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Ⅱ)
히브리서 3장 5~6절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성도 여러분!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고대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이로써 이스라엘에 참 구원과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메시야”입니다. 이 메시야는 3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왕이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제사장입니다. 이 메시야는 하나님의 통치를 자기 백성들에게 나타내는 왕입니다. 이 메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입니다. 이 메시야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는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이 메시야를 예표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메시야의 일부분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메시야의 왕적인 부분을 예표합니다, 또한 많은 선지자가 나타나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선지자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모습도 있습니다(이사야, 에스겔). 하지만 대부분 선지자로서의 메시야에 대한 예표만 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론 이후의 제사장들은 거의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만 감당할 뿐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메시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모세일 것입니다. 물론 후대에 사무엘 선지자의 모습에서 메시야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도 모세와 비교한다면, 모세에게서 나타나는 메시야의 모습이 더 분명하다고 할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 시대에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대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 나타나는 모세의 통치권에 도전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모세의 통치권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지자였습니다. 모세도 자신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표현한 적도 있고(신18:15), 모세의 사후에 그를 평가할 때도 선지자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신34:10). 그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장차 가나안 땅에서 신정 왕국을 건설하고 살아가는 동안 모세가 전한 그 모든 말씀이 저들에게 법이요, 윤리요, 도덕이요, 삶의 표준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서 중보한 제사장이었습니다. 비록 아론이라고 하는 대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봉사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저들보다 더 우월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출32:11f). 심지어 그는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으실 바에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청원하기도 했습니다(출32:32). 또한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함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도 모세는 하나님께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민12:13).
이처럼 모세는 메시야의 3대 직분의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예표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가 진정한 메시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세도 단지 장차 오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완성하실 그 메시야의 예표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존재론적인 면에서 모세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피조물이 아닌 창조자였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은 또 다른 면에서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본문은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신 사역의 측면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모세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적인 우월성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신실했습니다.
본문 5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어떠한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의 지위에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종(θεράπων)”은 지난 개역 성경에서는 “사환”으로 번역했는데, ‘시중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에서 자주 만나는 ‘노예’를 가리키는“종(δοῦλος)”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종은 일반 노예들과는 달리 일정한 권리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인으로부터 신뢰할 만한 지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본문에서 한 번만 사용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왕국의 관리들이나 왕명을 수행하는 사절, 또는 왕에 대한 직무를 맡은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민수기 12장 7절에서 등장하는 “עַבְדִּי(아브디)”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내 종”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나의 수행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믿고 맡기실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단순히 노예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지위는 특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수행하는 자였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집이라고 한다면 모세는 그 이스라엘 안에서 하나님을 수행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였고, 하나님의 명령에 충성하는 자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대함에 있어서 신중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하나님의 집에서 특별한 존재였을지라도 그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수행원이라고 하는 직책을 가짐으로 인해 누리는 영광은 컸다고 할지라도 결코 그는 그 집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환으로 인정받는 자들은 여호수아, 사무엘, 엘라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같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그 누구도 “아들”이라고 인정받고 불린 자는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충성한 수행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서 수행원으로 충성한 내용이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백성들에게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 수행원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장래에 말할 것”이었습니다. 즉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한 내용의 핵심은 그들이 살아갈 그 시대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시대 이후에 이루어질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초점은 장차 오실 완전한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이 이루실 구속 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령 강림 이후에 유대인들을 향한 설교에서 이를 언급하며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라고 했고(행3:22), 예수님도 이 사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라고 하셨습니다(요5:46).
그렇다면 모세는 복음의 증거자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수행원으로서의 모세가 할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마치 세례 요한처럼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준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흡족해하실 만큼 자신의 직무와 사명에 신실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당대의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하나님의 집에서 신실한 수행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인 이스라엘 안에서 오직 하나님을 수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차지하는 위대함이요 특별함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가 비록 하나님의 수행원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는 일을 감당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할지라도 그는 결코 하나님의 수행원이라고 하는 역할에서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의 믿음과 신실함은 인정받을 만하고, 존중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감당한 일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Ⅱ.예수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 신실하셨습니다.
본문 6절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원문에는 있는데 우리 성경에서 생략된 단어는 “그러나(δὲ)”입니다. 이는 5절에서 모세에 관해 이야기한 것과는 대조적인 내용이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5절에서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아들로서 충성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모세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했다는 것은 공통점입니다. 하지만 어떤 역할을 담당했느냐의 문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많은 수행원 가운데 하나로 충성했습니다. 따라서 모세만이 충성심을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충성했습니다. 이 아들은 다른 누가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아들만이 아들의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자도 아들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입니다. 이를 문자대로 번역하면 “그의 집 위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의 집을 다스리는, 그의 집을 감독하는, 그의 집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지배하는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그 집에서 충성하셨습니다. 다스리는 충성, 지배하는 충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는 대신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아들이 아들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ἔν, in)” 충성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 “위에서(ἐπί, over)” 충성하셨습니다. 이는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독특합니다. 그분이 아들로서 감당하는 역할은 독특합니다. 그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시기에 아들로서의 영광만 누리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충성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교회는 분명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리고 이 집을 세우시고 존재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지배하는 방법과 다스리시는 방법은 바로 “신실하심, 충성”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역할입니다.
Ⅲ.성도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본문 6절에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충성으로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집은 “우리가”입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즉 여기의 우리는 유대 그리스도인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방 그리스도인들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모든 사람이 포함됩니다. 즉 성부 하나님의 예정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적용과 부르심을 받아 거룩한 공교회를 이룬 모든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하나님의 집, 곧 교회의 구성원으로 남기 위한 조건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입니다. 여기에서 “소망(ἐλπίς)”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상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항상 좋은 일에 대한 기대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 소망은 절대로 자기중심적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중심적입니다. 또한 자신이 행하는 선행의 결과로 기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역사에 의존합니다. 특히 성경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소망은 종말론적인 것으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성취될 것을 바라보는 기대, 즉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기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바로 이 소망에 대한 확신(담대함)이 견고해야 합니다.
여기의 “확신”은 문자적으로 ‘모든 것을 거침이 없이 말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성도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확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소망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영원한 구원과 또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인내하게 됩니다. 이 소망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담대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 소망 때문에 우리는 승리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한다면 우리는 이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 소망에 우리의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이 소망을 자랑함에 견고해야 합니다.
사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자랑의 의미는 대부분에서 부정적입니다. 이는 그 자랑의 중심에 인간 자신을 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자랑이 하나님을 대상으로 할 때는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대상16:10, 시34:2, 44:8, 105:3). 특히 본문에서는 우리가 가진 소망에 대한 자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도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 즐거움, 감사라는 요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성도에게 있어서의 자랑은 언제나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성도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여야 합니다(갈6:14). 우리는 십자가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왕이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일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집을 위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집을 구성하는 지체로 삼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견고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소망에 대한 확신이 견고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가진 소망을 자랑함에 있어서 견고해야 합니다. 결코 타협이나 양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과 자랑의 궁극적인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모세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모세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특출하게 사용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존재도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우리의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우리의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원하기를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굳은 믿음과 담대함을 가지고 날마다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