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62)

  본문 : 행 24:10-21

  제목 :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10.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재산 7조원을 가진 중국의 조폭 두목이자 한룽그룹 회장인 류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49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집행을 당하게 되었답니다. 그가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눈물을 쏟으며 남긴 말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노점이나 작은 가게를 차리고 가족을 돌보면서 살고 싶다. 내 야망으로 인해 나는 소중한 것을 볼 수 없었다. 인생은 모든 게 잠깐인 것을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서로 불쌍히 여기고, 원망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걸 그랬어...”

 

  사실 우리 모든 인생이 사형수로서 살고 있습니다. 죄는 다르고 사형당할 날짜는 다르지만 각기 지은 죄로 인해서 죽을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 사형수처럼 죽기 전에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사형수는 복음을 듣지 못해서 깨달은 것이 그저 이 세상에서 좀 착하게 살지 못함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의 삶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 부활이 있고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후회될 일은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이고 부활도 생명의 부활이 있고 심판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하고 심판의 부활로 나와서 영원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이 정말로 큰 후회가 될 것입니다.

 

  지난주에 1절에서 9절의 말씀을 가지고 유대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총독에게 와서 바울을 고발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변호사인 더둘로를 대동하고 와서 바울이 지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하는 세 가지를 고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고발에 바울이 변명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독이 바울에게 그 고발에 대해서 변호하라고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니까 바울이 그 고발에 대하여 변호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변호를 살펴보기 위해서 지난주에 살펴본 유대인들이 고발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한번 되새겨 보겠습니다.

  첫째는 전염병 같은 자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잘못된 종교를 전염시켜서 소요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르는 자들의 우두머리라고 했고 그들을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와서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가당치 않은 고발이라는 것을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뜻을 바르게 알고 따르는 바울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 때문에 영원한 구원의 길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이 그들이 고발한 내용의 부당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변호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설명을 드리려면 오늘 본문만 가지고도 여러 시간 말씀을 드려야 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금년 말까지 마쳐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간단하게 핵심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바울이 변호하는 말씀 가운데서 15절의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이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중심으로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염병 같은 자라”는 고발에 대해서

 

  본문 11-13절에 “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하기를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변명하기를 바울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되지 않았고, 성전에서나 회당이나 시중에서 누구하고 변론을 하거나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누구도 본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회만 있으면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거나 복음에 반대해서 바울을 해치려고 덤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와서는 아직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기 때문에 조심을 했을 것이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목적은 로마로 가기 위해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전염병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함께 역사하심으로 마치 전염병이 옮아가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나쁜 전염병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가 전염병이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듯이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이 전염병이 옮아가듯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들에게서 자주 만나는 친척과 이웃 그리고 친구들에게로 복음이 전염되듯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염시키는 복음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거나 우리를 죽이거나 하는 나쁜 질병이 아닙니다.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우리를 살리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회복시켜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라는 고발에 대해서

 

  본문 17-19절에 “17.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 온 것은 성전을 더럽게 하거나 성전에서의 제사를 무조건 반대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행하던 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제물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또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하기 위해서 구제할 것을 가지고 온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무슨 소동을 벌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 결례를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잘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바울이 성전자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의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성전에서 행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바르게 가르치려고 했을 뿐입니다.

 

  성전은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알게 하고 제사에서 드려지는 제물처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주실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성전을 관리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은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붙잡아다가 가두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성전에 드려지는 예물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했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방에 있는 사람들이 헌금한 돈을 모아서 구제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바울은 성전에서 해야 할 일을 더 바르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성전이 하는 일을 방해하여 성전을 더럽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고발에 대해서

 

  본문 14-16절에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유대인들이 말하는 나사렛 이단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단이라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르는 것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단이라는 말은 그들이 볼 때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이지만 우리가 볼 때 우리가 정통이고 우리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이단입니다. 누구를 중심으로 무엇을 중심으로 보는가가 문제입니다.

 

  바울 자신은 이단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믿고 따르며 전하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단이 아니라 성경의 핵심이요 믿음의 정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고 이를 위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힘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성경을 거부하거나 부분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다 믿으며 그 성경의 핵심을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자신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대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세상이 있으며 모든 사람들은 다시 부활할 것인데 그 부활이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다르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바울이 자신이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믿음 중에 가장 중요한 믿음이 바로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이요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다르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너무나 엄청난 차이를 가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그럭저럭 산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세상에서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어렴풋이 다음세상 저세상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그렇게 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정답을 가지고 있는 성경을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우리들이 죽고 난 다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도 다 그 음성을 듣고 부활을 하게 되는데 그 부활이 각기 다른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복락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기 천국에서의 복락과 지옥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지금 우리들로서는 확실히 잘 모르고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천국에서의 삶은 엄청난 기쁨과 감사가 있는 삶이라면 지옥에서의 삶은 엄청난 슬픔과 후회가 있는 삶인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고 교회에 충성하기 위해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지만 이런 고난들은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영광과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교회에 다니기 싫어서 희생과 헌신하는 삶이 싫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실수를 원망하면서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영원토록 말입니다.

 

  여기까지만 설교를 들은 사람은 아 이제 나가서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되겠구나 라고 결심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착한 일을 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심을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생명의 부활이 보장되어 있는 사람이요 악한 사람들처럼 심판의 부활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누구라고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입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입니다.

 

  제가 만사를 제처 놓고 매주 이 복음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생명의 부활로 나가기 위해서 이것이 최고의 선한 일이기 때문이고 이것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반드시 기필코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의 부활로 나가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 부활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믿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사람들을 심판해서 지옥의 고통을 받게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시지만 회개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 길로 가지 않으면서 사랑의 하나님 운운하면서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심판을 받지 않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길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흉악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며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어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착한 일을 하고 바르게 살아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 보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듣지 않습니다. 착하게 살려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 알량한 자존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교만함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합니다.

 

  우리는 의인의 부활로 생명의 부활로 나가는 길을 잘 알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게 여기시는 일이 무엇이며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어주신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습니다. 그것이 가장 선한 일이며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유일한 길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늙고 병들어서 한번은 죽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어떤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다음 세상을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부활로 나가서 가슴 치며 원통한 삶을, 그것도 그렇게 영원토록 사는 삶을 살게 되는 어리석은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서 생명의 부활을 통해서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의 삶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