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18.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86)

  본문:15:33-41

  제목: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성경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나라의 역사와 이런저런 율법들 이런저런 절기들과 시나 잠언이나 교훈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 없이 읽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서로 상충 되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성경은 거대한 퍼즐 맞추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제자리에 가져다가 맞추면 거기에는 뚜렷하고 커다란 밑그림이 보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모든 성경이 그것을 위해서 그것을 향해서 그것을 목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가복음은 우리가 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하는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많이 들어서 아시는 대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이 복음의 시작이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록하면서 이 죽으심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른 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특별한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특별히 이런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며 복음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숨을 거두실 때 일어난 현상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33절에는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라고 했고 38절에는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제육시와 제구시는 유대인들의 시간을 이야기했고 지금 우리가 쓰는 시간으로는 낮 12시와 오후 3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기 이전 세 시간 동안은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연현상을 초자연현상으로 바꾸어서 보여주십니다. 환하게 비추어야 할 태양의 기능을 잠시 멈추어서 깜깜한 세상이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이 우주의 주인임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나 안타까운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해가 뜨고 해가 뜨면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고 기온도 올라가서 따뜻해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디 태양뿐이겠습니까? 우리가 마시는 이 공기 적당한 비율로 산소가 들어 있어서 우리가 마시고 살게 하는 이 공기나 늘 마시는 물이 그냥 당연히 있는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환경을 만드시고 유지시켜 주시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몰라보고 이런 혜택 속에 살아가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빛을 잠시 멈추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지금 이 일에 관여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일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 때도 이런 흑암 현상이 있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 주지 않자 자연현상을 통해서 열 가지의 재앙을 내렸는데 그 아홉 번째가 흑암 재앙입니다.

 

  출애굽기 10장에는 그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손으로 더듬어야 움직일 수 있는 깜깜한 흑암이 사흘 동안 계속되게 하셔서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지금 이 출애굽의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 일어난 또 한 가지 일은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일입니다. 구약시대 때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그것도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그 성소에서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고급 직물로 만든 아주 튼튼한 휘장이었습니다.

 

  이 휘장은 쉽게 찢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단번에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는 것은 아주 강한 힘이 가해져야 하는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 특별한 일도 사람이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라고 할 수 있는 휘장이 벼락에 맞은 것처럼 찢어진 것을 보고 제사장들이나 성전 관계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것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나 했을까요? 휘장을 다시 만들어서 달고 제사 드리는 일을 계속했을까요? 성경은 그런 것을 기록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는 일은 그만하시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올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 외에도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에 의하면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27:51-52)라고 했습니다.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므로 이 일을 하시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그 일에 보내셔서 이 험한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이런 일까지 하셨는가 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너무나 흉악해서 이런 방법이 아니면 사함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찮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나무나 귀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본문 34절에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라고 했고 37절에는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순간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 일을 진행하시는 하나님이나 이 고통을 직접 당하시는 예수님의 편에서 보면 최악의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혀서 세상에 보내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그의 등에 짊어지우고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하시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세 시간 동안이나 온 세상을 깜깜하게 하심으로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지만 죽임을 당할 때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찮은 인간들에게 그렇게 수많은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육신이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이 정말로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이런 고통스러운 지경까지 이르도록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셔야만 하셨습니까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서 마치 정말로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거나 메시야가 아니라 실패자임을 자인하는 말로 생각합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아니라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힘없는 사람으로 오해합니다.

 

  당시의 사람들도 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한 엘리라는 말을 음역이 비슷한 엘리야로 바꾸어서 엘리야를 부른다고 조롱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불러서 자신을 구원해달란다고 하면서 어디 엘리야가 와서 구원하여 주는가 보자고 비아냥거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말씀을 오해하면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짊어져야 할 그 엄청난 고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죄를 짊어지셨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은 죄가 얼마나 흉악했겠습니까? 각 사람이 다 십자가를 진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은 흉악하고 엄청난 그 죄들을 예수님 혼자서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 흉악한 죄들을 다 용서받게 하시기 위해서 이 험한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사야 53장에 이 장면을 이렇게 미리 예언했습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4-6)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죄에 대하여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아서 고난을 당한다고 하지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본문 39절에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백부장은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로마의 군 간부를 말하고 이들이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한 자들로 보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체포과정부터 재판과정과 사형집행 과정을 가까이에서 다 본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재판과정과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일어난 아주 특별한 일들을 목격한 후에 결론을 내리기를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재판하면서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 네가 찬송 받을 이, 즉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확실하게 내가 그니라라고 답변을 하셨습니다.

 

  백부장은 그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드렸던 그 질문과 대답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일평생 성전에서 그들이 지은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짐승을 죽여 피 흘려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들도 깨닫지 못한 것을 이방인인 백부장이 깨달았습니다.

일평생 성경을 연구하던 서기관들도 그 성경의 핵심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심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는데 이 백부장은 깨달은 것입니다.

 

  이 정도의 이변이 일어났으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일어난 일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심과 그리스도가 되심과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을 만한데 아무 관심도 없이 그냥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먹고 사는 일이 너무 고달파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은 안중에도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누구나가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심각하게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기는 하지만 다른 것을 믿는 일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고 바르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는 말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간절하게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우선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다 가르치심이나 행하신 모범을 소중하게 여기고 따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해서 할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온 세상이 깜깜해진 것뿐만 아니라 지진이 나고 무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이 가상칠언이라고 해서 많이 알려져 있는 대로 오늘 말씀 외에 여섯 마디 말씀이나 더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많은 이야기를 생략하고 중요한 핵심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목적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로 인해서 사람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이시길래 우리가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그분을 믿어야 하는가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그분이 우리를 억만 죄악에서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 그리스도 되십니다. 우리가 믿는 이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영생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고 고백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것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핵심만 기록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날 때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만이 천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늘 가슴에 안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하를 다 잃는다고 해도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끝까지 지키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