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68)

  본문 : 행 26:9-18

  제목 :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소명과 사명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부르셨으며 어떤 일을 맡기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극적으로 바울을 불러주시고 사명을 주신 장면은 사도행전에서 세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본문과 9:3-19, 22:6-16)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어떤 부분은 생략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같은 맥락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보고 사람들은 이런 극적인 만남을 통해서 나쁜 짓만 하고 다니던 사람이 아주 새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세상에서 행하던 악한 일을 다 버리고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되어서 새사람으로서 바르게 살고 선하게 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교회에 잘 안 나오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도 잘 나오고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주일도 잘 지키고 교회에서 이런저런 일도 맡아서 봉사도 잘 하고 그런 착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던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어 새사람이 된 것은 그런 삶에 있어서 새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도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며 하나님나라의 일에 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이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서 충성한다고 생각했던 이런 일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율법에 따라 선한 일을 행하고 종교적인 열심을 내는 이런 일들을 통하여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그동안 자신이 하나님께 충성된 일로 여기며 행했던 일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며 성경을 잘못 이해하여 엉뚱한 일을 행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위선자였으며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는지 그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회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우리의 삶이 새사람으로 변하고 착하게 살고 선하게 사는 것 정도를 회심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렇게 착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 죄를 감추기 위한 위선적인 것이며 내 마음속에는 이런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씻을 수 없는 흉악한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뿐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이 믿음이 소중함을 아는 것이며 이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본문 9-12절에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모습을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구원이라는 것인 줄은 알겠지만 나사렛 촌구석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일개 인간이 메시야가 되고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아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며 이단을 따르는 사람들이며 처벌 대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가지고 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두기도 하고 죽일 때 찬성투표를 하기도 하고 모든 회당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처벌하였고 외국에까지 나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일을 감당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도 대제사장들에게 권한을 위임 받아서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가던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만나야 된다고 말들을 합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않은 사람은 엄청나게 다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바울처럼 그런 극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은 매우 희박합니다. 때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나 특별한 경우에만 그런 일이 일어나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희박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성경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성경공부를 하거나 설교를 들으면서 또는 특별하게 기도를 하거나 묵상을 하면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을 바르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나의 구주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본문 13-16절에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바울의 소명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이라는 도시로 가던 도상에서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사도행전에서 이미 두 번이나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중요한 핵심만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정오에 해보다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하는 사람들을 둘러 비췄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밝은 빛은 태양이고 그것도 정오시간에 가장 밝게 비칩니다. 그런데 그 햇빛보다도 더 밝은 빛이 비췄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자연 만물의 힘으로 낼 수 없는 가장 강한 빛입니다. 하나님께서만 초자연적으로 비칠 수 있는 빛입니다.

  그 빛을 통해서 여기 나타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적인 역사가 아닌 초자연적인 능력의 하나님께서 거기 임하셨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밝은 빛을 통해서 예수님이 인간의 어두운 눈을 밝히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임을 알게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들은 어두움 속에서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보잘 것 없는 지식임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되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빛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바울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은 헬라식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이름이고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의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일리가 있는 구분이지만 더 정확한 것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까지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이름인 사울이라고 했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부터 이방인들에게 친숙한 헬라식 이름인 바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하시면서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 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사실 쓸데없이 고생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한다는 것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속담과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 가시채는 가시로 된 채찍을 말합니다. 채찍에다가 쇠나 짐승의 뼈를 박아서 맞으면 매우 아프게 만든 채찍을 말합니다.

  이 가시달린 채찍으로 때리면 피하는 것이 상수이고 맞을 짓을 안 하는 것이 더 상수입니다. 그런데 그 가시채를 뒷발질 하여 막으려고 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채찍을 몸으로 막으려고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속담의 본래 의미는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뜻하는 속담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수록 가시채는 몸에 박히게 되는 것처럼 더 고통만 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살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대로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면 괜히 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고집대로 하는 사람들은 사서 고생길로 가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시면서 하시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신 것은 그가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가시채를 뒷발로 차는 것처럼 하나님께 반항하던 어리석은 인간인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바울도 고쳐서 쓰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에 관한 이 귀한 일을 깨닫기만 하면 누구든지 충성스러운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보다 못한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누구이든지 무엇을 했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복음을 바로 알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어떠한 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본문 17-18절에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바울의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신 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을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로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보내신다고 하면서 먼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로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구원하다’로 번역된 말은 우리가 말하는 죄악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원어를 분석해보면 ‘빼내다’, 혹은 ‘선택하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하다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 즉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바울을 선택해서 또는 빼내서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로 보내서 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 눈을 뜨게 해서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영적으로 소경과 같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영의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간들의 눈을 밝혀서 영적인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일에만 급급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영이신 하나님도 보고 영원한 생명도 있음을 알고 영원한 천국도 있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영적인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은 믿음의 눈이라고 합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입니다. 사탄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나 모든 인간의 행동들이 사탄의 뜻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거짓종교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온갖 사이비 이단들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바르게 따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까지 사탄의 세력을 침투시켜서 거짓교리를 만들고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쳐서 엉뚱한 길로 가게 만듭니다.

  참된 교회는 그런 사탄의 권세에 빠져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서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곳입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바꾸어주는 너무나 귀한 일을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거룩하게 된 무리 즉 성도들입니다.

  성도라고 하면 아무 직책도 없는 평신도를 말하는 것 같지만 우리 인간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신분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저 흑암의 세계에서, 죄악된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를 빼내어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신 아주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성도라는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거룩한 무리 즉 성도들에게 기업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기업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의 사명은 이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선포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한 무리가 되어서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과 같이 소명과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도 우리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깜깜한 암흑 속에서 사탄의 권세아래서 죄로 인해서 죽어가고 멸망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를 불러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밝은 빛 아래서 눈에 보이지 않은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무리로 영원한 기업을 받게 된 사람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