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요19:28-30

 

(요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요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에 달려서 당신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운명의 시점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서 당신의 사역을 다 마무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항상 자기 백성들의 구원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심부터 그분이 이 땅에서 33년 동안 사시고 갖은 고난을 다 당하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모든 역사는 오직 당신의 자녀들을 저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고자 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당신의 제자 가룟인 유다로부터 배반을 당하시고 로마의 군병들에게 끌려가서 4번에 걸친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시고 끝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7마디의 말씀을 하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19:26) 보라 네 어머니라(19:2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7:46).

내가 목마르다(19:28).

다 이루었다(19:30).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

예수님은 이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긴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여섯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목이 마르셨습니다. 낮 열두 시가 지난 시간이면 뜨거운 태양볕이 내리쬐는 시간입니다. 중동 지방의 한 낮은 특히 온도가 많이 올라가는 뜨거운 기후입니다. 거기에다 피를 많이 흘리신 예수는 심한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목 마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이신 그 분이셨지만, 그 분이 육신을 입고 계셨기에 그분은 육신이 당하는 모든 고난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소리에 로마 군병들은 신 포도주를 예수님께 먹였습니다. 이 신 포도주를 마신 후에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래 이 표현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라는 것은 다 이루어졌다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성경을 포함한 당시의 문헌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사용하는 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종들이 주인으로부터 맡은 일을 마친 후에 주인에게 보고하기를 분부하신 일을 다 마쳤습니다.”라고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킨 후에 내가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라고 할 때 사용했습니다. 자신이 계획한 일을 마치고 내가 할 일을 다 끝냈습니다.”라고 할 때 사용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마치고 제사가 끝났습니다.”라고 할 때 사용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완성했다, 온전히 지켰다, 마쳤다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고후12:9, 2:27, 딤후4:7).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 가운데 이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도 근본적으로는 위에 나타난 의미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총정리하시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성취되고, 이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더 이상의 사역이 필요가 없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다 이루었다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하는 사역 완수의 보고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서 창조된 모든 세계는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인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이었습니다. 창세기 131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완전했습니다. 모든 것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최고 걸작품인 인간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어 버린 뱀의 꾀임을 받은 하와가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그것을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인간에게는 죄라는 것이 들어왔고, 그 결과 사망이라는 엄청난 형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는 인간의 타락과 함께 타락하게 되었고, 썩어짐의 종노릇 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 번성하는 것을 완전히 막아 버리려고 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죄인들을 이 세상에 살도록 놔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인류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하실지라도 저 백성들의 죄를 간과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죄를 누군가의 대속을 통해서 해결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짐승이 죽고 피를 흘려고 그 피가 인간의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피는 임시방편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선택된 자기 백성의 죄를 영원히 제거하는 길을 진행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가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도록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가 있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죄 값을 치루어야 하는 자가 죄인이라면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한 형벌로 인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계획 속에서 성부 하나님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약속을 맺었습니다. 이 언약을 가리켜 신학에서는 구속언약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인간의 세상에 내려와서, 인간의 삶을 사시고, 선택받은 자기 백성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늘과 땅의 주가 되시고, 장차 심판의 주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분명 죄에 대한 결과로 죽음이라는 것이 불가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백성이 죄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택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 죄값을 치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창조자이신 그 분이 피조물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무죄하신 그 분이 죄인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시며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모든 만물과 인간의 주인이신 그 분이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높임을 받으셔야 하실 그 분이 그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시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그 분이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당신의 백성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약속하신 모든 것을 다 완수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영원 전에 맺으신 언약 중에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셔야 할 모든 사역을 다 마치신 것입니다. 즉 성부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을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중 기초가 되는 사역을 다 완수하신 것입니다. 그 시점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 제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그 모든 사명을 이제 완수했습니다.”라고 보고하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Satan에 대한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승리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이후의 모든 역사는 사탄과 예수와의 피나는 투쟁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모든 인류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멸망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 사건에 개입하셔서 사탄의 계략을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은 가장 먼저 하와를 꾀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하고, 아담을 그 죄에 가담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게 만들었고, 모든 인류가 그 죄의 대가인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메시야가 세상에 오는 길을 막고자 하는 사탄의 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예언하심으로 사탄의 계략을 물리치셨습니다(3).

그 다음 사탄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도록 함으로 여인의 후손이 탄생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셋을 준비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인 여인의 후손이 세상에 오기 위한 계보를 이어가셨습니다(4).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의 사람들이 혼합하여 죄악이 관영하도록했습니다. 이를 통해 온 세상을 하나님으로 하여금 심판하시도록 함으로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인 노아를 준비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택한 백성들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6장 이하).

사탄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택자 아브라함을 불러내심으로 선민의 조상을 삼으셨습니다(12장 이하).

 

 

사탄은 애굽의 바로를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의 씨를 말려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메시야의 계보를 중단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하셔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킴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진행시키셨습니다(출애굽기).

사탄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충동질하여 이방 신들을 섬기게 함으로 여호와 신앙을 없애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면에서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마다 사사들을 세우셨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사사기).

왕정 시대에서도 사탄은 아달랴라는 여인을 들어서 유다 왕국의 계보를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아하시야의 어머니였는데 그의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분풀이로 유다 왕국의 다윗 자손을 완전히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하시야의 누이이며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던 여호세바를 통하여 요아스 왕자를 숨기게 하셨고 성전에서 6년을 자라게 하심으로 사탄의 계략을 물리치셨습니다(왕하11).

이후로 사탄은 수많은 계략을 통하여 메시야의 계보를 중단시키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는 이 사탄의 계략을 보기 좋게 물리치셨습니다.

마지막 때 사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방해하려고 요셉을 충동질하여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를 사생아로 만들려고 했습니다(마태복음 118-21). 이는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을 가지고 오셔야 하는데 사탄은 이를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패하고 그 아기가 탄생하자 사탄은 헤롯의 유아 살해 정책을 통하여 아기 예수를 살해하려 했습니다(마태복음 213-18).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사탄의 이 계략이 실패하게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사탄은 메시야가 세상에 오시는 길을 막고자 부단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의 길을 방해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탄이 발버둥을 쳐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메시야는 세상에 오셔야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절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1절에서는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라고 했습니다.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그 약속된 메시야가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의 계략이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메시야의 탄생을 막는데 실패한 사탄은 이제 메시야이신 예수가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인 40일 금식 후부터 사탄은 예수님을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보기 좋게 패했습니다(마태복음 4).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사탄은 예수님의 측근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가족들을 통하여, 때로는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탄이 동원한 방법은 메시야이신 예수를 제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메시야의 사역을 완전히 끝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사탄은 자신의 승리를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이 바로 당신이 걸어야 할 마지막 길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역이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는 것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사탄의 모든 계략을 폐하시고 최종 승리를 거두셨음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15절에서 예언되었던 대로 사탄은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물어서 치명상을 입혔지만, 여인의 후손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도록 한 승리를 거두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신 것은 이처럼 끊임없이 도전해 온 사탄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사탄은 예수를 향하여 도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승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한 구속 완성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육신을 입고 이 땅에까지 낮아지신 것은 바로 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엄청난 사건을 위해서 30년 동안을 준비하셨고, 3년 동안 본격적인 발걸음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동안 여러 번에 걸쳐서 자신이 이 일을 위해서 오셨음을 알리셨습니다. 마태복음 1621절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018, 19절에 보면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045절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당신의 생애 동안 이 십자가를 향하여 모든 목표를 맞추시고 삶을 사셨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이 십자가를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특히 그 분의 생애 마지막은 처절하리만큼 십자가를 의식하셨고 그 고통을 인하여 인간적인 아픔을 의식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잘 아셨고, 특히 자기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릴 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외면을 당하실 일을 아셨기에 그분의 고통은 더욱 컸던 것입니다.

이제 그 모든 일이 현실로 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아버지 하나님은 그 아들을 외면하심으로 인하여 예수는 하늘과 땅으로부터 모든 외면을 당하신 외롭고도 외로운 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일이 너무 괴로워서 한때 아버지께 부탁하시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간구하기까지 하셨습니다(26:39). 그러나 그분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고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시고 십자가를 달게 지셨던 것입니다(26:39).

이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온 인류 중 당신의 백성들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한 마리 속죄의 어린 양이 되셔서 골고다 십자가에서 피와 살을 다 주시고 죽으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한 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한 마리의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그 사역이 완성되는 순간 예수님은 선언하시기를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선언은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을 향하여 내가 이미 너희들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후로는 나를 믿는 자가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십자가상에서 외치는 주님의 한 마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한마디의 말은 비록 짧은 것이었지만 이 음성이야말로 온 세상을 뒤흔드는 음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이 음성이야말로 최고의 소망을 약속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선포되는 음성이었습니다.

피를 흘리며 다 죽어가는 죄 없는 한 죄수의 입에서다 이루었다라고 선언되는 순간 이 세상에 사는 자기 백성들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한 번에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시는 예수님의 이 외마디 음성은

성부 하나님께 성자 예수께서 자기의 사역을 완수했음을 보고하시는 음성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했던 사탄에게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승리를 선언하시는 음성이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선언하시는 음성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음성이 바로 오늘 우리를 존재하게 했습니다. 이 음성이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게 했습니다. 바로 이 음성이 이 시간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우리는 매년 고난 주간이 되면 예수님의 이 고난에 대하여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그 자체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고난이 없었다면 우리의 죄사함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고난이 없이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고난 주간을 맞이할 때마다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 예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감사하며 이제는 오히려 한 계단 더 나아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예수님의 이 십자가 사역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주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