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61)

  본문 : 막 13:14

  제목 :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다가 나오실 때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성전 건물을 자랑합니다. 성전 건축에 쓰인 돌들이 대단하고 건물도 웅장하다고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그 자랑에 예수님께서 지금 보고 있는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머지않아 있을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엄청난 돈과 인력을 동원하여 건축하였고 사람들 보기에 정말로 자랑스러운 성전이지만 하나님의 진노하심 앞에는 사정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인간의 업적을 자랑하고 스스로 엄청난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자랑합니다. 저희 어렸을 때와 지금의 세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많은 분야에서 옛날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전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엄청난 것들을 가진 이 세상도 다 무너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최첨단을 달린다고 해도 아무리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는 일이 일어나면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이 무너지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예수님께서 말씀해주는 것이 마가복음 13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나타날 현상을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거든이라고 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거든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멸망의 가증할 일이 서지 못할 곳에 서거든 멸망이 가까이 온 줄 알고 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깨달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살만한 세상이라고 방심하지 말고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 멸망의 가증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고 늘 최후의 종말을 대비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1.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오늘 본문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1) 가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증한 것이란 더러운 것, 몹시 미운 것, 같잖은 것, 가소로운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자랑을 하든지 잘난 척하는 사람을 보면 가증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아도 가증스러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돈 좀 있다고 이 세상에서 좀 잘 산다고 영원한 천국을 무시하는 사람은 참 가증스러운 사람입니다.

 

  머리 좀 좋다고 좀 똑똑하다고 좀 많이 배웠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은 참 가증스러운 사람입니다. 그 좋다고 생각하는 머리 때문에 뭘 좀 안다는 것 때문에 정말로 알아야 할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착한 일 좀 했다고 자신이 선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가증스러운 사람입니다. 착한 일 한 것은 겨우 한두 개지만 남들이 알게 모르게 행하고 있는 악한 일들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다 지켜서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아보려는 사람은 가증스러운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할수록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수록 내 안에 있는 타락한 습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가증스러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를 무시하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2)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가증한 것을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말은 멸망에 이르게 하는 가증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많은 죄를 범하면서 삽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웬만한 것들은 용서해주시고 참아주십니다. 그러나 도저히 참지 못하고 멸망에 처하게 하는 흉악한 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멸망시키는 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화를 내시고 멸망시켰는지를 살펴보면 멸망에 이르는 가증한 죄기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한 가증스러운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 그들의 죄였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으로 그 열매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그를 지으신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어리석은 교만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고 모든 인류가 다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는 여덟 명의 노아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육신의 생명까지 죽임을 당하는 인간이 받은 최악의 심판이요 형벌이었습니다. 창세기 65절에 그 가증스러운 죄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어쩌다가 실수하여 한두 번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하고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바벨탑이 무너지는 사건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나 이스라엘과 유다가 전쟁으로 인해서 나라가 망하는 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고 멸망시키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런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육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는 아주 불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일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아주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는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교만함이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 계속해서 더 강하게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잠언의 말씀은 자주 교만과 겸손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18:12)

 

  야고보와 베드로 사도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라고 하셨습니다.

 

  교만한 것은 패망의 선봉이고 멸망의 선봉이며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일 조금 하고 잘난 척하고 교만한 것보다 부족함을 알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시는 것은 우리가 잘난 척하는 것을 보기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교만은 사람을 멸망 길로 달려가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고 잘난 척하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난척해도 십자가의 복음 앞에 굴복하지 않으면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 가지고 있었던 악한 생각과 악한 계획이 인간의 마음에 계속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마음을 따라 살지 않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악을 행하면서 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대부분은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선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면 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요지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다를지라도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는 대체적으로는 비슷하게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악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하게 사는 사람보다 악하게 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선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대부분 악도 행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악하게 사는 사람이 벌을 받고 멸망을 당하면 좋겠는데 세상은 악한 사람이 더 잘 살고 더 큰소리치면서 삽니다. 선한 사람은 늘 손해만 보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강 적당히 사람들 보는 앞에서만 선한 척하고 뒤에서는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은 이미 멸망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악령이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것이고 그 악령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그 사람 안에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예수님도 믿게 하시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도록 격려하고 계십니다.

 

  착하게 살아서 손해 본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착한 마음이 그 속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증거이고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이 있고 그 가증스러운 것 중에 명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멸망에 이르게 하는 가증스러운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다고 했습니다.

 

  여기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본문과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 24장 살펴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15절에는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 9, 11, 12장의 말씀을 염두에 둔 것으로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폐하고 우상을 성전에 세운 것을 말합니다.

 

  역사가들은 이런 일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이미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주전 168년에 수리아의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그 제단에 부정한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다가 하나님 대신에 이방 신상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부정한 짐승으로 취급하신 돼지를 잡아 제사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침범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아주 흉악한 죄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정말로 가장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우상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실 때 1, 2계명이 이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일은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제 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세우지 말고...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우상숭배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잡동사니를 말씀에 섞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하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진리도 모르는 가짜 목사가 절에 중을 찾아가서 함께 손잡고 헛짓을 하는 것을 보면 참 가증스럽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과 손을 잡아요? 참 같잖은 짓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전하라고 당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설교라고 하는 사람이 잘난 척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거룩한 강단에 선 것을 보면 참 가소롭습니다. 자기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죽을 짓을 하는 것도 모르고 지껄이는 것을 보면 참 한심스럽습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전파라는 위대한 사명을 버리고 엉뚱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강단은 마치 우상숭배 하는 이교도가 하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목사라고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면서 폼을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저도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엉뚱한 말을 하기 위해서 거룩한 강단에 서는 것이 멸망으로 가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와 반대되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엄청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의 강단에 서 있는 것이 멸망으로 달려가는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김에 있어서도 정말로 두려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십계명 제삼 계명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여서 예배를 건성건성 드려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배드릴 때 형식적으로 드리고 성의 없이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위와 같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거룩한 무리답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누가 교회당 문을 닫아버렸으면 좋겠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교만하게 살아가고 거만하게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지 않는 사람이 거룩한 무리인 성도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에 선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멸망의 가증한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받기 위해서 교회에 온 사람이 오히려 멸망의 길로 가는 가증스러운 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자리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3~40년 후인 주 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폐허를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시기를 그런 조짐이 보이면 유대에 사는 사람은 빨리 산 위로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로마 군인을 힘없는 유대인들이 싸워서 방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전쟁은 유대인들이 멸망의 가증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유대인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산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도피하라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산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도 산이고 십계명을 받은 것도 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하게 하신 설교도 산에서 하셨습니다. 그 설교를 산상보훈이라고 합니다. 지금 말씀을 하고 계시는 곳도 감람산이라고 하는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시는 것을 하나님께로 도망가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도피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우리 같은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복음의 비밀을 아는 우리가 무엇이 부족해서 멸망의 가증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따라가겠습니까? 뭐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뭐 엄청난 재미가 있다고 얼마나 더 잘살아보려고 얼마나 더 세상일에 행복해지려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따라가려고 합니까?

 

  좀 재미있게 신앙생활 하겠다고 큰 교회로 가는 사람을 보면서 코로나를 핑계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작은 핑계를 대면서 복음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저들이 만약에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불신자로 생애를 마치고 지옥형벌을 선고받을 때 저를 얼마나 원망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식이 말이야 그렇게 중요한 것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라면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해주지 말 안 들으면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가지 이렇게 중요한 것을 건성건성 이야기하고 말아 이 나쁜 놈아 라고 원망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의 면류관 영생의 면류관을 받아 쓰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성도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평생 복음을 전한 일이 참 보람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나 죽으나 언제나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광성교회가, 광성교회가 특별히 후원하는 순교 기념사업회나 산하의 복음연구소와 목회자 훈련원이 이 복음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가를 늘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우상숭배, 악한 마음, 교만한 마음이 멸망에 이르게 하는 가증한 것임을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를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으로 알고 사모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이미 멸망의 가증한 일을 행하면서 멸망 당할 날을 기다리면서 삽니다. 그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따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로 피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여기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