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를 속히 보내기를 바라는 이유

 

 

 

빌립보서 219-24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때, 많은 동역자가 함께했습니다.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제1차 전도 여정을 시작할 때부터 제3차 전도 여정을 마칠 때까지, 그리고 그가 로마로 압송되고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하나님은 그때마다 필요한 동역자들과 조력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사역은 저들과 함께 많은 열매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역자들 가운데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바로 디모데(Τιμόθεος)”일 것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지만,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기에 그도 유대인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안에서 자랐습니다(1:6). 바울의 디모데를 향한 표현은 특별합니다. 고린도전서 417절에서는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2절에서는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라고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118절에서는 아들 디모데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2절에서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성경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 여정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161-2절에서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라고 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디모데는 혈육의 관계는 아닙니다. 아마도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바울이 제1차 전도 여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디모데가 복음을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제2차 전도 여정의 초기에 루스드라를 다시 방문했고, 그때부터 바울과 디모데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로 디모데는 바울의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했습니다. 또한 그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설립하는데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바울이 필요에 의해서 잠시 디모데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디모데는 바울의 곁에서 보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19절에서 바울은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고 합니다. 사실 바울은 자신이 곧 풀려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1:25). 그리고 자신이 석방된다면 반드시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신분은 미결수입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빌립보를 방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회의 문제는 시급한 것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도 문제려니와 빌립보 교회의 파송을 받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에 대한 소식으로 인해 빌립보 교회에 많은 염려를 끼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우선 급한 대로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편에 디모데를 함께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디모데를 보내고자 하는 것이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라 주 안에서바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κύριος)”라는 단어 뒤에 예수(ησο)”라는 표현이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위의 본문을 원문대로 번역한다면 나는 디모데를 너희에게 속히 보낼 것을 주 예수 안에서 희망하고 있습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즉 바울은 자신의 계획에 주 예수 안에서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바울의 계획은 자신만의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좇아서 하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아무리 교회를 위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과 합하지 않는다면 진행하지 않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 디모데를 속히 보내기를 바라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안위(安慰)를 받기 위함입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안위를 받는다(εψυχέω)”라는 말은 활기가 있다, 기뻐하다, 용기를 가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원문에 따라 번역한다면 그리고 나도 너희에 관한 일들을 앎으로 인해 나 또한 기뻐하고 용기를 가지려 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빌립보 교회의 안위입니다. 사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불안한 미래로 인해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방문하여 바울의 소식과 장차 진행될 일들을 설명할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보 교외와 성도들은 바울을 위해서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용기를 얻고 더욱더 복음을 위해 열심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바울 자신의 안위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는 것은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고 그 일들을 분명하게 앎으로 인해 바울 자신이 힘을 얻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지만, 빌립보의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견고하게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한다면 바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 되고, 용기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너희 사정을 앎으로라고 했는데, 이는 단순한 소식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의 사정을 철저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사정에 공감하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관심은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단지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계속적으로 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지속적으로 돌보았습니다. 자신은 비록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지만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안위를 주고받는 것, 이것은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덕목입니다. 성도는 목회자를 통해서 기쁨과 감사와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또한 목회자도 성도들을 통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근심이 되고, 아픔을 주고, 낙심을 주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이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도와 목회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의논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며 복음 안에서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성도는 그러한 목회자를 신뢰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바울의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0절은 이는(γάρ)”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는 이유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단어입니다. 즉 바울이 왜 디모데를 보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다시 말하면 디모데야말로 그 일에 가장 적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처럼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고자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과 뜻을 같이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에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없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뜻을 같이하여라는 말은 동일한 호흡을 가지다, 한마음을 품다, 같은 정신을 가지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디모데가 바울 자신과 같은 마음,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로서 바울에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에 있어서 함께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디모데는 누구보다도 바울의 심중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의 출발에서부터 지금까지 바울과 함께 관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세운 이후에 빌립보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지만, 디모데는 바울의 보냄을 받아 한두 번 더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19:21-22, 20:3-6). 따라서 바울 곁에 있는 사람 중에서 빌립보 교회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디모데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립보 교회를 방문해서 바울의 사정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고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잘 파악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디모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없음이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만큼 빌립보 교회를 순수하게, 진실하게 생각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한다(μεριμνάω)”라는 것은 관심을 가지다, 염려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디모데의 빌립보 교회를 향한 염려와 관심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디모데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해 진실한 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를 믿고 빌립보에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디모데 외에 대신할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1절에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앞에서 언급된 디모데와는 대조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라는 아주 특별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앞에서 등장하는 자기 일과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자신의 일이나 빌립보 교회 일이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일, 그리스도 예수에 속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바울 자신의 상황을 전달해 주는 일, 또는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바울에게 전하는 일, 나아가 이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와 바울에게 안위를 주는 일을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 일이 바울 개인의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여기에 등장하는 자기의 일을 구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바울의 주변에 있었던 자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공유하고 의논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나아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고자 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바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한 자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들은 자기의 일에 몰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바울과 같이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디모데와 비교한다면 바울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 자들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 주변에는 디모데 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빌립보 교회로 보냄에 대해서 나서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복음보다도, 사도 바울보다도, 자신의 일을 더 우선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 외에 다른 사람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억지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없이, 섬김이 없이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은 자원함으로, 감사함으로, 기쁘게 감당하는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22절에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면서 디모데만큼 적임자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즉 디모데가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한 자인지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연단(δοκιμή)”은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시련, 시험, 증명, 증거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시험의 과정이나 그 과정을 통한 결과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별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디모데의 연단과 그 결과로 인해 그가 얼마나 신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었는지를 분별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디모데가 바울 곁에서 연단을 받는 모습은 마치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하면서 일하는 모습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이는 아주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당시의 대부분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기술을 배우거나 무역 상거래와 같은 일들을 함께했습니다. 결국 디모데는 마치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하면서 정성을 쏟아 헌신하며 복음을 위해 수고했던 것입니다.

 

 

한편 여기에서 수고했다(δουλεύω)”라는 표현은 마치 노예가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디모데가 바울을 위해 섬기는 것은 마치 종이 주인을 위해 섬기듯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전적으로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오직 복음을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자기를 전혀 내세우지 않고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처럼 대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자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1:1)

 

 

성도 여러분! 이처럼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맡겨 대신하게 해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여길 만큼 믿음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실한 제자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평안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의 평안을 빌립보 교회에 전하고, 빌립보 교회의 평안을 사도 바울에게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빌립보 교회에 넘치는 기쁨과 감사가 있게 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에게 용기와 활력이 있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서 자신이 빌립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빌립보 교회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사정이 가장 잘 설명하게 합니다.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이 더 이상 바울로 인해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본문 23절에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고 합니다. 디모데! 그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였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보내려고 합니다. 아마도 이는 바울 자신의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을 향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가지고는 있는 근심의 문제를 제거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이 친히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재판이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된다면 반드시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자신 안에 큰 기쁨이 더해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이에게 어떤 존재로 서 있습니까? 신뢰를 주는 사람, 안위를 주는 사람,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서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편지로서의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안에서, 교회 안에서, 나아가 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통해서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드러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