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50)

  본문 : 막 12:1-12

  제목 : 모퉁이의 머릿돌 되었나니.

 

  “1.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4.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요즘 저는 가장 귀한 삶이라는 노래를 입에 달고 흥얼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삶이라 하여도/ 스치듯 지나는 삶이라 하여도/

  후회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은/ 가장 귀한 삶을 앎이라/

  내가 꿈꾸는 일 이루지 못해도/ 내가 바라는 것 다 갖지 못해도/

  낙심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은/ 가장 귀한 삶을 앎이라/

  내가 복음을 알고/ 내가 복음을 믿고/ 내가 복음을 전하며 살아간다면/

  나의 삶은 가장 귀한 삶이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가식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진짜보다 더 잘 통하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외면을 당하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그런 거짓 때문에 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삽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들을 붙잡고 허무한 삶을 사는 것이 오늘날 세상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온갖 거짓말들로 세상을 향한 선동적인 말들을 선포하고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들을 붙잡고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은퇴 후에도 미력한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이 복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20여년 전에 연구해서 설교한 로마서 강해 설교 220여 편을 정리해서 USB에 넣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목사님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냥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내도 되겠지만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 하니까 USB에 넣어서 손에 넣어주면 성의를 봐서라도 한 번쯤 읽어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돈이 들지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을 내 볼 생각도 했지만, 책으로 출판하려면 10권 정도가 필요하고 그 비용이 엄청나서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 가치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건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기초석이 우리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을 알고 믿고 전하는 삶이 가장 귀한 삶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더니

 

  본문 1절에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라고 했습니다. 비유라는 말은 어떤 일을 설명하면서 인간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통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설명할 때 쓰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잘 알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나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시면서 이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비밀을 알아들을 수 없게 하기 위함이라고도 했습니다. 선택받은 백성에게는 복음의 비밀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포도원 주인과 농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땅에다가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나쁜 짐승이나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도 만들었습니다. 포도를 추수하면 포도즙을 만들 즙 짜는 틀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지킬 수 있는 망대도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 포도원에는 좋은 포도나무도 심었을 것이고 잘 기르고 관리하는 도구나 추수 도구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누구든지 와서 일만 하면 약간의 세를 내고도 충분하게 먹고살 만한 좋은 포도원이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주인이 멀리 타국으로 나가서 산 것이었습니다. 곁에 살았다거나 가끔 왔다 갔다 할 거리에 살았다면 포도원 농장주인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당연히 해마다 추수해서 세를 바쳤을 것입니다.

 

  주인이 멀리 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거나 주인이 외국에서 살다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이 농장은 영원히 내 것이 된다는 생각에 주인을 멀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농장은 이 세상이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조금만 아시는 분이라면 이 비유를 듣고 포도원이 이 세상이고 포도원을 만들어주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좁게는 포도원을 이스라엘 나라로 보고 그 주인은 이스라엘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포도원을 넓게 보아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고 농부는 우리 모든 인간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우리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연구해보면 연구할수록 이 우주 만물은 기묘하게 창조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조금만 잘못되었더라면 인간이 살 수 없습니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 조화를 이루며 우리가 잘살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벌을 받을 때 이 세상도 저주를 받아서 창조 당시처럼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우리가 살기에 엄청나게 좋은 곳입니다.

 

  농부들은 우리 인간을 말합니다.

  포도원이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고 하면 여기 농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넓게는 포도원을 이 세상이라고 할 때 농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농부는 농부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농부는 아닙니다. 자기가 소유한 땅에서 자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땅 주인과 나누는 소작인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가난한 농부들은 자기 소유의 땅이 없어서 남의 땅에 농사를 지어서 땅 주인과 나누는 소작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추수한 것을 주인과 나누어야 하니까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소득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배려해준 농장주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살만해지니까 농장주인이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이 농장이 내 것이 되고 내가 지은 농사를 내가 다 가져도 되는데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농부는 아예 그 농장주인이 없다고 주장하고 그 농장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남이 애써 만들어 놓은 농장이 자기 것이라고 하면서 차지해 버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이 그 나쁜 농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주인이신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고 자기가 주인처럼 행세하고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농장주인처럼 우리를 소작인으로 대우하셔서 추수한 것을 절반이나 요구하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교회에 다니면 헌금도 하고 십일조도 해야 하니까 하나님께서 주인 행세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헌금 때문에 하나님은 없다고 선언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런 요구를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헌금은 사실 우리를 위해서 쓰여집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리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쓰고 복음을 전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일에 쓰고 우리 중에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위해서 씁니다. 헌금이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하나님께 송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쓰기 위해서 서로 조금씩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인정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주인 되심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세상에서 온갖 것들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부인합니다. 이 우주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이 아니라 우연히 어쩌다가 생겨난 주인 없는 땅이고 우리 인간 스스로가 진화하여 연구하고 노력하여 좋은 세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주인이라고 우깁니다.

 

  그러나 정말로 똑똑한 사람들은 그런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 주장인가를 압니다. 이렇게 신비하고 이렇게 좋은 것으로 된 이 우주가 우연히 생겨났다는 말은 바보들의 주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시도 살 수 없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정말로 귀한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본문 2~4절에 “2.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4.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라고 했습니다.

 

  추수 때가 되자 외국에서 살던 포도원 주인이 종들을 보내서 약속한 소출 얼마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소출의 얼마를 주기는커녕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려서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처음에 보낸 종들은 심히 때렸다고 했는데 그다음에 보낸 종들은 때려서 상처를 내고 능욕을 하고 죽여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종들을 많이 보내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소출의 얼마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내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특별한 나라인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가나안 땅에 살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애굽의 종이 되었을 때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다시 들어와서 살면서 또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하게 살 때마다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그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순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인데 포도원 농부처럼 종들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성경에 다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성경 말씀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면서도 무시하고 사는 사람,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남을 속여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인 줄 알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귀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 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줄 알고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가장 귀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본문 6~8절 말씀에 “6.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농장주인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습니다. 설마 아들을 보냈는데 종들처럼 대하기야 하겠는가 아들은 존대하리라는 생각으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오히려 아들만 죽이면 상속자가 없어지니까 유산을 차지하려고 아들을 죽여버렸습니다. 더 이상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민망하고 어리석은 일을 유대인들이 실지로 행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흉악한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그 흉악한 죄를 다 용서받게 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아직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지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안 다니는 것이 자유인 줄 알고 자기 마음대로 죄악 가운데서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복음을 모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자신들의 알량한 선행을 자랑하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율법을 가르치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영원한 천국보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최고의 것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나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엄청난 일을 해주신 분이십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믿고 따르며 자랑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삶입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본문 10~11절에 “10.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성전이나 아주 특별한 건물을 지을 때는 석공들이 돌산에 가서 적당한 크기로 돌을 자르고 다듬어서 보내면 건축하는 사람들이 그 돌의 용도에 따라서 쌓아 올리면 건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석공들이 건물의 아주 소중한 기초석을 만들어 보냈는데 건축가들이 그 돌의 용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쓸모없는 돌이라고 생각하고 버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돌이 건물의 가장 주요 핵심인 기초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인 그 예수님이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가장 소중한 기초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기초요 믿음의 기초요 구원의 기초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영원한 천국의 복음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강해 설교 원고를 정리하다가 보니까 이런 예화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 어떤 나라에 갔더니 아이들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구슬치기를 하면서 놀고 있더랍니다. 그것이 다이아몬드인지를 알아챈 그 사람이 아이들에게 초콜릿 몇 개를 주고 바꿔서 가지고 와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답니다.

 

  실지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약간의 세상 쾌락과 바꾸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아무도 몰라주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저 스쳐 가는 바람과도 같이 흔적 없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내가 꿈꾸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내가 바던 것 다 갖지 못하고 사는 허무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복음을 알고 복음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산다면 그것은 가장 귀한 삶을 산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귀한 삶을 세상 부귀영화 때문에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