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53)

  본문 : 행 22:17-23

  제목 :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17.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2.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시며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온통 그런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왜 우리에게 메시야가 필요하며 하나님께서 그 메시야를 어떤 경로를 통하여 보내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그 메시야로 오셨다는 사실과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고 맞이해야 하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의 받을 은혜가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또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확인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사도행전 22장을 통하여 사도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변증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먼저 자신이 유대인이며 정통적으로 성경의 율법을 배운 사람이며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열심을 내던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하고 있는 복음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 환상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복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먼저 전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극히 반대하였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선민이며 자신들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짐승들과 같은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좀 더 의미 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기독교가 어디서 온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기독교는 서양에서 온 종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속종교를 믿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교나 무속종교가 뭘 하면 좋게 생각하고 기독교가 뭘 하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유대인들만 섬기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 유대인들의 종교를 우리가 왜 따라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서양의 종교도 아니고 유대인들만 따르는 유대교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만물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시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증언 속에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신 은혜의 복음을 우리가 믿고 따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본문 17-18절에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라고 한 것은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좀 힘이 듭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회심 후 3년 동안 다메섹과 아라비아에서 보낸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고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고 아라비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 기간 동안 바울은 이중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으로 찍혀서 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동안 바울이 기독교인을 박해하고 회당마다 찾아다니며 기독교인들을 때리기도 하고 잡아가서 죽이기도 했기 때문에 바울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회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회심한척하고 접근했다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 붙잡아가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양편을 이해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의 화가 좀 풀어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 기독교인들이 바울이 확실히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했다고 믿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시간이 3년 정도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3년 동안 이 두 그룹의 사이에 끼여서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이제 시간이 적당히 흐른 후에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성전으로 들어가서 기도를 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이 아님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하나님을 배반한 이단종교라고 생각했지만 바울은 그것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하여 떳떳하게 성전으로 들어갔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하여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성전에 들어와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즉 환상 중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무리 좋은 말로 설명을 해도 내게 대해서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괜한 고생하지 말고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지금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들을 설득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왔는데 30년 전에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예루살렘에 왔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 바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은 그 때 이런 일들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가 없었지만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늦었지만 마지막으로 이렇게 왔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축복이기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시 예루살렘에 왔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본문 19-21절에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시자 바울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도 한 때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사람이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증언하다가 순교를 당할 때도 유대인들의 편에 서서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찬성을 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회당마다 다니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 내고 그들을 구타하고 잡아다가 가두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이 말을 하면 들어볼 것이고 좀 깊이 생각해 보고 예수님을 믿을 사람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기독교를 반대하는 일에 그렇게 열심을 냈던 사람이 복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명을 하면 좀 들어나 보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성경에서 살펴 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고 믿는 것은 그런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고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증언을 한다고 해도 그냥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성품이 참 착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귀한 말씀을 듣고 싶어 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다 복음을 잘 알고 복음에서 나오는 바른 교훈의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경건한 삶을 자랑하고 꼭 필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음과 반대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편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시는 사람만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창세전에 선택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역사하셔야만 복음의 비밀을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야만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울은 이방인을 전도하기 위해서 택함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멀리 이방인들에게 보내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속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계만방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 자신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지만 그래도 유대인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죽을힘을 다하여 이렇게 예루살렘까지 다시 찾아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된 것은 이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먼 곳에 있는 우리들에게까지도 이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고 우리가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수고를 하고 노력을 하고 심지어 순교를 당하면서 까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사실은 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지만 그 구원의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을 하는 이유도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복음을 모르는 세계 만만에게 선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본문 22-23절에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유대인들이 흥분해서 하는 행동입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로 해야 할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작 전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는 아직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중간에 말을 못하게 막고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여기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극도의 분노를 나타낼 때 주로 하는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격렬한 분노로 인하여 흥분하고 날뛰는 사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화가 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멀리 이방인들에게 보낸다는 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방인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할 것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있어서 매우 불쾌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바울을 살려둘 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할 사람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없어져야 할 사람은 자신들인지도 모르고 고함을 지르는 유대인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들이 참 많이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없어져야 할 사람인지 모르고 우리보고 없어지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하여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으로 은혜로 구원의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유일한 길이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나의 구주로 믿는 일입니다. 이 믿음이 없거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존재하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며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은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천국에는 간다고 하면서 세상에 살 가치도 없는 사람들처럼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위대한 믿음이라고 말은 하면서 진실 되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에 교회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다 가지고 있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이 복음을 바르게 알고 진실 되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에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갚으려는 심정으로 사랑을 베풀면서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며 서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며 선교하는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