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으로 살기
고린도전서 15장 57~5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 이름은 그래도 나름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처음 등장할 때는 그리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Χριστιανός)”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사도행전 11장 26절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당시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당하자 이를 피해서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파송했고, 안디옥 교회는 더 힘 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바나바가 당시 다소에 은둔해 있던 사울(바울)을 찾아가서 데리고 왔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안디옥 교회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때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세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Χριστιανός)”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당파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말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을 향해서 사용한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에는 단순히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표현에는 조소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자신들과는 무엇인가가 다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분명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라고 하는 사람을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향해서 비웃음 반, 또는 부러움 반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인(Χριστιανός)”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명 이런 사람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믿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소망하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활까지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세상은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믿는 자가 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요? 다시 말하면 부활을 믿는 성도의 모습은 세상 사람과 비교할 때 무엇이 다를까요? 무엇이 그토록 다르기에 세상 사람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요? 다시 말하면 왜 오늘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 세상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일까요? 우리가 가진 소망이 무엇이며, 그 소망을 붙들고 있는 우리는 어떤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부활 신앙으로 살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 성도에게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본문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1. 성도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어디에 있을까요? 목숨의 위협을 받아 가면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소망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도에게 주어진 최후의 승리에 대한 약속입니다. 즉 비록 이 세상에서 성도는 패자처럼 보입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성도에게는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승리가 성도의 능력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아무리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해 보십시오. 나에게서 구원의 여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나에게서 승리의 원동력을 찾을 수 있습니까?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최후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최후의 승리를 확실할 수 있겠습니까? 자꾸만 넘어집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의 결과는 승리가 아닌 패배요, 넘어짐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승리는 나 자신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를 최후의 승리자로 세우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우리에게는 살 수 있는 다른 길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공격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심지어 사탄의 공격에도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사탄의 머리를 완전히 부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시는 순간 영원한 승리를 쟁취하신 것입니다(요19:30). 그리고 심지어 그 죽음의 권세까지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 순간 우리의 승리는 확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장차 누릴 승리의 영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2. 성도의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승리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죄만 범했고, 그 죄의 결과만 쌓아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공로가 없이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가 바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라고 고백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우리의 믿음과 고백까지도 내 안에서 스스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성령께서 내 안에 역사하시고, 나로 믿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고, 성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성령 하나님께서 나로 이 모든 것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 성도는 승리의 결과를 하나님께 감사로 고백합니다.
결국 성도가 마땅히 할 수 있는 것,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고백하기 전에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엡1:3). 본문에서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런데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크기에 우리는 마땅히 그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우리는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천상에 있는 24 장로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자신들의 관을 하나님 앞에 드리며 영원토록 찬양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만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 전부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최후의 승리를 보장받은 존재입니다. 이 승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이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패배자의 모습일지라도 우리는 결단코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승리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최후의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 승리에 대한 믿음이 우리 안에서 더욱 견고해지기를 축원합니다.
Ⅱ.성도는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본문 58절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이후에 나오는 내용은 앞의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이제부터 전개되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의 삶에 대한 첫 번째 권면은, 본문 58절 첫 부분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왜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라고 했을까요? 이는 저들의 모습이 견실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첫 부분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은 자신의 부활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5장의 긴 내용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한 사건이요, 역사적 사실이요, 많은 사람에 의해 증명이 된 사건임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이 왜 있어야만 하는 지를 설명했습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부활에 동참하게 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 부활의 확실성을 믿으며, 그 믿음에 합당한 삶, 다시 말하면 부활을 믿는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지 않는 세상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삶을 보면서 “저 사람은 부활을 믿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항상 주의 일에 힘씁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들을 향한 두 번째의 권면은, 본문 58절 둘째 부분에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라고 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면, 우리가 이미 그 승리를 얻었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부터 무엇인가 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승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내가 괜히 무엇인가를 한다고 나서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실 지금 사도 바울의 표현을 보면 고린도 교회는 주의 일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여기의 “주의 일”은 교회 안에서 행한 일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요, 교회를 교회답게 이루어가는 일이요,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이는 어느 특정한 사람들의 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성도, 교회의 지체라면 당연한 본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더욱” 힘써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자성어로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라는 뜻으로 열심히 일하는 자들에게 더욱더 열심을 내도록 권면할 때 사용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말에게 채찍을 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심히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합니다. 그리하여 더 빨리 달리게 합니다. 따라서 지금 바울은 이러한 심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러한 권면으로 끝내지 않고, 자신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13~14절에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을 믿는 성도의 삶입니다. 성도는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아무리 큰 일을 했어도 그것이 끝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 만족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만 쉬라”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소망과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들이 그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야 할 근본적인 이유로, 본문 58절 셋째 부분에 서“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살필 표현은 우리가 수고하는 모든 일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주의 일을 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그것이 과연 헛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활을 믿는 성도의 수고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2~15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예수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활을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나도 부활한다는 믿음을 날마다의 삶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의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의 일은 적당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더욱 힘써야 합니다. 주님이 되었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잊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보상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부활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세상과 구별 짓는 아주 분명한 기준점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구별되어 성도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믿음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이 믿음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이 믿음을 우리의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이 믿음을 세상이 부러워하게 해야 합니다. 이 믿음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나타내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원하기는 광성의 모든 성도가 부활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내게 맡겨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과 상급을 받는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