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소망

 

 

히브리서 613~20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뜨리지 않고 거론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신 약속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요, 신약은 그 약속의 성취로 오신 메시야와 또다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라고 합니다. 결국 성경은 메시야와 관련된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를 산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서, 약속대로 메시야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는 세상에 오신 목적대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로 가신 그 메시야가 장차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신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우셨을 때, 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천사가 증언하기를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했습니다(1:11).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2~3). 또한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는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를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거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는 분명 예수님 자신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약속을 기다리는 자로서 마땅히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는 지금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유업을 받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의 유혹을 따라 흔들리고, 끝내 믿음 이전으로 복음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영원한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사도는 본문에서 우리가 그렇게 인내하며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향한 우리의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인내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영광을 누리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이 말씀을 듣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또한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성취

 

본문 13~15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창세기에서 여러 번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곳은 창세기 12장입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물고 있는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1~3).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당시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고, 그의 아내 사래의 나이는 65세였습니다. 따라서 이들 부부에게 자손의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 부부를 통해서 큰 민족을 우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둘째는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것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는 정착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이방인입니다. 따라서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고 하는 것을 누가 보아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후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주 나타나 이 약속을 반복하셨습니다.(12:7, 13:14~17, 15:4, 5). 심지어 아브람의 나이 구십구 세에 나타나신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시고, 그의 아내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어 주시면서 그 약속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친히 이를 내 언약이라고 부르셨습니다(17:1~8). 그리고 하나님은 이 언약의 표징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할례를 명하셨습니다(17:9~14).

 

그런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단순히 약속하신 정도로 그치지 않고, 맹세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창세기 2216~18절에 말씀을 근거로 합니다. 이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을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나를 담보로 맹세의 언약을 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하나님은 분명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후회도 하지 않으십니다(23:19). 또한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1:17). 그래서 이 세상의 그 무엇이나 누구보다도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확실한 맹세의 담보보다 있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이 자신을 담보로 해서 약속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천지가 진동할지라도 그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11:8).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15:6). 또한 아브라함은 믿음을 붙잡고 인내했습니다. 비록 자신과 아내의 몸은 늙어서 인간적으로는 자손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실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브라함은 자기 몸에서 태어난 이삭(יִצחָק)”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21:1~4). 그리고 땅의 약속은 500여 년이 지난 후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그 땅을 차지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공수표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진행하심과 성취하심에 있어서 완전하십니다. 따라서 설사 그 약속의 대상인 인간이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언약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아브라함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성취의 사건은 그 이후의 모든 약속에 대해서 분명한 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순종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와 그 영향

 

본문 16~18절에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신 그 약속의 신실함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인간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맹세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맹세의 보편적인 특징은 자신보다 큰 자를 보증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의 법정에서는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른손을 들고 맹세하지만, 사람들이 보통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통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맹세했습니다(삼상 21:3, 24:21).

 

결국 이 맹세의 보증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대상을 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한 맹세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셔도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맹세는 모든 사람이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표현하기를 모든 일에 있어서 최후의 확정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을 맹세의 보증으로 삼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취소되거나 변경된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약속에 대해서 분명한 성취를 맹세로 보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맹세는 그 약속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지와 목적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βουλή)”하나님의 계획이나 의도에서 나온 결의(결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 자신의 절대 주권적인 의지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개입하거나 흔들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사도가 하나님의 이 뜻과 약속과 맹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성도들에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지금 성도들을 흔들고 있는 시련이나 시험, 고통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성도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약속이 오래 전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약속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그 약속대로, 맹세하신 대로 성취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과 맹세, 이 두 가지에 대해서 결코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주시겠다는 약속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면,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영접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 약속을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가 순종한다면 그 모든 약속은 우리에게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부족해서 때로는 흔들리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를 붙드시고 세우십니다. 그리고 끝내는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왕 노릇하게 하십니다. 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시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소망과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본문 19~20절에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 19절의 앞부분을 원문에 따라 번역하면 우리는 영혼의 닻과 같은 이것(소망)을 가지고 있다 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것(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망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복된 소망을 가리키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이를 (γκυρα, anchor)”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닻은 배가 항구에 정박했을 때, 배가 물결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배를 견고하게 고정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망이 닻과 같다는 말은 우리가 가진 소망이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혼의 닻과 같은 소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의지할 만한 것입니다. 이는 그 소망을 전능자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도는 폭풍우에 휩싸인 배와 같은 당시의 상황 때문에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이 소망을 확인시키면서, 그 소망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닻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튼튼함입니다. 이는 믿을만하다. 요동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즉 성도의 소망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로 주어진 것이므로 확고부동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견고함입니다. 이는 밟고 지나가기에 알맞을 정도로 튼튼한 기초를 가졌다라는 뜻으로 법적인 효력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의 소망은 법적으로 효력을 가진 것처럼 성도를 견고하게 붙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휘장 안에 들어감입니다. 여기의 휘장은 성전의 가장 안쪽에 있는 지성소를 가리키는 데, 여기에서는 하늘에 있는 지성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는 소망은 이미 하늘의 지성소도 들어갑니다. 그리고 성도는 다만 그 소망을 따라, 그 소망을 붙잡고 그 지성소에 뒤따라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미 그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라고 했고,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절에서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은 바로 자기 백성, 곧 성도를 위한 중보자로서의 사역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소망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소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구원도, 우리가 장차 유업으로 받아 들어가게 되는 천국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소망에 대해 견고한 닻이 되어서 우리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보다 앞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시고, 오늘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이 중보로 인해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부족해도, 연약해도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도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에 대해서 자신을 걸고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에 대해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그 성취를 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과 인내로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음으로 그 모든 약속의 성취를 누리는 영광에 이를 수 있기를 우리의 영원한 푯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