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

  본문 : 빌 4:1-3

  제목 : 멍에를 같이 한 복음의 동역자.

 

 

  “1.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요즈음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세계 전도여행을 하는 장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도 바울의 제 3차 전도여행의 끝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로마로 끌려가서 순교를 하게 됩니다. 로마 감옥에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지만 또 하나 의 중요한 일은 서신서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감옥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이 네 권의 책을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감옥에서 그동안 복음을 전하고 세운 교회들을 생각하면서 또는 간간이 전해오는 교회의 사정들을 듣고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오늘 읽은 빌립보서도 옥중서신으로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기록한 서선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그리워하면서 함께 일했던 동역자들을 추억하고 그들을 도우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광고를 드린 것처럼 우리교회에 장로님 두 분을 투표하는 공동의회를 하는 날입니다. 또 장립집사 두 분도 곧 투표를 하여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의 직분자들을 사도 바울은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종합해보면 이 직분자들을 “멍에를 같이 한 복음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멍에를 같이 한 복음의 동역자”입니다.

 

  여기 동역자라는 말은 “함께 일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돕는 자”, “함께 수고하는 자”라는 말로도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함께 일을 하면서 함께 수고하고 서로 도와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동역자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함께 힘을 합하여 함께 수고하면서 서로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입니다(동역의 대상).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복음의 동역자가 되어서 일을 하는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냥 아무에게나 전하는 것 같지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요 너무나 귀한 존재들입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최선을 다하여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이루고 사는 것이 너무나 귀한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1) 사랑하는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 자신이 집적 전도를 하고 양육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그들을 낳은 자식과도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핍박을 당해 가며 매를 맞아가며 붙잡혀 감옥에 끌려가면서 그들을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던 바울이었기에 그들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진한 애정을 가진 주안에서 한 형제 된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나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그의 삶의 열매요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있어서도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면에 있어서도 그들이 주 안에서 구원을 받게 했기 때문에 그의 삶의 목적에 부합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왔을 것입니다.

 

3) 나의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시대에 면류관은 운동 경기에 우승을 한 사람에게 씌워주는 것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승리와 기쁨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감옥에 있는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겼지만 자신은 승리자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스럽고 늘 보고 싶어 사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기쁨이었고 그의 삶의 승리의 면류관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복음의 동역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는 것은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며 중요한 직분입니다.

 

  우리도 세상일에서는 실패자로 살 수도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으로 별 볼일이 없는 사람으로 무시당하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의 일에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되면 승리자요 성공자요 가장 보람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 서라, 같은 마음을 품으라, 멍에를 같이하라(동역의 자세).

 

  본문 1절 하반절에서 3절 상반절에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성경의 본문을 그대로 설교를 하는 강해설교가 아니라 본문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오래전이지만 이미 우리교회에서 강해설교를 했던 부분입니다.

 

  이 본문에서 교회의 동역자들이 어떤 자세로 일을 해야 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멍에를 같이한”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직책을 맡든지 마음에 두고 행동을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역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말씀해줍니다.

 

1) 이와 같이 주안에 서라

 

  여기 “서라”는 말은 “진실 되게 서라”, “굳게 서라”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 당시에 전쟁용어로 쓰던 말이라고 합니다. 병사가 전쟁 중에 적군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맡고 있는 초소에 굳게 계속해서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하던 말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와서 죽음을 눈앞에 둔 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주안에 굳게 서 있으라고 당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동의 적인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의 여러 가지 형편을 다 알고 조금만 틈이 있으면 그 틈을 타고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생활환경을 빌미로 때로는 인간관계를 빌미로 때로는 연약한 우리의 습성을 빌미로 때로는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빌미로 우리를 넘어뜨려서 우리로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굳게 서라고 할 때 ‘주 안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홀로 설 수는 없습니다. 주안에 선다는 것은 마치 포도나무가 그 가지에 붙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굳게 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늘 의지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늘 주님을 따라 주님을 닮아가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일꾼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입니다.

 

2)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여기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말은 주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된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마다 각각 다양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목적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르고, 의의 기준도 각각 다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같은 마음이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중심이 되는 교회의 일을 함에 있어서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위대한 믿음과 진실한 고백”을 신앙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고 그 믿음을 진실 되게 고백하는 첫걸음이 예배라는 것을 알고 믿음과 그 고백이 되는 예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믿음의 핵심인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것이 우리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런 교회의 일꾼이 되려면 이런 일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먼저 실천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도록 일깨워주고 도와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일꾼의 사명입니다.

 

3) 멍에를 같이하라

 

  옛날 시골에 사셨던 분들은 소에게 멍에를 씌우고 쟁기를 끌게 하여 논이나 밭을 가는 장면들 보셨을 것입니다. 보통은 소 한 마리가 끌지만 어떤 때는 두 마리에게 같이 쟁기를 씌우고 끌게 하기도 합니다. 북극이 가까운 추운 지방에서는 썰매를 타고 가는데 수십 마리의 개들이 함께 썰매를 끌게 합니다. 한두 마리로 하면 힘들겠지만 수십 마리가 함께 끄니까 쉽게 빨리 잘 갑니다. 교회의 일도 그렇게 여럿이서 함께 멍에를 매면 쉽다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에는 바울과 함께 멍에를 같이 멘 사람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힘쓰는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도와 가면서 함께 교회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멍에를 같이 한 사람이나 동역자나 비슷한 말입니다. 교회는 어느 한사람의 힘으로 되어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어느 한사람에 의해 어느 한사람을 위한 그런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멍에를 짊어지고 함께 동역자가 되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 교회의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는 일도 독불장군이 없듯이 교회의 일은 더욱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서로 서로가 힘을 합하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때 교회는 바르게 서서 전진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과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위하여(동역의 핵심)

 

  본문 3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동역의 대상이 누구인지 동역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는 동역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멍에를 메고 일을 하는데 그 일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1)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라

 

  사도 바울이 핵심적으로 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목적이며 교회가 해야 할 핵심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가장 귀한 것이며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최고의 복입니다.

 

  교회가 이 귀한 복음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갔을 때 타락했고 그 타락한 교회를 다시 개혁하기 위해서 칼빈이나 루터 같은 개혁자들이 나서서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다시 한 번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교회들도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많이 변질된 것을 복음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다가 뭘 조금씩 가져다 붙입니다. 복음에 세상의 축복을 붙이고, 복음에 세상의 재미도 붙이고, 복음에 세상의 성공도 붙이고, 철학이나 도덕이나 종교적 행위들을 첨가해서 복음의 핵심이 잘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데 알고 보니까 제가 마신 커피는 커피가 아니었습니다. 커피에다가 부드럽게 한다고 프리마를 넣고 달콤하게 한다고 설탕을 넣어서 먹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가장 비율을 잘 맞춰서 봉지커피를 만들었는데 미국 사람들이 반할 정도로 맛이 있습니다. 자판기까지 있어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커피가 나오고 아주 손쉽게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커피가 아니고 설탕이나 조미료 물에다가 커피를 조금 넣은 가짜 커피이고 저같이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는 사람은 마셔서는 안 되는 몸에 해로운 커피랍니다.

 

  오늘날 잡탕이 섞여서 변질 된 복음은 오히려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것인데 어디를 가든지 쉽게 그런 변질된 복음을 듣게 됩니다. 들을수록 우리의 영혼을 해치는 것을 복음이라고 듣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오직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 귀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왜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하면 바른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입학 합격자 명단격인 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되게 하는 일이 너무나 귀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인생이 살아가면서 시험을 여러 번 칩니다. 예전에는 중학교부터 시험을 치러서 입학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고등학교 입학시험 대학교 입학시험 회사에 들어갈 때 입사시험 승진시험 무슨 자격증시험 운전면허시험... 많은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해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그 합격자 명단에 우리의 이름이 있는가, 없는가는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저도 늦게 공부를 하면서 여러 가지 시험을 치렀습니다. 대학원 입학시험 졸업시험 그리고 목사고시를 치렀습니다. 그 때마다 합격자 명단에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마음이 조바심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 없는가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온 최고의 최종의 평가가 될 것입니다. 이 시험에 불합격을 한다면 참으로 비참한 삶이 시작되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 시험을 어려운 길로 가다가 실패를 하게 할지 아주 쉽고 확실한 길로 가게해서 확실히 합격을 할 수 있게 할지 그것이 교회가 가진 사명이고 교회의 일꾼이 가질 사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길은 너무나 쉽게 너무나 확실하게 합격의 길로 인도하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믿기에는 그 합격자 명단 아래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한 귀한 일들이 함께 기록이 되어서 우리가 천국에 갈 때 칭찬과 상급을 줄 근거로 삼을 것을 믿습니다. 무엇을 제일 잘했다고 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 최고로 잘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는 우리가 바른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을 잘 한일이라고 해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바르게 전파하는 교회의 동역자가 되어서 충성한 일이 최고의 칭찬이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일에 동역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멍에를 함께 지고 갈 복음의 동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교회가 복음의 동역자인 장로를 선출하는 날입니다. 장로로 선출되신 분이나 모든 성도들이 다 복음의 동역자가 되어서 마음이 하나 되고 멍에를 함께 메고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