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
히브리서 7장 20~25절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드디어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을 이미 에덴동산에서부터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는 죄를 범했을 때, 장차 오실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창3:14). 그리고 이후로 계속 진행되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의 자손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약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의 거룩을 위해서 제사 제도를 주셨고, 그 중심에 제사장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은 오직 레위 지파만이 될 수 있었고, 그중에 아론의 자손만이 대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성전과 함께 제사 제도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 제사 제도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본질적으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저들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저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속죄의 제사도 불완전해서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오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 계통 제사장들의 한계를 정복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그분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시며, 생명의 원천이 되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제사장직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제사는 영원한 제사이기에 단번의 제사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완전하게 속죄하셨습니다. 이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오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하나님의 맹세로 된 영원한 대제사장
본문 20~21절에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표현은 “맹세(ὁρκωμοσία)”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굳게 약속하거나 다짐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본문에서 사용된 이유는 단순히 약속한다는 차원을 넘어 그 약속이 확실하고 변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맹세는 너무나도 가볍습니다. 마치 동전을 뒤집듯이 그 맹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고 변경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맹세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불변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취소되지도 않습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율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에 하나님의 맹세는 없고 오직 계시만 있습니다. 출애굽기 28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임명된 것입니다. 따라서 저 제사장들의 직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이가 되어 제사장에 임명이 되고, 또한 나아가 차면 그 직에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민4장).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은 하나님 자신의 맹세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해서 예언한 시편 110편 4절에 보면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변하지 아니하시리라”라는 말씀을 본문에서는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라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신 내용에 대해서 결코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맹세는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진리와 진실을 따라서 판단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역사는 후회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맹세의 내용은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라는 것입니다(시110:4).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증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약속에는 결코 변함이나 후회가 없이 신실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롬11:29).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결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맹세까지 더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맹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구약의 역사에 등장하는 그 어떤 제사장직보다 우월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말씀에 대해 신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레위 계통이 아닌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에 오셨고, 친히 대제사장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속죄 제물로 삼으심으로 완전한 제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물며 맹세까지 하신 말씀에 대해서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리가 보일 반응은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 말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말씀에 따른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에 대해서 온전한 믿음만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된 우리의 마땅한 의무인 것입니다.
Ⅱ.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대제사장
본문 22절에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짧은 본문에서 특징적으로 등장하는 두 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언약(διαθήκη)”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유언장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유언장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언장은 그 유언을 남긴 사람이 죽은 후에 그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유언장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사람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아무도 유언장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בְּרִית”라고 나타납니다. 이는 주로 두 집안이나 두 국가들 사이에서 체결되었는데, 고대 사회에서 혈연을 제외하고 서로 간에 깊은 관계를 이루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서 사용됨으로 그 관계가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언약은 “더 좋은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분명 옛 언약과 비교되는 새 언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 언약은 율법에 근거한 언약이요,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언약을 의미합니다.
옛 언약은 인간의 행위에 의존합니다. 즉 율법을 얼마나 완전하게 지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인간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 선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롬3:20). 그리고 그 죄에서 해방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합니다(갈3:24).
하지만 새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존합니다(요3:16, 엡2:8~9).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행위가 전혀 관여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인 것입니다.
둘째는 “보증(ἔγγυος)”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보증이라고 하는 단어를 무서워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이 보증을 잘못 섰다가 패가망신을 당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만큼 보증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보증이라는 단어가 쓰일 때는 법적인 의무를 동반하는 것으로, 때로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사람의 보증이 된 사람은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 대신 변제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죄수의 신변에 보증을 선 사람은 정한 날에 그 죄수가 법정에 서도록 하는 의무를 가집니다. 그렇지 못하면 보증인이 그 죄수가 당할 형벌을 대신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더 좋은 언약이 되심과 동시에 그 언약에 대한 보증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보증이 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분명하고 그 성취가 확실한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옛 언약보다 훨씬 더 좋은 언약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언약의 실체를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따라 우리에게 영원한 언약이 됩니다. 옛 언약은 폐지되었고,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더 좋은 새 언약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 영원한 새 언약의 실체이며,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입니다.
Ⅲ.항상 살아계신 대제사장
본문 23~25절에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레위 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취약점이 무엇인지와 그로 인해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효가 많은 이유는 “죽음” 때문입니다. 최초의 대제사장 아론을 비롯해서 그 후손들이 계속해서 제사장직에 올랐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영원토록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만 있었다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달랐을 것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들 모두는 죽음이라고 하는 숙명 앞에서 자기의 직분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뒤이어 태어난 자손들에게 그 직분을 넘겨주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저들의 제사장직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유동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존재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생명을 지니고 계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도 이제는 바뀔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본문 24절에 등장하는 “계시므로(μένω)”라고 하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정해진 때에 어떤 한 사람과 같은 장소에 머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은유적으로 생의 특별한 영역에 머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직분을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으십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예수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예수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요14:6).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린 제사는 사람이 다시 드릴 수 없습니다. 또다시 되풀이할 수도 없습니다. 그분이 드린 제사의 효력은 영원하기 때문에 속죄를 위해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부활하시고 성육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서 아버지께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항상 살아계시는 대제사장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속죄 제사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 속죄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그분의 대제사장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죄의 은총과 날마다 베푸시는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어렵곤 혼란의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우리는 일시적인 것, 유한한 것, 변질되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것, 불변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귀하고, 더 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곁을 바라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속죄 제사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잠시 잠깐의 어려움 때문에 그 예수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오지 예수만을 믿고, 바라보고,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원하기를 우리 모두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