하게 선한 일을 하면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망설이지 않고 서원한 사람들과 함께 이런 결례를 행한 것은 그것이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특별한 삶을 살고 약속이 달성되었을 때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이런 것 자체는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서원들을 하고 살아야 됩니다. 평생을 해야 하는 목회자가 된다든지 하는 그런 서원은 신중하게 잘 생각하고 하셔야 됩니다. 부모님들이 너무 쉽게 서원을 하고 본인이 너무 쉽게 서원을 해서 후회를 하거나 실천을 하지 않거나 하고 나서도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평신도로서 직분을 맡거나 교회를 위해서 충성을 하기로 서원을 하는 일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냥 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정하고 결심을 하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사는 일에 있어서도 서원을 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술 마시고 담배피우는 것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고 안마시고 안 피우면 더욱 좋습니다. 술이나 담배가 우리의 육신의 건강이나 정신의 건강 더 나아가서 신앙에 유익이 되지 못하고 해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술이나 담배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다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예배를 드리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본문 25-26절에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유대교 지도자들이 사도바울에게 결례를 행하라고 하면서 그것이 율법이나 할례나 관습을 지키는데 대하여 유대인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이지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해야 된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라고 하면서 과거에 사도 바울과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과 회의를 통해 내린 결론에 변함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사도행전 15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때에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예루살렘의 교회의 일부 주장 때문에 바울과 일행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회의한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내린 결론이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다 지키지 않아도 되고 다만 성도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오늘 본문에 그 결론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 것,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 것, 그리고 음행을 피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금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은 금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또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금한 것은 생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음행을 금한 것은 가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구원을 떠나서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주셨고 그 원칙이 모든 율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고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며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더 잘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지만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쉽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 줄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진실 되게 고백하는 사람은 그렇게 함부로 아무렇게나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엄청난 것임을 안다면 보란 듯이 더 바르게 더 선하게 더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저들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더 바르게 더 잘 살아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고 전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율법이나 할례나 유대인의 관습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바르고 더 선하게 살면서 더 좋은 일을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을 믿는 믿음은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신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이런 큰 구원을 받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더 잘 실천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