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보혜사
요한복음 14장 16~20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지상 생애를 마감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의 몸에 아기로 탄생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속 사역을 완수하신 예수님이 이제 본래의 자리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 앞에 있는 감람원이라고 하는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성령에 대한 약속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제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행1:9).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한곳에 모여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열흘째 되는 오순절이라고 하는 날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행2:1f).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마16:18).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심은 계속되었고, 교회의 역사도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자들이 생겨났고, 그 결과 교회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오심이라고 하는 사건은 교회의 역사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오시지 않으면 교회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광성교회가 존재하게 된 근원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셨고, 우리를 불러 모아 광성교회를 이루도록 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장차 보내실 성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등장하는 성령에 대한 특이한 표현이 있는데 바로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셨을까요? 그것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표현 안에는 성령에 어떤 분이신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도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또 다른 보혜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
본문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완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바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마1:21). 그리고 그 방법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는 것입니다(요1:29).
그런데 그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 밤에 지나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서 빌라도에게 넘겨집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미 성경에 예언된 대로, 또한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던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다만 그 죽음이 끝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던 대로 사흘만이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멀지 않아 당신이 계셨던 곳,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기 위해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는 제자들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자신 떠나심으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후에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성령은 이 세상에서 짧은 생애와 사역을 감당하신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진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성령을 가리켜 “보혜사(保惠師;παράκλητος)”라고 하셨습니다. 이 보혜사라고 하는 표현은 요한복음에서만 기록하고 있는 고별 강화에서 등장합니다. 사도 요한은 여기에서 보혜사로서의 성령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보혜사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원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원문인 “παράκλητος”는 ‘곁에 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의 곁에 함께 계셨던 것처럼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오시는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곁에 언제나 서 계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은 성도들에게 상담자로 서 계십니다. 그분은 성도들에게 돕는 자로 서 계십니다. 그분은 성도들에게 위로자로 서 계십니다. 그분은 성도들에게 중재자로 서 계십니다. 결국 이 성령께서는 성도가 필요로 할 때 도와주시기 위해서 성도 곁에서 언제나 서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성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특징을 가지신 분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첫째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십니다.
본문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라고 했습니다. 14장 26절에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15장 26절에서도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은 성부, 성자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이 성부나 성자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성령은 분명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 진행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본문에서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가리켜 그냥 “보혜사”라고 하지 않으시고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표현에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 자신도 보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에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언자”라는 표현이 바로 “παράκλητος”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은 예수님과는 다른 보혜사입니다. 여기에서 “다르다(ἄλλος)”라고 하는 것은 여러 종류의 보혜사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보혜사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영광과 권능과 내용은 동일하지만 분명하게 구별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하는 것은 장차 오실 성령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속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사역이 새로운 사역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을 성령께서 이어서 사역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임마누엘 약속을 성취하는 분이십니다.
본문에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말씀의 성취였습니다(사7:14). 사실 이 임마누엘의 약속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임마누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은 예수님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사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들을 위한 대속의 길을 걸으셔야 했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분이 친히 오셔서 하나님을 보여주셨고, 사람들과 함께하심을 임마누엘을 보여주셨지만, 그분은 육체가 영원한 임마누엘로 남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시게 되면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는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육체가 아닌 성령을 통해서 이 땅에 제자들을 포함한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하시는 완전한 임마누엘의 성취를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서도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자제들에게 다시 돌아오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일차적인 의미로 본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돌아오심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장차 보내실 성령을 통해서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라고 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우리가 오감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함께하심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한 번 오신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해서 그 성령의 임재와 함께하심과 역사를 못 느낄지라도 성령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바로 예수님의 이 약속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후 열흘만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성령은 보혜사로 오셔서 제자들 곁에 영원히 함께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제자들 곁에 서서 저들을 위로하시고, 변호하시고, 상담하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오시고 임재하시는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십니다. 이 성령이 우리의 완전한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Ⅱ.진리의 영으로 오십니다.
본문 17절에 “그는 진리의 영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진리의 영(τὸ πνεῦμα τῆς ἀληθείας)”은 성령의 본질이 무엇이며, 또한 성령이 하시는 사역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표현입니다. 이 성령은 진리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셨습니다(시31:5, 요15:26).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곧 진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6). 따라서 성령 하나님도 진리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사역은 철저하게 진리의 사역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드러내시고, 진리를 가르치시고, 진리를 믿게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본문 17절에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세상이 성령에 대하여 대하는 반응입니다. 세상은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들은 성령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결국 저들은 성령께서 하시는 진리의 사역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고,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는 자는 결국 미혹의 영을 따르는 자가 됩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완전한 진리를 왜곡합니다. 결국 이들은 진리 안에 있는 생명을 얻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영원한 멸망에 이르고야 맙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아는 자들입니다.
본문 17절에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알지 못하는 성령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성령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이는 성령이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압니다. 성령은 언제나 우리에게 진리가 무엇인지를 드러내시고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살아갑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가장 분명하고 완전하게 아십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사람처럼,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는 자들입니다.
본문 19절에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거쳐 승천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예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따라서 세상이 볼 때 우리는 혼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는 매 순간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함께 일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행3:6). 또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빌4:13). 이는 베드로나 바울 자신의 지혜나 경험,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예수, 자신과 함께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입니다.
본문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을 받은 자들이 누릴 영광스러운 결말에 대한 약속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과 성부 하나님의 본질적 일체성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성부와 성자의 연합과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과의 연합이 동일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연합은 신비적 연합입니다. 세상의 논리나 지혜로 설명할 수 없는 연합입니다. 이는 그 연합 안에 들어간 자만이 알게 되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놀라운 신비적 연합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바로 성령께서 내 안에 역사하시는 순간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그 날(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은 일차적으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요, 이차적으로는 우리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시간이요, 궁극적으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시작되는 영원한 세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이루어지는 성령의 강림은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 성령을 통해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됩니다. 이 성령의 역사로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는 이 진리를 세상에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성령을 통해서 오늘의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 성령 안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이루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찬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 성령께서 오심으로 시작된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32년 전에 이 곳에 광성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영혼들이 진리이신 예수를 알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성령 안에서 그 진리의 역사를 계속 진행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를 따라 믿음으로 견고하게 서야 합니다. 그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의 뜻을 이루는 데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뒤를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에 우리 자신의 충성을 보여야 합니다.
원하기는 오늘 성령 강림 주일과 교회 창립 감사 예배를 드리는 광성교회의 성도들에게 보혜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