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향하여

 

 

 

 

히브리서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에 많은 찬양곡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김두완 장로가 작곡한 본향을 향하네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 때 환난의 궂은 비바람 모질게 불어도 천국의 순례자 본향을 향하여 천국의 순례자 본향을 향하네라는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 곡은 순교자라고 하는 칸타타에 등장하는 첫 곡입니다. 그리고 이 곡의 첫 페이지에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한 북한 교회의 성직자에게 이 곡을 바칩니다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의 아버지 목사가 북한에서 순교하셨는데, 그 아버지를 추모하며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이 찬양을 듣고 말씀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영상 준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나그네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11~2절에서는 이 나그네를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도는 삼위 하나님의 역사에 따른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존재를 나그네라고 소개합니다. 사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잠시 머무는 사람입니다. 이는 여행을 위함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떠도는 신세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나그네는 지금은 비록 고향을 떠나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는 항상 자신이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게 되고, 그 고향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나그네의 삶을 살았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그네로 살아가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예비된 본향이 있었고, 언젠가 그 본향에 돌아가게 될 것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들의 믿음에 대해서 하늘의 본향으로 응답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도 저 선진들과 같은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우리에게는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본향이 있습니다. 이 본향은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하시고 하늘로 가셔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곳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그곳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저 선진들이 가졌던 그 믿음을 전수 받은 우리도 그 믿음과 소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나그네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본향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믿음을 따라 죽은 선진들

 

 

본문 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도는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선진들이 믿음으로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선진들이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예로 들었던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이후에 등장하는 이삭과 야곱, 요셉, 모세, 그리고 많은 신앙의 선진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지만, 그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겨졌다는 것을 죽음과 같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도는 저들이 실제로 죽었느냐 죽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단지 아담 이후의 그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자들 가운데는 분명 믿음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분명 믿음으로 시작했는데 그 믿음을 버리고 율법으로, 세상으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3절에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흔들리고 있는 자들에게 저 신앙의 선진들이 걸어간 믿음의 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모델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저들의 복된 삶의 모습과 죽음의 모습은 가장 복된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칭찬은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을 따라 죽었다라고 하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 땅에서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반드시 끝을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모든 인생에게 정하신 법칙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살다가 가는 모든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살아가 믿음으로 죽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자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은 결국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자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부류는 믿음이 없이 살다가 믿음이 없이 죽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인도하심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천국의 약속도 없고, 영원한 생명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이들에게서는 아무런 소망도 찾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나는 어디에 속하고 싶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믿음을 따라 살다가 믿음을 따라 죽는 복된 자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저 신앙의 선진들이 걸었던 그 믿음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 신앙의 선진들의 모습처럼 믿음을 따라 죽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외국인과 나그네로 산 선진들

 

 

본문 13~16절에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저 선진들이 믿음을 따라 살았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는 했는데, 저들은 그 약속을 자신의 시대에 성취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거짓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들은 그 약속의 성취로 말미암아 얻는 결과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그 약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자신의 시대에 성취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성취에 대해서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앞에서 저들이 믿음을 따라 죽었다고 하는 고백은 바로 저 선진들의 이 믿음을 끝까지 붙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들은 비록 현재는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훗날에 성취되는 그 광경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환호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856절에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창세기 122장에서 약속한 자손에 대한 약속과 그 후손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보았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약 2,000년 후에야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그로 말미암아 탄생하게 되는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 선진들은 이 땅을 나그네처럼 살 수가 있었습니다. 저들은 이 세상의 것이 자신들이 추구할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궁극적인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저들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 땅의 것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잠시 머물고 떠나야 하는 타향이요, 여행지처럼 여겼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만 사용하다가 때가 되면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저 선진들이 이러한 믿음과 자세로 이 세상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저들은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본향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본향은 하나님이 저들에게 약속하신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저 선진들에게 본향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의로운 삶을 살지라도 그것은 그 본향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이 본향에서의 삶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저 본향에서의 삶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본향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저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붙들면서 이 땅에서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저들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나그네와 같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본문에서 증언(μολογέω)”은 공적인 고백, 선언, 선포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저 신앙의 선진들은 자신들이 가진 믿음을 많은 사람 앞에서 공적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들의 삶은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저들은 땅의 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저 잠시 머물다가 가는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언젠가 돌아가야 하는 본향이 있음을 증언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본향이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 선진들은 너무나도 확실하게 그 본향을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그 본향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땅의 것에 마음을 쏟고, 이 땅의 것에 집중하며, 이 땅의 것을 목표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땅의 것은 언젠가는 그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3:13~14). 우리는 쟁기를 잡은 자처럼 목표만을 바라보고 가야 합니다(9:62). 소돔을 나온 롯의 아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19:26). 우리는 이미 불환점(不還點;V1, the point of no return; 비행기가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앞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향하여 믿음 안에서 인내하면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선진들

 

 

본문 16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을 따라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철저하게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이는 저들 모두가 가진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그 본향을 소망했습니다. 그러기에 저들은 나그네의 삶, 순례자의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러한 믿음의 삶,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저 선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보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저들의 믿음이, 저들의 소망이 참된 것임을 증거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저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기뻐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는 표현은 흔쾌히 여기시고 기뻐하셨다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28:13, 3:6). 그리고 예수님도 이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22:31). 그렇다면 이 표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표현이었다는 말입니다.

 

 

사실 “~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영광스러운 표현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이는 아브라함에게나 이삭에게나 야곱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영예입니다. 아니 이 세상의 그 누가 이러한 영광을 쉽게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믿음에 있어서 인정을 받은 저 족장들에게 하나님은 이러한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믿음이 전수되는 모든 후대에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게 하셨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주어진 약속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전진한 저 믿음의 선진들을 하나님은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크게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저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선진들, 하늘에 있는 본향을 소망하며 흔들림 없는 믿음을 견지하며 살았던 저 선진들의 믿음과 소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예비하셨다라는 표현은준비하셨다, 견고하게 세우셨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하심, 또는 준비하심 등과 같이 하나님의 역사와 관련해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하늘의 본향을 소망하는 선진들을 위해서 친히 준비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 한 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 준비하신 처소와 관련됩니다. 요한복음 142~3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저 선진들에게 주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고 실현됩니다. 예수님은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말씀하셨는데(16:19~31), 이곳은 분명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곳입니다. 결국 이곳은 이 땅에서 믿음의 순례길을 마친 성도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21:2).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합당한 보상을 준비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소망을 향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소망을 성취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으로 불리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나와 같은 자의 하나님으로 불리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하지만 이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요, 반드시 성취될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미래의 일만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의 일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아니 믿음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믿음 안에서 삶을 마쳐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를 위해서 친히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과 소망을 굳게 잡고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본향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으로 불리기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믿음과 소망에 확실한 보상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순례길을 마칠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이 믿음의 순례길을 끝까지 완주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큰 영광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