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2. 주일낮(성례식)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52)

  본문 : 행 22:16

  제목 :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제정을 하시고 교회가 계속하도록 명하신 예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찬예식이고 또 하나는 세례식입니다.

 

  성찬에 관하여서는 누가복음 22장에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소개하고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라고 함으로 이 성찬이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가 행하여야 할 예식이라고 했습니다.

 

  세례에 관해서는 마태복음 28장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1)

 

  그래서 우리 개신교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시고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하라고 하신 이 성찬과 세례를 교회가 행할 성례식이라고 합니다. 이 명령에 따라 오늘 우리는 성찬예식을 행하고 학습세례식을 행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세례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세례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행한 일이 이 세례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의인 되시는 예수님을 보고, 그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 주저함이 없이 세례를 받았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례를 통하여 죄 씻음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세례와 연관된 세 문장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라는 세 문장입니다. 이 세 문장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세례가 주는 의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 받을 때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왜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지 않고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했을까요?

 

  주님이라는 호칭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때 주님이라고 불렀고,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도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주인님이라는 뜻이며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호칭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호칭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그리스도가 되심을 고백하는 호칭입니다.

 

  우리가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하시자 베드로 사도가 고백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신앙고백 위에다가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이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세운 교회에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럴 정도로 이 신앙고백은 매우 중요한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에게도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한 것은 이런 신앙고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세례는 세례요한의 물세례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제자들과 함께한 사역자들이 베푼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했습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세례를 말합니다. 이 세례도 또한 물세례와 같은 방식으로 베풀었지만 성령세례라고 하는 것은 세례를 받을 때 하는 신앙고백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시고 그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을 때 세례를 베풉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가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도 초대교회처럼 그런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런 역사가 없으니까 사람이 신앙을 고백해도 그 사람이 진짜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신앙을 고백한 진짜 신자인지 그냥 사람들 앞에서 가짜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초대교회만 반짝 그런 성령의 은사들을 주시고 오늘날은 그런 눈에 보이는 기적적인 은사는 잘 행하지 않으시는지 잘 모릅니다. 아마도 초자연적인 은사 때문에 일어나는 부작용들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동반하는 초자연적인 방법보다는 보통 자연의 법칙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제정하신 자연의 법칙을 통하여 질서 있게 자연을 다스리고 계시고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초자연적인 기적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요즘 사람들은 아주 머리가 좋아져서 기막힌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마술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기가 막힙니다. 도무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도 행합니다. 그런 마술사들이나 머리 좋은 사기꾼들이 기적적인 일을 빙자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라고 속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이나 거짓 선생들이 이렇게 조작된 기적을 가지고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도 하고 합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기적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알아보고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늘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특별히 세례식을 하면서, 세례를 받은 사람만 참석하는 성찬예식에 참여하면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가치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례를 받고

 

  세례라는 말을 우리 장로교나 감리교 같은 데서는 세례라고 쓰지만 유독 침례교회에서는 침례라고 해석을 합니다. 세례라는 단어 자체가 물속에 담근다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침례교는 세례를 베풀 때 문자 그대로 물에 들어가서 몸을 물에 잠기게 했다가 올라오게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몸이 물에 잠겼다가 올라오게 함으로서 세례가 주는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세례식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 편에서도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가 교회의 정회원이 되었음을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공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런 예식을 통하여 세례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침례를 통해서 물속에 잠길 때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다시 올라오면서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게 되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3장에서 이 세례를 노아홍수와 비교했습니다.

  노아홍수 때에 노아와 그 가족들이 물에서 구원을 받은 것을 세례와 비유했습니다. 노아홍수 때의 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들을 구원하는 세례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세례를 물과 함께 행하는 것은 노아홍수 때 노아의 가족들이 심판의 물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세례를 모세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바다 가운데로 지남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탈출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 그들 앞에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가게 해주셔서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세례도 우리가 죄의 노예에서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례를 줄 때 물과 함께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의 물은 이렇게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나 물 자체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상징일 뿐이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거나 물을 뿌리거나 찍어서 바르거나 물을 물일뿐입니다.

  노아시대의 홍수의 그 물이나 출애굽 시대의 홍해의 물이나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죄악의 심판으로 사용된 물이며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그 물의 심판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난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세례 자체에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신앙고백을 했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식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식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그 예식에 들어 있는 뜻이 중요하고 그 예식이 상징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식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공식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식을 통하여 교회가 그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공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이제 우리는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오직 한분 예수님 편에 우리가 서게 되었습니다.

 

 

너의 죄를 씻으라.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더러운 것을 씻는 물을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죄를 씻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세례가 죄를 씻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씻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씻고 또 씻는다고 해도 우리의 더러운 육신이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로운 사람으로 간주해 주실 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타락하여 죄로 오염된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해주십니다.

  우리 스스로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죄는 다 사함을 받았고 믿음 안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앞서 세례를 노아홍수로 비유했던 베드로 사도가 세례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통해서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상징합니다. 이 세례는 몸의 더러운 것을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입니다”(벧전3:21,현대인의 성경)

 

  세례가 우리의 몸의 더러운 것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편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 세례를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우리의 죄도 완전히 사함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몸을 입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1-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죄가 다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 받은 은혜도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죄도 다 용서를 받는다고 해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다시 죄를 지어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을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예수님처럼 신비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새 생명을 가진 자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 생명을 가진 자다운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우리가 다 깨끗한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두려워하고 죄에 대해서 감각이 없는 죽은 자처럼 죄 지을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을 일은 이제 없어졌지만 새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죄의 노예 사탄의 노예 죽음의 노예에서 해방된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정해주신 거룩한 예식인 성례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이 성찬예식에 참여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일은 죄 사함을 받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이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나 귀한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