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30.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36)

  본문 : 행 20:22-24

  제목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올 한해도 이렇게 다 가고 있습니다. 이 한해를 보내면서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한해를 보람되게 보냈는가 아니면 허송세월만 했는가를 점검해 보고 새해에는 더욱 보람되고 알찬 삶을 살도록 각오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오늘도 보람되고 복된 날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하루하루 그냥 보내지 않고 뭔가 좋은 일 보람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금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해주셨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논문이 통과되고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식을 했습니다. 요즘 흔한 것이 박사학위고 누구나 받는 것 같은 것이 박사학위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그냥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내에 있는 정규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할 정도로 열 명쯤 도전하면 한두 명 받고 그것도 빨라야 5년이고 7-8년 걸려서 받는데 4년 만에 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 논문이 순교하신 할아버지 양용근 목사님의 순교역사를 연구한 논문이고 그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게 되어서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보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논문의 내용을 강의나 설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25년 목회생활 하는 동안 처음으로 노회장에 피선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노회장이지만 차기 노회장으로 피선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천노회 교역자회 회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의 목사로서 또 제가 신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기수가 낮은 목사로서 많은 선배들이 있음에도 저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이제 두어 달 되었는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설교도 하고 회의도 참석하고 어려움을 당한 목사들도 돌아보고 하는 여러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고 많은 기회들을 주셨는데 거기에 걸맞게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받은 것은 많은데 그 많은 것들을 보람 있게 쓰지 못하고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많이 더 잘 전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의 공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저와 함께 해주셔서 이런 일들을 감당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힘은 성도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함께 해주지 않으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에게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제 만 4년만 공식적으로 교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면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더 알차게 더 보람되고 좋은 일 선한 일 많이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이런 좋은 일에 더 많은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직분들도 맡으시고 이런저런 일에도 더욱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을 때 기회를 주실 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서 사도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놓고 마지막으로 유언적인 설교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과거를 회상하였고 오늘은 현재의 심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심정을 말하면서 특별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제목으로 우리에게도 달려가야 할 길과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고 새해를 위한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본문 22절과 23절에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인간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까지 그리고 땅 끝까지 가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죽음이 두렵기도 하고 이 세상의 일들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아쉽기도 해서인지 망설이며 머뭇거리기도 했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뒤로하고 오늘은 그 길로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에 가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고 만나는 사람마다 거기에 가면 결박을 당할 것이고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은 하는데 그러나 나는 그 길을 가야 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각오를 이야기 하면서 성령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각 성에 사람들이 결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증언하는 것을 그 사람들의 말로 받지 않고 성령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미리 사도 바울에게 말씀을 해주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것을 미리 각오해라 그런 일들이 우연한 일이 아니고 다 내 계획 속에 있는 것임을 알라고 미리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도 자신 스스로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에 매여” 즉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의해서 성령님의 강권하심에 따라서 결정을 한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도 때로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때로는 설교 말씀을 통해서 때로는 주변의 형편이나 환경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목사 초창기에 다른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닭울음소리를 듣고 사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를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닭울음소리를 많이 들려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을 때 들려주신 것이 닭울음소리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닭울음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며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우연이겠지 좋은 일이 생겨나도 그것이 우연이겠지 하고 넘겨버리면 성령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 거기에 닭울음소리 같은 것들을 준비해두고 계십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때, 또 일할 기회를 주시려고 할 때도 거기에 그런 신호등 같은 것들을 마련해두고 계십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나에게 주신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개인의 심령에도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늘 두 가지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악 된 본성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또 하나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선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늘 이 두 가지 생각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 고집대로 내 생각대로 살지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지를 결정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 생각을 따라 아무렇게나 죄도 지으면서 사는 길은 쉽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미래가 없는 길입니다. 그런 죄들로 인해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들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발로 차버리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은 때로는 힘든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길은 지금으로서는 힘들고 어렵게 생각이 되지만 그 길이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보람되고 복된 길입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내가 금년에 얼마나 성령님의 매임을 받고 살았는가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성령님께서 내 심령에 역사하심을 따라서 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

 

  본문 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달려갈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달려갈 길이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명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고 그 일이 자신이 평생 달려가야 할 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우주 만물을 지금도 운행하시고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값없이 조건 없이 그냥 주신 너무나 귀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이 기쁜 소식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는 말씀을 너무나 많이들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착한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정말로 기쁜 소식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죄의 책임에서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증인이 되는 이 일이 바울이 받은 사명이고 바울이 달려갈 길을 다할 때까지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이 제 주제가라고 생각하고 자주 부릅니다. 다른 사람이 이 찬송을 부르면 별로 은혜가 안 되는데 제가 제 자신에게 부를 때 은혜가 됩니다. 이 찬송 2절에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의 이 고백을 가지고 만든 찬송인 것 같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금년 한해를 돌아보시면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 은혜의 복음을 귀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았는가?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았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금년에는 특별히 “믿음이 더 굳건해 지는 교회”라는 표어를 내걸고 한해를 시작하고 보냈습니다. 한 해 동안 믿음이 더 굳건해지셨습니까? 그러면 내년에는 이 믿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표어로 정했습니다. 바울이 지금 하고 있는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는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받는 것도 정말로 복이 있는 것이지만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더 복이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년에 이 말씀을 표어로 삼고 한 해 동안 복음을 많이 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4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이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다 완성하려고 하는 일에는 자신의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이 결박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이 받은 사명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고 또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고 서원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일을 위해서 달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육신의 생명을 빼앗긴다고 해도 그 일을 하겠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너무나 귀한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생명은 조금도 귀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육신의 생명입니다. 생명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이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음식도 먹고 돈도 벌면서 살아갑니다.

 

  바울은 그 귀한 생명보다도 더 귀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받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육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영혼의 생명은 영원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참된 평안을 누리며 영원한 천국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육신의 생명은 거기에 비하면 별로 귀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이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면 그만이고 내일일은 별로 관심이 없고 내세의 일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고 그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육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갖는 일에 또 이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명 때문에 육신이 잘 사는 일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소홀히 하여 빼앗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바울의 설교 가운데서 우리의 한해를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령님께 의지하면서 사셨습니까? 우리가 받은 사명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귀하게 여기면서 사셨습니까?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육신의 생명까지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충성하셨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새로운 결심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는 새해에는 이 질문 앞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결심하시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