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
사무엘상 8장 1~5절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성도 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5월에는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가정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또한 가정은 가장 기본이 되고, 기초가 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가정의 중요성은 강조되어 왔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가정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가정의 중요성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이 둘을 부부로 맺어주심으로 가정을 출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인간 사회에서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가정 안에서 지켜야 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친히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로 표현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가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 육신의 부모에게 아들의 도리를 다하심으로 이것이 사람의 마땅한 도리임을 몸소 보이셨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에서도 가정의 중요성과 그 안에서의 질서는 중단없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기관이 가정이기도 합니다. 가정은 분명 부부를 중심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 그리고 자녀들까지의 형제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너무나도 신비로운 관계이기도 합니다. 단지 부모를 통해서 자녀가 출생한다고 해서 그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가 바르게 독립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로는 함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와 자녀와 관계에서는 아무리 부모가 노력하고 몸부림쳐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는 부모의 생각과 자녀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존재하는 가정의 수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회라는 말도 등장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한 가정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 안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서 오늘 우리 가정의 문제를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우리 가정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바로 설 때 우리 교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바로 설 때 이 사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바로 설 때 우리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가정.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가정,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가정, 하나님의 기쁨으로 충만한 가정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우리는 우리의 가정의 구성원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나아가 우리의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의 달의 첫 주일을 맞이한 이 시간에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 엘리의 실패를 경험한 사무엘
성경에서 가정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아는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무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무엘은 스승이자 영적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 가문의 가슴 아픈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사사이자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엘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홉니요, 둘째는 비느하스였습니다(삼상2:34). 그리고 이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여호와의 법궤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엘리의 아들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12~26절에 보면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저들의 죄악은 크게 두 가지의 모습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일입니다(삼상 2:13~17).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의 성적인 범죄입니다(삼상 2:22). 하지만 이 두 죄악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된 일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저들의 실체에 대해서 사무엘상 2장 12절에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즉 엘리의 두 아들이 범죄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데 있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저들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들은 여호와의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에게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 가정의 문제는 저 두 아들의 범죄에 대한 엘리 제사장의 대응 때문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의 범죄라면 엘리는 심각하게 반응했어야 했습니다.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문제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아들들에게 한 말은 겨우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삼상2:23~25).
결국 엘리 제사장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 제사장과 그의 가문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심판의 확실성을 보이시기 위해 그 표징으로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2:34).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사무엘을 선지자로 부르신 첫 메시지를 통해서도 확증하셨습니다(삼상3:12~14).
결국 하나님의 이 심판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패배였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결과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이 함께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삼상4:11). 결국 하나님의 사람과 사무엘을 통해서 선언된 하나님의 심판이 현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무엘은 모든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았는지를 직접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Ⅱ.사무엘 아들들의 죄악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무엘과 그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사무엘의 아들들이 정도를 걷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라고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의 가정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 할지라도 영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미스바 대성회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데 앞장섰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무엘의 시대도 이제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자기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식 사사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사실 사사는 세습되는 직책이 아닙니다. 사사는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는 직책입니다. 따라서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을 돕는 보좌의 역할을 감당하는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는 사무엘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3절에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사무엘 아들들의 모습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 아들들이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사무엘의 길은 한마디로 청렴결백(淸廉潔白)한 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무엘의 길은 하나님께도, 백성들에게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삼상12:1~5).
하지만 사무엘의 아들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삶은 아버지의 삶과는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째는 저들의 사사로서의 정도를 걷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행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들은 사사의 가장 기본적인 직무인 재판에 있어서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뇌물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8장 21절에 보면 지도자가 갖출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뇌물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뇌물이 성행하는 것은 부패한 사회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미3:11).
결국 이러한 뇌물은 저들의 행하는 재판에서 그 결과를 굽게 했습니다. 잠언 17장 23절에서는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라고 경고함으로 뇌물이 얼마나 큰 폐단을 낳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공정함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재판함으로 백성들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사무엘의 아들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범죄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경건한 사무엘의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버지 사무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섬기며 사랑했는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아버지의 그 길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율법을 무시했습니다. 자신들의 유익만을 추구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저들은 아버지에 의해서 사사로 세움을 받았지만, 하나님에게서도, 당시의 백성들에게서도,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사사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Ⅲ.하나님을 버리는 이스라엘
사무엘의 아들들이 보여 준 이 악행들로 인해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본문 4~5절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는 사사시대를 끝내고 왕정 시대로 들어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7장 14절 이하에서 모세는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고자 할 때에 대해서 규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우고자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분명 아닙니다. 또한 그 왕 가운데서 다윗 왕이 세워지고, 그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음을 본다면 왕정은 분명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분명한 뜻이기도 합니다(마1:1).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왕정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의 왕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무엘 아들들의 문제를 가지고 왕을 요구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사사시대의 불안정함을 벗어나서 안정적인 왕정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 아들들의 범죄를 보면서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고자 하지 않고 인본적인 측면에서 해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제하고 왕이라고 하는 인간의 강력한 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부하고 보이는 인간 왕의 다스림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일차적인 책임은 사무엘과 그의 아들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일을 저버린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무엘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한 결과가 이스라엘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왕정이 시작되었지만, 이스라엘의 왕정은 궁극적인 실패에 이르고야 맙니다. 그 왕정은 얼마 가지 못했고, 나라가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북왕국은 앗수르에게, 남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 왕의 통치보다 훨씬 더 완전했습니다. 비록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인간 왕의 통치가 더 나은 것처럼 보였지만 말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나는 지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한 가정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나와 내 후손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이 일이 우리의 노력으로 열심으로 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이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열심으로 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가능한 일입니다(슥4:6).
하지만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의 역사만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다 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겔36:37).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세우면서,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와 우리 가정,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멋지게 쓰임을 받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가정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샬롬,
존경하는, 사랑하는 교회 가족 여러분께 이렇게 제 개인적인 사정을 전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4평남짓한 작은 원룸에서, 교회가는 것을 저보다 더 좋아하는 귀엽고 이쁘지만 너무나도 속 깊은 장한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젊은 아빠입니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예쁜 딸과 함게 너무나도 행복할 것 같던 제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알며 어른을 공경할줄 아는 너무나 대견한 딸을 지켜주고 싶어 매일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몇년전, 가정과 딸에 무관심했던 아내와의 가치관 차이로 결국 이혼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혼을 하였습니다.
이혼을 최종적으로 하며 가정법원에서 돌아오던 날,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집으로 오며 흘렸던 눈물이 벌써 3년 전의 일입니다..
그 후로는 저는 소중하고 너무나도 예쁜 저의 딸이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 없이 홀로 자라 가족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꿈자 목표였습니다.
잠시나마 가정을 이루어 예쁜딸도 갖게 되고, 딸과 함께 그 꿈을 이루어 행복할 지 알았지만 가정에 관심이 없던 그여자와 이혼을하며 저는 꿈을 끝내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이혼 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의 예쁜 딸아이만큼은 저처럼 불행한 삶을 겪게 하지 않으려 하루 15시간 이상 일을 계속했습니다..
공장을 다니며 퇴근하고는 배달아르바이트를하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정말 너무나 힘이들고 괴로웠지만, 집에 돌아와 천사 같이 자고있는 아이 얼굴을 보며 다시 힘을 냈습니다..
너무나 고되고 힘들 날들이였지만 저에겐 이루고 싶은 작은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겨내며 살았습니다.
저의 소원은 곧 있으면 클 딸에게 자기 방이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며 악착같이 살아가던 중, 얼마 전 비가 너무 많이 오던 날 배달을 나갔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날따라 점잖고 늦은밤에도 자기를 혼자두고 일을 나가도 이해해주던 딸이 천둥번개 소리가 너무 무섭다며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할 생활비 때문에 결국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고 후 의사는 많이왔던 비 덕분에 미끄러지며 충격이 많이 줄어 다행이라 했지만, 저는 차라리 눈을 뜨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까지 스쳤습니다..
왜냐하면 또다시 톱니 바퀴 같은 삶을, 너무나도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을, 다시 이 모든 고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회복하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건 감사했지만, 몇 일전 잠시나마 행복했던 그 생활은 무너졌습니다..
이혼하기 전 아내와 빚을 내 마련했던 작은 가게가 코로나와 겹치게 되며 많은손해를 보며 폐업을 하였고.. 그때 생겼던 빚들을 아직 해결을 못하여 계속 조금씩 연체되며 힘들게 갚아 나가고 있었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치고 회복하는동안 결국 채무로 인해 통장이 압류되고, 생활비조차 꺼내 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손에 쥔 돈은 5만 원도 되지 않아, 그걸 쪼개며 2주를 버텼습니다.
저는 거의 굶으며, 아이는 라면 한 봉지를 나눠 먹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라면 한봉지를 3등분으로 나누어 조금씩 끓여주고 저는 딸이 먹고 남은 국물을 조금씩 먹곤 하였는데 이렇게 산다는게 너무나 비참하고 괴롭웠습니다..
지금 상황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큼 힘이듭니다..
딸을 대리고 깁스를 한채로 은행을 가보았지만 당장 압류된 돈을 찾을 수 없고 재판을 통해 회생신청을 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법무사를 통해 회생을 신청하려 해도 150만 원이 넘는 비용을 감당할 길이 없고, 설령 신청한다 해도 몇 달은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어날 적 부터 기관지가 안좋던 딸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며칠 전부터 심한 기침과 인후통으로 매일 아파하며 울며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당장 병원에 데려갈 돈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 아빠로써 정말 마음이 찢어집니다...
그저 해줄수 있는거라곤 물을 끓여 조금씩 식혀서 통증을 가라 앉히며 괜찮아지기를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음에 가슴이 너무나도 아픕니다..
이렇게 비참히, 아무것도 할수 없는 제 현실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제 자신이 과연 이 사회에 , 아버지로서 살 자격이 있는지 글을 적으면서도 눈물이 납니다..
저는 정말 ..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모든것을 내려 놓고.. 저를 위해 만원한장도 쓰지않고 먹고 싶은것 놀고 싶은 것 아무것도 하지않으며 오로지 딸과 행복할 미래를 생각하며 돈이 되는일은 힘이 들고 피곤하여도 나가서 일을 하고 절약하며 작은 방이 딸린 작은 전세집이라도 얻기위하여 절약하며 살아왔지만 현실에 무지하고 언젠간 갚아야할 빚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무지했던 제가 결국은 이렇게 힘든 상황을 맞게 된 것 같습니다..
어디 말할 가족도, 친구도 없이 이렇게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읽어 주기를 바라며 적는 이 현실이, 어느 천사 같은 분이 계셔서 읽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글을 적어가고 있는 제가 과연 이 사회에 살아갈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염치 없지만, 그리고 너무나도 죄송하지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지금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평생 잊지 않고 반드시 은혜갚겠습니다..
몸이 회복되고 압류가 풀리면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이라도 몸이 낫는다면 일을 다시 하여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제 전부이자 삶의 이유인 딸을 걸고 하늘에 약속드립니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늘에 맹새합니다..
며칠 뒤면 예쁜 딸의 생일입니다.
라면 대신, 그저 따뜻한 밥 한 끼와 미역국 한 그릇이라도 해주고 싶은 것이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얼마전부터 치킨이 먹고싶다며 소원이라던 딸을 대리고 일부러 치킨가게가 없는곳 외진곳으로 걸으며 예쁜 딸에게 치킨가게가 없어 못사준다는 너무나 부모로써 부끄럽고 미안한 거짓말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딸 몰래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그날 딸과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옆에는 딸의 이쁜작은손이 제손을 꽉잡고있고, 모든걸 포기하고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작은 손길이 제 마음을 너무나 괴롭고 미안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해줄수없는 이현실에 여리고 예쁜 딸을 과연 제가 키울 자격이 있는지조차 스스로 의문이 듭니다..
너무나 힘이듭니다..
살고 싶습니다. 이겨내고싶습니다..
너무나 염치 없고 죄송하지만, 지금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을 부디 .. 부탁드립니다..
은혜를 주신다면 반드시 갚겠습니다..
몸이 회복되고 일을 하며, 법적절차를 통해 통장 압류가 풀리게 된다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통장이 풀리지않아도 몸이 조금만더 괜찮아지고 다리에 깁스만푼다면 저는 그랬던것처럼 일을 매일 해야합니다..
꼭 갚겠습니다..
제 딸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그리고 그 곁에서 제가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평안과 건강을 진심으로 기도드리며, 너무나 부족한 예쁜딸의 못난 아빠가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간절히 부디 기도드립니다..
새마을 금고 9 0 0 3 ㅡ 2 9 8 8 ㅡ 2 5 9 8 5 (윤 동 환)
부디 이 마지막 기도가 ..하늘에.. 그리고 사랑하는 존경하는 가족분들께 닿기를 그리고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부디 이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큰 은혜는 평생 딸과 함께 잊지않고 살아가며 마음 깊이 새기고 다시 갚아가겠습니다..
창밖 세상 속 행복한 사람들, 어느 가족들이 행복하게 대화하며 걸어 가는 모습들은.. 마치 저와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고, 절망 속에서 글을 올리는 지금 이 순간조차 너무나도 참담합니다.
그동안 눌러온 고통이 매일 저를 짓누르고,이제는 제 마음까지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하지만 제 곁에서 아빠 얼른 나아지게 해달라 매일 기도하는 어린 딸을 보며 또다시 버티고 있습니다.
차라리 제가 없다면 지금 사회복지는 어쩌면 제가 혼자 자랐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졌을테니 제가 없는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게 어쩌면 무능한 저와 함께 지내는 지금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딸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는 힘닿는 데까지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늘에.. 그리고 가족분들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혹시라도 이글을 읽고 도움을 주시는 천사같은 분이 계신다면,
제 딸과 함께 평생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새마을 금고 9 0 0 3 ㅡ 2 9 8 8 ㅡ 2 5 9 8 5 (윤 동 환)
가족분들 모두 언제나 부디 주님안에서 모두 따뜻하고 행복하신 시간들 보내시길 하늘에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부디 마지막 기도가 하늘에 그리고 가족분들께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예쁜딸의 너무나 부족한 못난 아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