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누가복음 28-14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할렐루야! 성탄의 아침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은총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가정과 앞날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베들레헴의 외곽에 있는 한 들판에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밤에 들에서 양 떼와 함께 잠을 자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낮에는 양 떼를 이끌고 초장을 찾아다니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루종일 뜨거운 태양 볕과 싸웠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녁이 되자 양 떼를 우리 안에 모아두고 그 양들을 광야의 들짐승들로부터 보호하며 저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중에 그 목자들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몇 가지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는 홀연히 어디선가 환한 빛이 저들을 둘러 비췄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쉐키나라고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임재의 형상입니다. 이것은 매우 희고 밝게 빛나는 구름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구약에서는 시내산에서(24:16), 성막에서(40:34), 솔로몬의 성전에서(왕상8:10), 이사야의 성전에서(6:1-3) 등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17:5)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 빛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으나 실질적인 경험을 한 자들은 극히 일부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이 빛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주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목자들은 그 빛에 의해서 압도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 가운데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주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분명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일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천사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구약에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신약에 와서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의 잉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사가랴에 나타났습니다(1:11).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1:28). 정혼녀 마리아의 문제로 고민하는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1:20). 풍랑 가운데서 고생하고 있는 죄수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27:23). 하지만 이러한 사건도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사건이기에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것입니다.

 셋째는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의 나심이었습니다. 이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야입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해방과 자유를 줄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야가 오셨다고 하는 소식이 저들에게 들려졌습니다. 그것도 천사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아마 저 목자들은 자기들의 눈과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환상도 아니요, 꿈도 아니었습니다. 베들레헴 외곽이라고 하는 공간적 무대에서, 그리고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광경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목자들에게 천사는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했습니다(10-11).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큰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기쁨의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 땅에 그 어떤 소식보다 크고 기쁘고 좋은 소식, 곧 복음 중의 복음인 것입니다.

 이 성탄절 아침에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 온 백성에게 미치는 소식입니다.

 본문 10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온 백성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저들은 앞에서 생각한 대로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이 메시야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으로부터 시작해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메시야까지 수많은 약속이 구약성경 안에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분명하게 오실 것이라고 믿었고, 그 때가 언제일 것인가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 시대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시기이기에 메시야에 대한 대망은 극에 달했던 시기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가 전한 이 복음의 메시지는 단순히 육적인 이스라엘 곧 유대인이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 갇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그 복음이 유대인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이방인들에게 그 문이 열리기도 했습니다(라합, 룻 등). 하지만 보편적으로 이방인이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 안으로 들어오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23:3 -8). 하지만 신약으로 건너오면서 이러한 제약이 무너졌습니다. 이제 온 백성은 이제 민족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 만민에게 개방이 된 것입니다. 14절에 등장하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로 확장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하실 때도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라고 하셨고(28:19),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하셨고(16:15),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1:8). 다만 이 복음은 먼저 유대인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입니다(4:22). 즉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유대인들을 통해서 세상 만민에게로 그 복음이 확장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택하신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복음은 단순히 어느 개인의 복음이 아닙니다. 이 복음은 어느 한 민족의 복음이 아닙니다. 이 복음은 한 지역에 국한되는 복음이 아닙니다. 이제는 복음에 그 어떠한 제약도 없습니다. 혈통적인 제한, 민족적인 제한, 지역적인 제한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고 하는 복음이 큰 소식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어느 한 지역에만 머무를 수 없는 소식입니다.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은 너무나도 커서 한 지역에 가두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그 모든 곳에 전파되어야만 하는 소식입니다. 그만큼 큰 소식입니다.

 한 나라를 흔들 수만 있어도 큰 소식입니다. 아니 한 지역만 흔들지라도 큰 소식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물며 모든 민족, 모든 나라를 흔들어 버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고 하는 소식은 이 지상에서, 아니 온 우주를 다 뒤져도 이보다 더 큰 소식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고 하는 이 놀라운 소식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의 소식이 아닙니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저 세상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전해져야만 하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우리들의 마음에만 담아놓기에는 너무나도 큰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든지 이 소식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들려져야만 하는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Ⅱ. 구원의 소식입니다.

 본문 11절에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가지는 의미를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약속의 성취로 오셨습니다.

 본문에서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동네에서 나셨다고 했습니다. 이 다윗의 동네는 베들레헴을 가리킵니다. 이는 다윗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삼상16:1). 그런데 천사가 이 베들레헴을 직접 말하지 않고 다윗의 동네라고 표현한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미가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라고 장차 메시야가 탄생하실 장소가 베들레헴이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5:2).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구약의 예언을 따라 오신 분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베들레헴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또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7:14, 1:22-23).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과 함께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약속하신 방법을 따라서 약속하신 동네에 약속하신 목적을 가지고 보내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본문에서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너희를 위하여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가리키는 “너희는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는 자들이요,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야 할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섬기시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10:45).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영광을 얻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려고 오셨습니다. 오히려 자기 백성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시려고 오셨습니다. 오히려 자기 백성의 질고를 대신 지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오히려 자기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53). 오히려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지고 가는 한 마리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1:29). 오히려 십자가 형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오심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영원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심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분의 사심과 죽으심은 철저하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구주로 오셨습니다.

 본문의 구주(救主 ; Σωτῄρ)”라고 하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그리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는지,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일을 감당하게 될 것인지가 그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기의 대속이란 대신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포로나 노예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대신 무엇인가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우리가 죄와 사망의 종으로 포로로 있을 때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완전무결하신 그분이 죄인의 몸으로 죄인의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천사는 이 예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 주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호칭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증명하는 호칭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메시야가 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마땅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왕이 되셨고, 우리를 위한 제사장이 되셨고, 우리를 위한 선지자가 되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주()가 되십니다. 그분은 비록 사람이 되셨지만, 그분은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영원한 경배를 받으실 주(κύριος)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큰 소식이요, 기쁨의 소식이요,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보다 더 큰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 이후로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크고 놀라운 소식입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영원한 멸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하는 소식보다 더 큰 소식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Ⅲ.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평화의 소식입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수많은 천군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14). 허다한 천군들과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하여 다음 두 가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의 지극히 높은 곳은 분명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좌정하고 계시며,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에 충만한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神性)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하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은 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났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을 온전하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4:9).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를 통해 아버지께 영광과 감사를 돌릴 것이 때문입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저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자기들에게 이토록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가지고 계셨던 영원하신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기 백성의 구원이라고 하는 계획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19:30).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평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을 받은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말미암아 이들에게 평화가 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① 그리스도의 중재와 대속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이 제거되고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2:14). 인생은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식으로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이는 인생이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으로 살다가 죄인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게 되고, 원수의 관계가 청산되어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이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안만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② 그리스도의 대속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3:12). 이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고 평화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이러한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공생애 기간 동안 평화의 사역을 감당하셨으며,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분 그리스도 안에서 한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한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참된 평화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참 평화가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하늘과 땅에서 이보다 더 큰 소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가운데서 이보다 더 기쁨을 주는 소식이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소식은 천군과 천사들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소식입니다. 더할 나위가 없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소식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또한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살아가는 저 세상의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하셨다는 소식은 하나님께는 무한한 영광이요, 그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우리에게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저 천군과 천사처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저 들의 목자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서 엎드려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최선의 예물을 드리면서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그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입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원하기는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며, 그에게 감사와 찬양을 통해 경배할 수 있기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