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인
요한계시록 1장 17~20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세계는 참으로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무엇인가가 바뀌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변화하는 세계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도 벅참을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속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누가 있을까요? 무엇이 이 세계를 이토록 변화무쌍하게 돌아가도록 하고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이러한 세계의 흐름에서 사람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하는 말 한마디에 온 세계가 소용돌이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의 한마디가 온 나라의 방향을 움직이게도 합니다. 또는 어떤 과학적 현상이나 결과물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는 반도체라고 하는 하나의 제품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내고, 세계의 시장을 선점하는가에 의해서 경제의 주도권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오늘이라고 하는 역사의 주인을 어느 한 사람으로 특정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 특출한 한 사람이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는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아무리 뛰어난 과학의 결과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인류의 역사를 주관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의 결과물도 100% 완전한 제품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역사의 주인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누구의 뜻을 따라서, 누구의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History)는 분명 그(His)의 이야기(story)입니다. 즉 역사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그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하게 짚고 가야 하는 것은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분만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십니다. 그분만이 모든 역사를 당신의 뜻을 위하여 계획하십니다. 그분만이 그 모든 역사를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진행하십니다. 그분만이 모든 역사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결과를 도출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36절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특히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고백해야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해서 역사의 주인이 되실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통치하시고, 성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주인 되심을 우리의 마음을 다해 고백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으로 인해 밧모라고 하는 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당시 세계는 로마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그 로마의 중심에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가 역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그 황제의 정책에 대적하는 자의 죄명으로 이 섬에 유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밧모섬에 있는 어느 날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아주 특별한 계시를 받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계시가 하루에 이루어졌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이날로부터 시작해서 일정한 시간 동안 그에게 주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분명 “주의 날”이었습니다. 오늘의 개념으로 말한다면 “주일”일 것입니다.
그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밧모섬에 외롭게 있는 요한을 찾아오셔서 당시 교회들의 실상을 점검하시고, 또한 장차 교회와 세상의 역사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기록해서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편지를 보내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지금 역사의 주인은 로마도 아니요, 로마의 황제도 아니라, 저 천상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은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선 자의 마땅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의 주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 살아계신 주
주의 날 성령에 감동된 사도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의 모습은 인간 세계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분명 하나님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의 발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성에 유배되었다 할지라도,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서 하나님은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가진 인간, 죄성을 가진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두렵고 떨림으로 인해 마치 죽은 자와 같이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고백한 내용과도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요한에게 주님께서 당신의 손을 얹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7~18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라고 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와 연관되는 표현이 일곱 번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1장 8절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고 했습니다. 21장 6절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라고 했습니다. 22장 13절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문자적 표현은 다르지만, 그 의미는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의도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신적 존재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살아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영원한 미래까지 계속해서 살아계신 자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예는 구약에서 이방의 우상들과 대조되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생명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영원성에서 아주 특별한 표현이 등장하는 데 바로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음을 경험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영존하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왜 인간이 되셨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합니다. 사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이 죽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이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으심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속을 통해 구원한 자들을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신 자이십니다. 그분이 비록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하셨다고 하지만 그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삼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주인이 되실 수 있는 자격은 분명합니다. 그분은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태초로부터 재림의 때까지, 아니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의 처음이면서 마지막이 되십니다. 그 안에서 모든 역사의 시작이 되시면서 또한 마침이 되십니다. 그 어떤 역사도 그분을 떠나서는 시작될 수 없고, 성취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역사는 계획되고, 진행이 되고, 그 결과를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Ⅱ.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
본문 18절에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권세를 가지셨는지에 대한 언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 보좌를 잠시 비워두시고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전혀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영원하신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죽음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생명이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 다시 올라가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의 모습으로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승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음부를 주관하고 지배할 전권을 장악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사망과 음부의 결과까지도 친히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젠가, 즉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최후의 심판에서 사망과 음부를 영원한 불못에 던지실 것입니다(계20:14).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사망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들어가게 되는 음부, 곧 지옥입니다. 그런데 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우리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대속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이 사망과 음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사망과 음부를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저 천상의 세계만을 주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20절에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모든 교회를 친히 주관하시며 다스리심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일곱 별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고, 일곱 교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별이 의미하는 “교회의 사자”나, “교회” 자체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에 붙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벗어나서는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국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저 천상에서도, 그리고 이 땅에서도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이전에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던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성육신하시기 위해서 그 모든 권세를 잠시 유보하셨습니다. 물론 그분은 세상에 계실 때에도 이 권세를 사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기도 하셨습니다. 자연을 다스리기도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의 본체로 계실 때의 권세에 비하면 지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권세를 다시금 완전하게 회복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이는 저 천상의 세계도, 이 땅의 역사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주권을 따라 통치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당신의 뜻대로, 당신이 기뻐하심을 따라서 주관하십니다.
비록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역사는 어느 특정한 권력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권력과 역사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든지 보이지 않든지, 우리가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비록 불합리하게 보여도, 비록 악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성취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결국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역사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비록 내가 계획하는 것 같고, 내가 힘쓰고 애를 써서 진행하는 것 같고, 그 결과로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나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고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역사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불합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해로 헤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실망과 아픔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만 견고하다면 우리는 궁극적인 승리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패배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만이 충만한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서 쓰임을 받는 일꾼들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굳게 잡고,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이 우리의 삶으로 고백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역사 속에서 그분의 뜻을 위하여 아름답게 쓰임을 받고 주님 앞에서 큰 칭찬과 상급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