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69)

  본문 : 행 26:19-23

  제목 :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19.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성경에서 이 세상을 어두움이라고 표현하고 예수님을 그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 줄도 모르고 깜깜한 어두움 속에서 헤매고 있는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인생들을 밝은 빛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어두움과 빛을 단순히 어둡고 밝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어두움에서 밝은 빛으로 나오면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기쁨들과 행복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은 차가움을 의미하지만 빛은 따뜻함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차갑고 냉정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냉정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은 따뜻하고 다정하여 포근한 마음을 가지게 해줍니다.

 

  어두움은 죽음이지만 빛은 생명입니다.

  빛이 없는 어두운 세상은 모든 생명이 죽어가지만 빛은 모든 생명을 살립니다.

 

  어두움은 미련함이지만 빛은 지혜로움입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사는 사람은 뭘 잘 몰라서 미련하게 살지만 빛은 참된 진리 참된 지혜를 알게 함으로 슬기롭고 바르게 살게 해줍니다.

 

  어두움은 회의와 좌절과 절망이지만 빛은 희망이며 소망입니다.

  절망가운데서 신음하고 사는 인생들이 빛으로 나오게 되면 이 세상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되고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어두움은 슬픔과 고통이지만 빛은 참된 평안과 기쁨과 행복입니다.

  슬픔과 눈물과 한숨 속에서 사는 인생에게 빛은 평안을 누리며 행복하게 기쁘게 살게 합니다.

 

  어두움은 시기 질투 미움이지만 빛은 위로와 격려와 사랑입니다.

  빛은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바울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빛을 전하시리라”를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예언한 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어두움 속에서 신음하던 우리가 빛 가운데서 진리를 알고 참된 기쁨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본문 19-21절에 “19.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지금 이스라엘의 분봉왕 아그립바와 로마총독 버니게와 천부장들과 그리고 시중의 높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을 보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이런저런 죄목으로 바울을 고발하여 바울을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그 고발에 대하여 자신이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그런 죄인이 아님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믿고 따르고 있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며 하나님이 되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이신 것” 즉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별히 계시해주신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보이신 것은 빛이었습니다. 대낮에 비치는 태양보다도 더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더 이상 나를 박해하지 말고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내 증인이 되어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로 가서 이렇게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빛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씀을 따라 먼저 다메섹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이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 복음을 전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어두움 가운에서 나와서 빛이 되신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나와서 따뜻하고 다정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벗어나서 모든 생명을 살리는 빛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미련하게 살지 말고 빛으로 나와서 진리와 지혜를 알고 슬기롭고 바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절망가운데서 신음하고 살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슬픔과 눈물과 한숨 속에서 살지 말고 빛으로 나와서 평안을 누리며 행복하게 기쁘게 살라고 합니다. 시기 질투 미움으로 살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회개한 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은 착하고 바른 삶을 사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만이 내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보혈이 아닌 나 자신의 의로운 삶에 의지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바울을 성전에서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 것은 소용이 없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주장하는 바울을 유대인들은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들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바울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최고로 여기고 오직 믿음으로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전통적인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행위를 최고로 여기는 유교나 불교나 무교의 영향을 받아서 기독교를 그런 종류의 종교로 생각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믿음은 행함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 그 행함이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이고 행함이 없이 믿습니다만 외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행함이 없이 말로만 믿는다고 외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믿음에는 진실한 고백이 있어야 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저는 거꾸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아무리 헌금을 많이 하고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런 것만을 가지고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인간의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로마교회도 믿음을 무시하고 행위만 강조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50%정도이고 행함도 50%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50%라고 하면 인간의 행위도 50%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그런 것까지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주장이라고 외쳤습니다. 믿음이 100%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100%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죄에서 나와서 밝은 빛 가운데서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의 행위가 믿음을 대체할 수도 없고 믿음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본문 22-23절에 “22.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증언하기를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한다는 것은 바울 자신의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을 바울 자신이 증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과 모세라고 할 때 주로 구약성경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울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따르는 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과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구약성경 말씀에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예언한 것이 있는데 바울이 바로 그것을 인용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에 의하면 바울의 주장이 성경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예언은 이사야 53장에 대표적으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마치 미래로 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보고 기록한 것처럼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고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런 고난을 받으실 것이고 그 고난의 이유는 우리들의 죄와 허물 때문이라고 하신 이 말씀을 수십 번씩 읽었을 것이고 아예 외우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아주 당당하게 오실 것이고 오셔서 적군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나라를 해방시키실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메시야가 이렇게 힘도 없이 비참하게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힘없이 죽으신 예수님이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이단의 무리요 제거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의 예언과 부활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의 기록들을 신약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그가 그리스도가 되시며 우리를 구하러 오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예수님 이전에 다시 살아난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부활 이전에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많이 살아났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사셨다는 것은 그런 다시사심이 아니라 신비한 몸으로 다시 사신 부활을 의미합니다. 먼저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23절 하반절에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메시야가 빛으로 오신다는 것은 성경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구절 하나만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2)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자신이 그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어두움을 밝히는 많은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이방인들까지 빛 가운데서 살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빛으로서 이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끝까지 전하여야 할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통하여 지금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고 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헤매는 불쌍한 인생들을 빛 가운데로 불러내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이 빛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어두움 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복음의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바르게 알고 이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또 목회를 하면서 가장 보람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복음의 빛으로 나와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알고 나니까 인생이 다 보이고 성경의 중심이 보이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가 보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이 복음을 볼 수 있었다면 일평생을 정말로 보람 있는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에 이 복음을 알았다면 정말로 멋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성인이 되어서 사회생활을 하고 사업을 할 때 이 복음을 알았다면 정말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 복음의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억지로 마지못해서 교회를 다니며 감사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며 살았습니다.

 

  복음의 밝은 빛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바르게 아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아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어두운 골목길에서 헤매고 있습니까? 아직도 교회를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습니까? 아직도 몸이 불편하고 피곤하고 세상에 할 일이 더 귀해 보이고 이런 저런 핑계들이 생각나십니까? 아직도 주님의 일에 교회의 일에 충성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집니까? 아직도 이것에 나에게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 계산하고 계십니까?

 

  아직도 차갑고 냉정한 마음을 가지고 사십니까? 아직도 어리석게 미련하게 살고계십니까? 아직도 절망가운데서 신음하면서 살고계십니까? 아직도 슬픔과 눈물과 한숨 속에서 살고계십니까? 아직도 시기 질투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계십니까?

 

  복음의 밝은 빛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진리를 알고 세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예수님을 세상에 빛을 전파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선지자들과 모세를 통하여 알려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우리도 세상의 빛입니다.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통해서 복음의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을 이 그리스도의 빛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