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63)

  본문 : 행 24:22-27

  제목 :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

 

 

  “22.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천로역정이라는 소설이 만화영화로 제작이 되어서 영화관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이라는 사람이 쓴 소설입니다.

  존 번연은 17세기의 영국에서 태어나서 침례교 교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침례교와 같은 개혁주의 교회는 영국 국교회에 핍박을 받고 있었는데 그가 복음적인 설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가서 감옥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소설의 내용은 작자의 꿈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가족을 버리고 등에는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손에는 성경을 들고 자신이 살고 있던 멸망의 도시를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도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성경말씀을 따라 죄악 된 세상에서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방해공작도 있고 이런 저런 시험거리도 만나게 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힘든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중간에 어떤 사람은 순교를 당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배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따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목회자를 따라 가야 갈 수 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개혁주의를 따르는 기독교가 핍박을 받는 때였습니다. 천주교나 영국국교회가 개혁주의 교회를 심하게 핍박하는 때였습니다. 그런 때에는 이 천로역정이라는 소설처럼 참된 신앙인이 되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엄청난 핍박을 견뎌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런 외부에서 오는 핍박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적들은 많습니다. 이단이나 거짓선생들이 교회 내에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들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또 하나의 적은 자신의 나태함입니다. 세상을 향한 욕망 때문에 세상의 즐거움 때문에 복음을 따르는 일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점점 더 나태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태함 때문에 게으름 때문에 천국을 향하여 가는 일에 열심을 다하지 못하고 신앙도 흐지부지해져서 그냥 교회나 다니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오늘 본문에는 복음을 잘 안다고 하면서도 자기 욕심 때문에 복음을 따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당시 총독이었던 벨릭스와 그의 아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세상 쾌락을 버리지 못해서 자기 속에 있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만났고 그를 통해서 복음의 진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이 되지 못했고 육신의 삶도 결국은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 쾌락 때문에 아직도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믿음 문턱에서 서성대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본문 22-23절에 "22.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앞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하는 것과 거기에 대하여 바울이 자신을 변호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거기에 대해서 벨릭스 총독이 재판결과를 선고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벨릭스 총독은 바울이 죄인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죄가 없다고 하든지 선고를 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죄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죄를 선고하여 석방하지도 않습니다.

  풀어주지 말고 붙잡아 두고 지키기는 하되 그 안에서는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와서 돌보아 주면 그것을 막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정죄하자고 하니까 벌을 줄만한 뚜렷한 죄목도 없고 유대인들이 고발하는 것에 대한 증거도 없고 해서 형벌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풀어주자니 유대인들이 항의를 할 것이고 혹시 유대인들이 불법적으로 바울을 잡아다가 죽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벨릭스 총독의 이런 행동이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한명이고 유대인들은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유대인들이 불만이 많은데 바울 한사람 사형선고 내려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풀어주면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인심도 얻고 인기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권력에 대해서 욕심이 많았던 벨릭스가 그런 기회를 이용하지 않고 바울을 살려둔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바울을 석방하면 유대인들이 잡아다가 불법적으로 해치려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보호하였다면 참 착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중립적인 태도가 자신도 망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도 가로막은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바울은 2년 동안을 그렇게 붙잡혀서 세월을 보냅니다.

  물론 감옥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하였지만 세월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살아서 복음을 전할 날이 많지 않는데 2년이나 되는 세월을 허송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직 복음을 전하지 않는 나라가 많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진리의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그 세월을 막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라는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바울이 믿고 전하는 이 도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이 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안다고 했습니다. 바울보다 이 도를 더 자세히 안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을 고발하러 온 유대인들보다 복음의 도를 더 자세히 안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자세히 안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좋은 복음을 믿고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정말로 복음에 대해서 잘 알았다면 총독의 자리고 뭐고 다 내버리고 복음을 믿고 따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복음을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거나 알기만 하고 그게 사실인지 믿지는 못했거나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세상의 것들이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고 믿음의 길을 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점점 좋아지니까, 세상이 점점 재미있어지니까, 복음을 듣고 알면서도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는 않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성도답게 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한 다리 걸치고 교회에 한 다리 걸치고 적당히 예수님 믿는 체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탄의 전술전략인 것 같습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하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는 말아라. 있을지도 모르는 천국이나 심판 같은 것은 믿지 말고 이 좋은 세상에 즐기면서 살아라. 이런 유혹들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보다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교회에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우유부단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도 세월이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힘이 없어지기 전에 주의 일에 좀 더 힘을 써야 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결단을 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복음을 위해서 일하여야 되겠다고 다짐을 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본문 24-25절에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총독 벨릭스의 아내의 이름이 드루실라라고 했는데 유대여자라고 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여자도 별로 좋지 않은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지방을 다스렸던 헤롯왕의 왕족으로 태어났고 정략적인 결혼으로 권력을 따라다니다가 벨릭스가 총독이 되자 전 남편을 버리고 그의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총독도 종이었다가 자유인이 되어서 총독까지 올랐기 때문에 굉장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그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온갖 술수를 다 써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부부가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에 관하여 듣고자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 아내 드루실라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더 알아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정의와 절제와 앞으로 있을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직접 전하기에 앞서서 왜 복음이 필요한지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초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1) 정의

  정의에 대해서 말하였다고 했는데 그 정의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누가는 기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총독과 그 아내는 정말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보편적인 윤리 도덕도 무시하고 악하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총독으로 그 부인으로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를 위해서 저질렀던 죄악들을 지적했을 것입니다.

 

2) 절제

  절제란 자기 통제를 말합니다. 특히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 스스로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제일먼저 해야 할 일이 그 욕심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와서 하시는 일 중에 하나를 절제라고 했습니다.

 

  총독과 그 아내는 이런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많은 죄를 저질렀음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욕심이 다 있습니다. 사실은 이 욕심 때문에 부지런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욕심이 지나쳐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불법을 행하여서는 안 됩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욕을 먹으면서 까지 욕심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3) 앞으로 있을 심판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웬만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대체하시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악한 일에 대해서는 이 세상에서 즉결심판도 내리십니다.

 

  특별히 총독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는 헤롯 왕족이었다고 말씀 드렸는데 헤롯 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이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우리가 사도행전 12장을 공부하면서 만났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인 사람이고 베드로를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셔서 벌레에게 먹혀서 죽게 했습니다.

  그가 연설을 잘 하여서 사람들이 그가 연설하면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고 신의 소리라고 칭송을 하였습니다. 그 죄를 물어서 벌레에 먹히게 하였는데 그가 신이 아니라 작은 벌레에게도 죽임을 당하는 연약한 인간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그의 딸로서 잘 알고 있는 총독의 아내에게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것만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장차 올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 했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있게 될 최후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이 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주님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그 심판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가 세상에서 행한 모든 악한 일들을 재판받게 되고 형벌을 받게 될 것임을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들이 나를 죄인이라고 하여서 재판하고 있지만 이런 재판은 인간적인 것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에 대해서 재판을 하는 것이라 별 볼일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형벌을 받게 된다고 했을 것입니다.

 

4) 벨릭스는 겁이 나서

  여기까지 설명하자 벨릭스는 겁이 나서 “이제 그만 가거라. 기회 있을 때 내가 다시 너를 부르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총독 벨릭스는 자신의 성공담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의로운 사람이요 성공하기 위해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행하였던 일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재판장으로 사람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는 최고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설명을 들어보니 자신이 불의를 행한 자이고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서 악한 짓을 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일시적으로 두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을 막고 다음에 다시 부르겠다하고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자신의 죄가 용서 받기에는 너무 크고 자신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여 이룬 것들을 버릴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말았습니다. 조금만이라도 회개할 마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바울의 이야기를 경청했더라면 그 모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도인 복음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본문 26-27절에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사도 바울이 벨릭스에게 의와 절제와 앞으로 있을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그가 그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하여 바울을 내보냈는데 그 때 약속대로 바울을 수시로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벨릭스 같으면 바울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을까요?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욕심을 절제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이 분야에 전문가라는 것을 여러분은 이미 잘 아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 무엇인지, 심판의 부활로 나가지 않고 생명의 부활로 나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런 바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고 엉뚱한 일로 바울을 자주 만나고 있음을 봅니다. 바울에게 무슨 돈이 있을 것이라고 돈을 좀 받을까하여서 바울을 자주 만나더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지난번에 바울이 이야기하기를 민족을 구제할 구제물을 가지고 왔다는 말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구제할 돈을 가지고 자신에게 뇌물을 쓰고 석방시켜 달라고 할까봐서 자주 바울을 불러다가 이야기를 듣는 척 했습니다.

  총독이 2년 동안 그렇게 바울을 감옥에 붙잡아 두고 자기 뜻을 이루려고 했는데 결국은 그 총독 자리도 빼앗기게 되고 보르기오 베스도가 그를 대신해 총독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 이야기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날 복음을 믿고 따르지 않는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이 이 벨릭스 총독처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죄 사함에 대해서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듣기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께 이 세상의 복을 받아서 좀 더 잘살아보려는 요량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총독은 바울의 그 귀한 이야기 즉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죄에 대한 회개가 없는 한, 세상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도 바른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은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세상 욕심을 버리고 믿음의 길로 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위대한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심판의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