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34)

  본문 : 행 20:13-16

  제목 :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13.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사도바울의 3차 전도여행 여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20장 1절에서 6절까지는 에베소에서의 장기간 사역을 마친 사도바울이 마게도니아에서 드로아까지 가는 여정을 소개하였습니다. 7절에서 12절까지는 드로아에서 일어난 청년 유두고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드로아를 떠난 바울 일행이 앗소라는 곳을 거쳐서 밀레도에 이르는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걸어서 온 사도바울 일행은 앗소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 앞바다에 있는 미둘레네라는 섬과 기오라는 섬과 사모라는 섬을 지나서 밀레도에 도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서 살펴 본대로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을 할 때 이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고 예루살렘으로 간 후에 거기에서 로마도 가야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 결심을 한 에베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사건들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전도 여행은 참 복잡한 여행입니다. 새로운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고 또 복음을 전했던 도시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대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방문을 했습니다. 미처 다시 갈 수 없는 곳의 교회들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짬짬이 시간을 내어 편지를 써 보내서 그들을 바르게 지도했습니다.

 

  수시로 반대자들이 이런저런 모양으로 반대를 하고 심지어 바울을 죽이려고 공모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피해서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 바울을 격려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적을 행하게 하심으로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하게 사도바울 일행이 거쳐 간 도시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예루살렘에 속히 가기 위함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빨리 가야 하는 목적을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가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본문 13절에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가지 않고 앗소까지는 걸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드로아는 항구도시여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바로 가면 되는데 약 30키로나 떨어져 있는 앗소까지 바울 혼자 걸어서 갔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야 된다고 말을 했으면서 곧장 바로 가지 않고 여기저기 들렀다가 가는 것을 봅니다. 에베소에서 바로 내려가지 않고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그동안 세웠던 교회들을 돌아봅니다. 말은 빨리 가야 되겠다고 하면서 행동은 가기 싫은 사람처럼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드로아에 와서야 예루살렘으로 빨리 가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예루살렘에 가기 이전에 드로아로 온 까닭은 드로아가 항구도시기 때문에 여기서 배를 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드로아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시를 해 주셨던 도시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지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환상을 하나님께서 유럽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뜻이라고 믿고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건너가서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추억이 있는 드로아로 다시 온 것은 아마도 여기에서 또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결심을 했지만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알아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환상이나 하나님의 계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다른 길을 가야 할 때는 하나님께서 간섭을 하셨는데 가야할 길로 가기 때문에 환상이나 계시는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지만 인간인지라 가서 당할 일들이 두려워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거기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만류를 하였고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본인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 바울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드로아에서 또 하나의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청년 유두고가 창문에 걸터앉아서 졸다가 떨어져서 죽었을 때 바울로 하여금 그를 다시 살리게 하는 기적을 행하게 하시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루살렘으로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한 번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다고 하면서 바울은 항구도시인 드로아에서 배를 타지 않고 앗소까지는 걸어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편한 배를 타지 않고 위험한 육로로 걸어서 가겠다고 한 것은 배를 타는 것이 바울을 죽이려고 결심한 유대인들을 피하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육로도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바울이 걸어가는 길목에 숨어 있다가 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30키로가 넘는 거리를 혼자 육로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 것 같습니다. 걸으면서 그동안 해 온 일들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도 생각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생각해 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그로 인한 고생들을 생각하면 망설일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도 살피고 내 마음도 가다듬기 위해서 생각하는 시간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생각할 시간들이 없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또 텔레비전이나 취미생활이나 시간을 빼앗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조용히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살필 시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가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간을 내서 걷기도 하시고 성경말씀을 읽기도 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과연 바른 길인가 내가 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본문 14-16절에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라고 했습니다.

 

  앗소까지 걸어온 사도 바울은 앗소에서 일행을 만나서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앗소에서 배를 타고 지나온 도시들은 다 바다의 섬들입니다. 소아시아 즉 터키 앞바다에 있는 섬들입니다. 미둘레네, 기오, 사모는 터키 특별히 에베소의 앞바다에 있는 섬들입니다. 그리고 도착한 밀레도는 에베소 남쪽 약 45키로 지점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가 있는 육로는 걸어가지 않고 배를 타고 온 것은 에베소를 피해 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에 가면 틀림없이 거기서 오랫동안 지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배를 타고 지나오고자 했습니다. 드로아에서 예루살렘 행을 망설이던 사도바울이 앗소로 걸어 내려오면서 응답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천천히 걸어오던 그가 지체될 것으로 보이는 에베소를 피해서 배를 타고 왔고 당시에 배가 육지로 걷는 것보다 빨랐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가 죽음을 당해야 하는 길이지만 하나님의 뜻인 줄 확신했기 때문에 갈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곳인 예루살렘과 로마를 향하여 죽음을 무릎 쓰고 빨리 가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지만 그곳이 적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고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려고 하는 도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제일 많이 받았고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을 가장 많이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말씀을 가장 많이 읽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가장 잘 지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경의 핵심이 예수님이고 율법의 핵심이 예수님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것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보내시기 위함인데도 불구하고 그 핵심인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른 길로 안내하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였고, 그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습니다. 그 죄로 2천여 년 동안 벌을 받아서 나라도 없이 떠돌면서 극심한 고통을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아주 악한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길이 두렵고 가기 싫은 길이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복음을 전하는 길이였기 때문에 그길로 가기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편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누가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누구나가 다 쉽게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길이지만 시간 좀 빼앗긴다고, 마음대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한다고, 물질적으로 좀 손해를 본다고 이 귀한 길을 가는 것에 대해서 불평들을 합니다.

 

  우리는 쉽게 이 길을 가지만 우리가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순교를 하면서 까지도 이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순교는 하지 못하더라도 희생과 헌신으로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앞서 인용한 16절에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도착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순절은 이스라엘의 명절로 온 유다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오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그 명절 안에 도착하고 싶었습니다.

 

  오순절은 50일째 되는 날이라는 뜻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명절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오순절을 칠칠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초실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맥추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칠칠절이란 유월절이 지난 후 7일씩 7주간을 지난 후라는 뜻입니다. 초실절이란 그 해에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맥추절이란 그 첫 곡식이 보리농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잊지 말게 하기 위해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어린양의 피를 통하여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게 하신 절기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아울러 구원받은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처음 곡식을 거두어서 하나님께 바치며 그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구원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신 절기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칠칠절의 의미로 이날을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오순절은 단순히 농사를 짓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오순절이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오순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날입니다. 구약시대 때도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셨지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 특별한 사명을 가진 성령님께서 오신 날입니다. 그 오심도 특별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오신 날이 바로 이 오순절입니다. 방언도 하게하고 예언도 하게하고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면서 성령님께서 오셨음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신 날입니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이 날은 영적으로 첫 곡식인 예수님을 믿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창고에 거두어들인 날입니다. 즉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를 시작한 날입니다. 우리 성도들을 알곡이라고 하는데 그 처음 익은 알곡이 그 오순절에 하나님께 바쳐진 날입니다.

 

  구약의 유월절이나 칠칠절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절기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절기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리시려고 하셨습니다. 유월절도 유월절에 사용된 그 어린양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칠칠절도 단순이 농사를 지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알곡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오순절에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한 것은 그 절기에 참석한 유대인들에게 그 절기의 의미를 알게 하여서 그 절기를 제정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살펴보고 있는 대로 성경의 모든 핵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이나 율법들이나 절기들이나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구원자가 되시고 그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흉악한 죄에서 용서를 받게 하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임이 모든 성경의 핵심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그것도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오순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잊지 말고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복음을 우리 가족에게 이웃에게 세계만방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도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한 여정 중에 드로아를 출발하여 앗소를 거쳐 밀레도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조금씩 망설이는 인간 바울의 모습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재촉하고 있는 바울을 보면서 복음의 위대함과 복음전파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았습니다.

 

  이 복음과 복음을 믿는 믿음의 위대함을 잊지 마시고 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임을 깨닫고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교회와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