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 계통 제사장보다 우월한 멜기세덱
히브리서 7장 4~10절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성도 여러분! 지금 사도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또한 누릴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에 등장하는 가장 신비로운 대제사장인 멜기세덱이 율법을 따라 임명을 받은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우월함을 증명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짜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함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결국 사도가 멜기세덱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것은 멜기세덱을 위함이 아니라 그보다 위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드러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실 레위 계통을 따르는 대제사장은 영광스러운 직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왕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직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귀중하게 나타나는 메시야의 3대 직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하나님 약속의 성취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사역을 예표해 주는 아주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직이 영광스럽다고 할지라도 멜기세덱의 대제사장직이 더 우월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멜기세덱의 대제사장직보다 우월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에 등장하는 그 어떤 대제사장보다도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고, 따르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문에서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인정을 받는 아브라함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은 근본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관계를 통해서 멜기세덱의 대제사장직이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따라 세워진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직보다 우월함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우리의 믿음과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레위 계통 제사장보다 우월한 멜기세덱』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아브라함에게서조차 십일조를 받은 멜기세덱
본문 4~5절에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생각하라(Θεωρεῖτε)”라는 명령문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멜기세덱의 위대성을 깨닫도록 촉구하기 위하여 사용했습니다. 즉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던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것처럼 아브라함이 전장에 돌아왔을 때, 멜기세덱에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자신이 전쟁에서 얻은 노획물 가운데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인정했다는 것이요, 또한 멜기세덱이 자신보다 종교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최고의 존경심을 표한 것이고, 또한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레위 지파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 지파를 따라 제사장이 된 자들도 다른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8장 21절에 보면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신명기 14장에서 모세는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22절)와 “매 삼 년 끝에 소산의 십일조”(28절)를 드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서 레위 지파의 권위를 보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결국 레위 지파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의해서만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것은 율법이 정한 권한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멜기세덱의 권위는 철저하게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이라고 하는 외부적인 원인을 따라 십일조를 받는 사람과 외부적 요인이 없이 전적으로 자신의 권위로 십일조를 받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우월한 존재인가는 따져볼 필요조차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멜기세덱은 율법의 전수자인 모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없이도 십일조를 받았던 권위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 5절에서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입니다, 이는 레위 지파를 따라 제사장이 된 자들일지라도 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 난 직계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지파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이는 분명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특별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레위 지파를 선택하셨고, 그들을 다른 지파들보다는 특별한 위치, 우월한 위치에 두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레위 지파가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멜기세덱의 위치와 비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하물며 아무리 멜기세덱의 위치가 우월하고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멜기세덱의 위치가 우월하다고 인정되면 될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도는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멜기세덱의 위대함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Ⅱ.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
본문 6~7절에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상적으로 사람을 소개할 때는 “~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4장 18~20절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에게서는 이러한 표현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어느 족속인지, 어느 지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이 멜기세덱이 레위의 족보에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강한 부정어 “μή”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훗날 레위 자손들은 법적 권리 아래에서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멜기세덱은 법적인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어떤 특정한 율법의 의무를 따라 자신의 전리품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준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존재와 지위를 인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위해서 복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주었기 때문에 축복한 것은 아닙니다, 멜기세덱은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을 아브라함에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아브라함을 “약속을 받은 그”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를 원문에 따라서 표현하면 “그 약속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은 자, 곧 아브라함은 자발적으로 전리품의 십일조를 바쳤고, 그 아브라함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선택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가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명하는 과정에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자인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자를 축복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의 위대함은 능히 증명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그를 축복하는 멜기세덱은 분명 아브라함보다는 우월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서 항상 진리처럼 인정되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인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이 위대하다면,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분명 레위 계통을 따르는 제사장직보다 우월한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보다 훨씬 우월합니다.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는 약속을 받은 자와 그 약속의 주체의 차이입니다. 아무리 약속을 받은 자가 위대하다고 한들 그 약속의 주체와 비교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심지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8:56). 이는 아브라함이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과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의 위대함, 그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의 위대함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이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다른 것을 취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Ⅲ.영원히 살아있는 멜기세덱
본문 8~10절에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사도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 멜기세덱의 가장 큰 차이점을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서 멜기세덱의 신비성과 그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제시하는 그 차이점은 바로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분명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엄청난 지위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특별하게 구별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을 존귀하게 여기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을 책임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소득 가운데서 십일조를 저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토록 특별한 존재들일지라도 저들은 죽음이라고 하는 관문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저들도 예외없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법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창2:17, 롬6:23). 비록 일반 백성들에게서 십일조를 받는 아주 특별한 직분을 가진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일반 백성들과 똑같이 죽음의 세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산다고 증거를 받은 자”입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죽지 않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멜기세덱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또는 이 땅에서 살아있다는 의미는 분명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멜기세덱이 죽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그의 죽음과 관련된 말씀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앞의 3절에서도 그는 “생명의 끝도 없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유일하게 계속해서 살아있다고 증거를 받은 사람은 오직 멜기세덱뿐입니다.
결국 멜기세덱은 그 생명의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히 산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닮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3절).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살아있는 자요, 아브라함 이후에도 영원히 살아있는 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멜기세덱의 특징 때문에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조차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결과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 레위 자손은 이미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일반 백성들에게서 십일조를 받는 지위에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면, 멜기세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바울이 인간의 원죄를 설명하는 장면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롬5:12~21).
성도 여러분!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예표였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만나기 위해서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세상에 직접 오셨습니다. 또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위해 등장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아 회복시키시고,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공동 상속자로 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롬8:17). 그리고 멜기세덱이 영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셨기 때문입니다(시110:4).
이처럼 멜기세덱의 지위가 우월함이 증명되면 될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멜기세덱은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앞에서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고귀한 자로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아무리 특별하다 할지라도 멜기세덱의 위대함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그의 축복을 받는 장면에서 증명이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멜기세덱도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닮은 존재일 뿐입니다. 따라서 멜기세덱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사람인 이상 죄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비교될 수 없는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한 완전한 대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요, 대제사장인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소망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