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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2.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51)

  본문 : 막 12:13-17

  제목 :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13.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지난해부터 마가복음 강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며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죄에서 멸망에서 구원을 받게 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기록배경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고 드디어 당시에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여 로마에 사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로마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네로황제가 로마시 변두리에 불을 질렀는데 그 불이 도시의 2/3를 태울 정도가 되자 그 죄를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쓰게 해서 방화범으로 몰고 붙잡아다가 비참하게 죽였습니다.

 

  당시에 생전 처음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로마 황제와 당국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니까 그 어렵게 믿은 믿음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라는 분이 누구이시기에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이렇게 박해를 당하고 죽임을 당해가면서까지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는가 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네로의 박해로 인해서 사도바울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감옥에 있으면서 그런 로마에 사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생애를 잘 알고 있는 베드로의 제자인 마가를 급하게 로마로 불러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록하게 해서 그들에게 주었는데 그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마가복음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도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어려웠을 때는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예수님을 믿으면 공부할 기회도 주어지고 부자가 되기도 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보람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와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세가 역전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더 자유롭게 살고 더 재미있게 삽니다. 좋은 일 보람된 일은 그들이 더 잘하고 더 많이 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예수님을 믿겠다고 교회에 오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른 복음을 알고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사람처럼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렵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사람도 믿음을 버리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도 왜 이렇게 예수님을 그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따라야 하는가를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고 따라야 하는지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이신지 예수님이 과연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가 되시는지 왜 복음을 믿는 믿음이 그렇게 소중한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예수님을 찾아왔던 바리새인과 헤롯당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오늘날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런 어리석은 인간의 질문에 당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이 더 교묘하게 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예수님을 찾아온 목적)

 

  본문 13절에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라고 했습니다.

 

1)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라고 했습니다.

  ‘책잡는다라는 말은 덫을 가지고 짐승을 사냥하는데 쓰는 용어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책잡으려대신 올무에 걸리게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가서 예수님께 곤란한 질문을 해서 올무를 놓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말을 흠잡아서 예수님을 곤란에 빠지게 하고 결국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여 신성모독 죄를 범한 나쁜 사람으로 몰아서 처형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말을 하면 좋게 듣고 찬동하고 따르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무엇이든지 흠집을 내고 반대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심각한 문제는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 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 말씀을 연구한다는 사람 중에서 성경 말씀을 부정적으로 보고 여기저기서 흠집을 내고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가기 위해서 사탄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여 믿음을 빼앗아가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사탄의 종이 되게 하고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게 하는 흉악한 사람들입니다.

 

2)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기 위해서 보낸 사람이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대표를 뽑아서 보냈습니다. 그냥 아무나 보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책잡기 좋은 상반된 두 부류의 사람을 보냈습니다.

 

  바리새인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지키는 데 가장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서기관이나 장로들이 대부분 바리새파였고 사도바울도 자신을 과거에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헤롯당은 침략자 로마가 분봉 왕으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헤롯왕을 따르며 로마에 대하여 호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 강점기에 일본에 아부하며 자기 이익을 챙기던 친일파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유대인이지만 유대교를 신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바리새인과 침략자 로마를 따르고 헬레니즘을 따르며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헤롯당으로 사로 상반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로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두 사람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을 책잡아 죽이려는 일에는 마음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이나 제사나 성전에서의 종교활동을 폐하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헤롯당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싫어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를 종교화하여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고 좋은 일 하여 세상 복을 받고 살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지키며 바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헤롯당처럼 세상 문화를 따르며 세상 출세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천국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출세나 세상의 이익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 복음에서 책잡을 일을 발견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복음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소중히 여기고 살면 엄청난 것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고 복음을 거부하려고 사탄이 보낸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올무에 걸리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믿는 바른 믿음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귀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함정에 빠지게 하는 방법)

 

  본문 14절에서 15절 상반절에 “14.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 대라고 했습니다.

 

1) 그들은 먼저 예수님을 높이는 척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그들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가 되심을 몰라보고 하대해서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 보면 최대한 예를 갖추고 높여서 부른 호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가르쳐주신 모든 것을 인정하고 그의 가르침에 따른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보통의 선생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고,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하신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가르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거짓이나 가짜를 가르쳐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거짓 선생이 많은 세상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겉모양 보지 않으시는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만 보지 않고 사람이 가진 것만 보시지 않고 편견을 가지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것은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외모나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가르치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그대로 가르치는 일은 참 귀한 일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참된 선생님이라고 불러놓고 사실은 가식적으로 거짓말로 칭찬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는 선생님이라고 칭찬하고 난 후에 방심할 때 엉뚱한 질문을 해서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요즘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칭찬받는 것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칭찬에 마음을 빼앗기고 방심하면 금방 방어하기 곤란한 공격이 들어옵니다.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시고 칭찬받을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칭찬받을 때 그 칭찬이 진정으로 하는 칭찬인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그 칭찬으로 인해서 교만하게 되고 잘못된 길로 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칭찬하고 나서 본심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아주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데 뜬금없는 질문을 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를 말하고 세금은 유대인이지만 지배국인 로마에 바치는 세금을 말합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이 로마 당국에 바치는 세금이 많이 있었습니다. 추수한 농사의 1/10이나 과일의 1/5을 바치는 지세(地稅)와 소득의 1%를 바치는 소득세와 사람마다 드리는 인두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금이란 인두세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14세부터 65세까지 여자는 12세부터 65세까지 1데나리온씩 바치는 세를 말합니다. (1데나리온은 로마 화폐로 노동자 하루 일당에 해당함)

 

  앞서 11장 공부할 때 유대인들은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20세가 되면 일 년에 반 세겔씩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반 세겔은 노동자 이틀분의 품값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바치는 성전세와 로마 당국에 바치는 인두세를 다 내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유대인 중에서 로마 당국에 인두세를 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을 침범해서 핍박하며 다스리는 로마 당국에 협조하며 세금을 내는 것을 반역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 예수님의 말을 책잡으려고 온 사람은 인두세를 내는 것을 반대하는 바리새인과 인두세를 내지 않으면 반역자로 몰고 갈 헤롯당원이 함께 왔습니다. 인두세를 내라고 하면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책잡아서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배반한 반역자로 몰아서 제거하려고 할 것이고 인두세를 내지 말라고 하면 헤롯당원이 그것을 책잡아서 예수님을 로마를 배반한 반역자로 몰아서 붙잡아가려고 계획하고 왔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 때 교회 지도자와 일본 헌병이 같이 와서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가합니까 불가합니까 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신사참배를 한다고 하면 교회 지도자가 배신자라고 할 것이고 신사참배가 불가하다고 하면 일본 헌병이 붙잡아 갈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곤란한 형편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을 좋아해서 돈을 많이 벌려고 하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비웃을 것이고 그렇다고 돈이 싫다고 하고 돈을 안 벌면 나뿐만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가족까지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좋아하면 불신자라고 할 것이고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산다고 하면 세상에서 무책임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면 세상을 좋아한다고 할 것이고 그렇다고 돈을 멀리하고 기도만 하면 게으른 자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양자택일의 곤란한 경우를 만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비웃음을 받더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을 최우선에 두시기 바랍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함정을 물리치는 방법)

 

  본문 15절 하반절에서 17절에 “15.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말로 책잡으려고 와서 곤란하게 질문을 한 그들에게 아주 간단한 말 한마디로 해결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고 그만 돌아갔습니다.

 

  성전세를 바칠 때 보셨듯이 하나님께 바치는 돈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세겔을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당국에 바치는 인두세는 가이사의 얼굴과 가이사의 글로 된 데나리온을 바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국가에도 충성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인 교회에도 충성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올인해서 교회에만 충성을 다하고 국가가 주는 의무를 소홀히 합니다. 아는 사람 중에 이단성이 좀 있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교회가 하는 일에는 아주 충성을 다합니다. 먼 거리를 택시를 타고 새벽기도를 다니고 먹을 것이 없어도 헌금은 먼저 합니다. 그런데 국가에 낼 세금이나 심지어는 전기 수도요금 같은 것도 안 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 나라에는 소홀히 합니다.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은 매우 잘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일에는 냉정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쓸 것은 다 쓰고 남는 것 중에서 최소한의 의무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우주 만물의 주인으로 믿고 예수님을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어주신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최소한의 성의만 표시하면 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지나친 세상 재물에 욕심을 가지게 해서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인들의 헌금을 없애서 헌금 때문에 시험받아서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없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우리 믿음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그런 충성심도 없애고 감사하는 마음도 없앤다면 무엇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겠습니까?

 

  이런 일로 시험을 받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마음껏 벌어서 쓰십시오. 그러나 그중에 최소한의 것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시면 됩니다. 그 최소한의 것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탄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탄의 전술 전략을 늘 기억하시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며 복음의 시작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