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6.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84)
본문:막15:21-27
제목: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성경은 대부분 이야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역사를 이야기로 기록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명령이나 우리 인간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기록하려면 간단하게 그 목록을 기록하여 주면 쉬울 것인데 왜 이런 이야기들로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이야기를 통해서 감동을 받고 깨닫는 것이 명령을 받는 것보다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 원리를 잘 이해한 것 같습니다. 심청전 이야기를 통해서 효를 알려주고 춘향전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의 원리를 이야기하고 홍길동전을 통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렇게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도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감명을 받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과정을 이런저런 이야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살펴보신 대로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재판받으시고 처형당하시는 과정을 여러 이야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십자가에 달리셨는가를 기록하면 될 것 같은데 그 과정에 일어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사형장까지 올라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이야기와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로 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병들의 이야기와 예수님 양편에 달린 강도들의 이야기와 그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시면서도 참고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하나하나를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 중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달릴 십자가의 형틀을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가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히고 피를 흘려서 돌아가셔야 했는데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감소해 줄 수 있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입고 있던 옷까지 벗겨지고 형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조롱하는 죄 패까지 달아놓았습니다. 그리고 좌우에는 흉악한 강도들을 함께 매달아 놓았습니다.
1) 최고의 고통과 최악의 조롱을 참으신 예수님
이런 이야기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최고의 고통을 수반한 십자가이고 최악의 조롱을 참고 견디신 십자가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판받으실 때 이미 수많은 조롱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여러 사람이 침을 뱉고 구타를 하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 지친 몸으로 자신이 달릴 십자가의 형틀을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가셔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고 여러 시간 동안 고통을 당하고 피를 흘리면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물과 피를 다 흘리고 숨을 거둘 때까지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십자가의 형벌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그런 고통을 참을 수 있게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어서 마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마저 거절하셨습니다. 그 모진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당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고통 못지않게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모욕과 수치를 당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그들이 욕하고 비웃는 가운데 십자가를 지시고 가야 했습니다. 옷은 벗겨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조롱이 담긴 죄 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좌우에는 흉악한 강도가 함께 달림으로 예수님이 흉악한 강도와 같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힘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어서 당하신 것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고통을 주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다 죽여버릴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을 가지셨음에도 그것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이 악한 사람들을 구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끝까지 참고 그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2) 최악의 사람들까지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십자가
우리는 앞에서 예수님의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각 분야에서 최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 로마를 대표하는 총독과 그들을 따르는 군사들 모두가 다 한결같이 흉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판과 형벌에 이런 악한 사람들을 동원하신 것은 그들이 이렇게 흉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사람들까지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장 흉악한 죄인이 달리는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좌우에 달린 흉악한 강도들도 그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흉악한 죄인임을 나타내려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흉악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함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제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통한 구원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다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3) 최고의 것을 주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좀 건강하고 부자로 살고 평안하게 살고 출세하고 그런 것을 주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런 정도는 간단하게 주실 수도 있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런 시시한 것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흉악한 죄인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고 사탄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지옥 백성이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고 영원히 멸망당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는 가장 쉽게 가장 귀한 것을 차지하게 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장 어렵게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 것은 우리에게는 가장 쉽게 그 혜택을 받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스스로 노력해서 의로운 사람의 경지에 올라야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그것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서 의로운 사람의 경지에 오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불가능한 일을 너무 쉽게 가능한 일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 믿음이 최고로 선한 것이며 최고로 고귀한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는 동안 늘 복음을 외치며 복음을 설교한 사람입니다. 더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 영생복음을 외치며 산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 복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인정해야 하고 자신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먹고살 만하니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고 스스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은 외면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정말로 여러분이 좀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십니까? 정말로 여러분이 행한 의로움으로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여러분 스스로가 이 죽음의 문 멸망의 문을 통과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사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는 분이라면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이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감격하고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
본문 21~22절에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달리실 십자가의 형틀을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가야 하셨는데 마침 시골에서 올라온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하고 그곳까지 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까지 간 사람이 구레네 사람 시몬이고 그 사람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누구이고 그의 자녀들인 알렉산더와 루포가 누구인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한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게만 기록해도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의 기록이기 때문에 이때쯤에는 그들이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시골 사람인데 우연히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이 역사적인 형장에 오게 되었고 마침 지나가는 예수님을 만났고 억지로지만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연스럽게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그 흉악한 십자가의 현장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후일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쉽게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었을 것이라는 증거는 사도바울의 로마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마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일을 도운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인사말에 루포와 루포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 16:13)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하면서 그 루포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라고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자신을 자식처럼 돌봐주신 귀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주석가들은 여기 루포가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고 루포의 어머니가 시몬의 아내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미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났고 억지로 그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고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실 때로는 억지로 주의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기쁨으로 자원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쁨으로 자원해서 하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타락한 우리의 습성이 좋은 일보다 나쁜 일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교회에 오기도 하고 억지로 어쩔 수 없어서 헌신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억지의 일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한 백성이라야 그런 일도 하는 것입니다.
그 억지의 일을 통해서 나와 나의 가족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천국 백성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내 앞에 그런 일이 닥치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하나님께 복을 받을 기회인 줄 알고 억지로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흉악한 로마 군인들
22절에서 27절까지 흉악한 군인들이 행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원어 번역 성경에는 매절마다 ‘그들’이라는 주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끌고 갔고,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고,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제비를 뽑아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를 만들어 붙였고 그들이 두 강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여기 그들이 로마 군인들입니다. 그들 역시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했을 것입니다. 나라에 충성해야 하고 나라에서 월급을 받고 상관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군인이었기에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대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도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억지로 그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악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서 나누어 가지면서 이익을 취하고 즐기면서 그 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그 악한 일을 하고 후일 예수님을 믿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이야기는 외면하고 멀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아무 일 없이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랬거나 말았거나 아무 문제가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악한 일을 행함으로 인해서 후회하고 애곡을 하며 땅을 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1장 7절에 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모든 사람이 그 광경을 보게 될 것인데 특별히 예수님을 찌른 자들도 보게 될 것이고 그것을 본 그들이 후회하고 원통해 하며 슬피 울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눈앞의 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을 하면서 살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되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면서 가슴 치며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양편의 강도들
본문 27절에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강도 두 사람은 예수님이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거기 함께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웬만한 죄를 지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반역하거나 아주 흉악한 죄를 지었을 때 이 십자가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 두 강도는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었고 이미 세상에 그들의 죄상이 밝혀진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저 악한 사람은 십자가에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들과 같은 죄인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또 이 강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는 두 강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지만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에는 그 뒷이야기까지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웃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 강도는 그 비웃는 강도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눅 23:41~4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악한 일에 보응을 받지만 예수님은 옳은 일만 하신 분이심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를 당장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같이 흉악한 죄를 지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웃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그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인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 백성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강도와 같이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죄를 짓고 삽니다. 그런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단번에 천국 백성이 되게 할 수 있다는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흔히 이 장면을 가지고 평생 실컷 죄짓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세상에서도 죄짓고 마음대로 살고 천국에도 갈 수 있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럴 자신만 있다면 그렇게 해보십시오. 그런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죄를 짓다가 마음대로 회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점점 더 예수님과 멀어지고 사탄의 종이 되어서 꼼짝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죄인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른 그 길을 가시고 그 길을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살다가 아차 해서 지옥 백성이 된다면 참으로 엄청난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구원을 받는 것보다 일찍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의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로마 군병들처럼 악을 행하고 예수님 재림 때 슬피 울며 가슴 치는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릴만한 흉악한 죄를 짓고도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죄인이라고 생각될수록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때로는 억지로라도 주의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게 되는 엄청난 축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늘 생각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고통이고 최악의 수치를 당하시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가장 쉽게 얻게 하기 위해서 그 고통과 수치를 참으시고 나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얻은 구원을 하나님 나라를 영생을 절대로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