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2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10)
본문 : 벧후 1:19-21
제목 : 더 확실한 예언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은 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세상은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린 사람들은 심판을 받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들어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된 기쁨과 참된 행복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 재림을 베드로사도는 능력의 강림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강한 능력으로 화려하게 영광스럽게 강림을 하시어서 그 엄청난 능력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엄청난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나라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렇게 엄청나게 좋은 일이 정말로 있다면 누가 예수님을 믿지 않겠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인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본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셨을 때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처럼 변화되어서 하늘나라에 있는 모세와 엘리야 선지자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나는 직접 본 사람이다.
그리고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 베드로 사도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경험했던 것 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강림하심이 자신이 보았던 그런 장면보다 그런 음성보다 더 확실하게 증명해 줄 예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언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성경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베드로시대의 입장에서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가지게 된 믿음입니다.
성경말씀은 사람이 쓴 글이 아니라 성령하나님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계획 속에 있는 약속의 말씀들 예언의 말씀들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오늘 설교의 제목은 “더 확실한 예언”입니다.
개인의 경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성경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바르게 해석을 하여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정말로 있을 확실한 약속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더욱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1.예언은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에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서 말씀해 주시기 이전에 우리 인생들은 아주 깜깜한 밤에서 살아가는 인생과도 같았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우리 인생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도 알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주 깜깜한 암흑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인간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세월에 끌려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뭘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이치들을 잘 알고 사는 사람들 같은데 사실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들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들처럼 큰소리를 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성경말씀은 어두움을 비추는 빛과 같은 것입니다.
이 우주만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우리 인간이 어디서 나왔는지 왜 이런 모양이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확실하게 말씀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죄를 지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이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복을 받고 장수하게 되는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것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참 신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인간을 향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다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이 우주의 원리를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리 인간의 참 모습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어두운 데를 밝히는 것은 등불로 좀 부족합니다.
빛이 없는 깜깜한 밤에는 등불이 참 좋은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등불은 부분적으로만 비칠 수 있고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지 못해서 모든 것을 확실히 보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을 때도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정도로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을 통해서 발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성경의 목적은 우리로 예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등불을 통하여 예수님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빛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예언 즉 구약성경을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이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이었다면 그 말씀을 통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날이 새어서 낮과 같이 환하게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어두운 세상을 밝히러 오신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마음속에 샛별이 떠올라서 환한 새벽을 맞이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 즉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이 떠올라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즉 그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 떠올라야 합니다.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아직 등불로 세상을 보고 있거나 깜깜한 밤에 그냥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또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환한 빛으로 오시기까지 우리가 이것을 주의 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렇게나 읽다가 보면 엉뚱한 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주의해서 앞뒤를 잘 살펴서 성경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계획들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하고 전적으로 그 복음을 따르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대로 믿고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의하여서 바르게 살펴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말은 성경대로 라고 하면서 길은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따르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어두운 우리의 마음의 등불이 되어서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재림을 발견할 때 우리는 밝은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닙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은 극히 짧은 말씀이지만 이 한 구절은 기독교 역사상 해석학적인 면에 있어서 가장 충돌이 많았던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소위 ‘사적 해석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구절만큼 교회 역사상 해석과 의견이 분분했던 말씀은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이 구절을 인용해서 평신도의 성경 해석 권을 박탈하였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자유롭게 읽고 해석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고 불경스러운 행동으로 간주를 하였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 그레고리 9세는 1229년에 툴로스 종교회의를 소집하게 되었고, 평신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성경을 소유하지 못하고 개인이 성경을 읽고서 해석하지 못한다는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교황과 사제단만이 성경을 소유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의 가톨릭 평신도들은 성경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1960-65년 사이에 바티칸 2차 공회가 열렸습니다.
이때에 로마 가톨릭에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서 평신도들에게도 성경을 소유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평신도들도 개인이 자유롭게 성경을 소유하고 읽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로마의 가톨릭은 무려 800년 동안이나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가톨릭보다 훨씬 늦게 탄생을 했지만 평신도들에게는 성경을 개인이 소유하고 읽고 해석하는 것이 자유롭게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성경을 마음껏 읽고 해석하고 삶에 자유롭게 적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유롭게 소지하고 읽고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은 많이 가지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서 좋지 않은 일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의 해석상의 차이로 인해서 많은 교단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 로마 가톨릭이 좋게 보이기도 합니다.
실지로 그들은 우리 개신교들을 성경을 잘못해석해서 많은 교단이 분리된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지 못하게 해서 진리가 변질 되지 못하게 한 점을 장점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을 한다는 핑계로 성도들의 눈을 가리고 오히려 교황의 주장을 성경 위에 두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정책을 바른 정책이라고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개신교는 누구나가 다 자유롭게 성격을 읽고 해석하게 함으로서 성도들이 많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나름대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앞서 지적을 한 대로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사이비 이단들이 판을 치고 거짓선생들이 성경을 가지고 장사를 해먹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바르게 정리를 해야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로마 가톨릭처럼 성도들이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자기 뜻에 맞는 대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바른 기준이 없으면 성경은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어보면 어느 한 사람도 자기가 성경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 주장은 성경의 핵심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설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전체의 뜻과 반대되는 설교를 하면서도 성경대로 설교한다고 말합니다.
요즘 소위 뜨는 목사들의 설교는 성경 말씀에 별 관심이 없이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성경을 갖다가 맞춥니다.
성경을 자기주장을 합리화 시키는 정도로 사용을 하면서 설교를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개인의 주장에 맞추어서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그 말씀을 기록하신 의도대로 해석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기도하고 묵상해서 말씀들을 객관적으로 해석을 해 왔습니다.
그분들의 연구결과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해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객관적인 해석법대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나는 기도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서 특별히 깨달았다라고 하면 조심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십중팔구는 성경의 주장과는 거리가 먼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해석을 하여 이단사상을 퍼트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예언의 해석이 예수님의 재림과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예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과 같은 방향으로 해석이 될 때 바른 해석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예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들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낸 예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예언을 해석함에 있어서 조심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사람이 쓴 글로 생각하여 사람의 생각을 중심으로 사람이 이해되는 범위 내에서 해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우리의 생각이 짧아서 이해를 하지 못할 뿐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모든 성경 말씀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기록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언은 사람의 사사로운 생각이나 개인적인 사상이나 주관적인 해석과 통찰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부산물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진리임을 항상 명심하십시오.
오직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고민하고 오랜 시간동안 연구해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학문과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성경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즉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하기도 하고 비평을 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주장에 대
해서 강력하게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은 사사로운 인간의 생각이 절대로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본문 19절과 연관해서 “예수님의 재림하심을 우리가 왜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무엇입니까?”라고 의심을 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담대히 증거합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예언은 인간의 사사로운 생각과 판단에 의해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말하는 것입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들이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쓴 예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록한 진리의 말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따라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 재림을 기다리고 사는 성도님들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벧후 1:19-21
제목 : 더 확실한 예언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은 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세상은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린 사람들은 심판을 받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들어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된 기쁨과 참된 행복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 재림을 베드로사도는 능력의 강림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강한 능력으로 화려하게 영광스럽게 강림을 하시어서 그 엄청난 능력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엄청난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나라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렇게 엄청나게 좋은 일이 정말로 있다면 누가 예수님을 믿지 않겠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인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본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셨을 때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처럼 변화되어서 하늘나라에 있는 모세와 엘리야 선지자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나는 직접 본 사람이다.
그리고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 베드로 사도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경험했던 것 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강림하심이 자신이 보았던 그런 장면보다 그런 음성보다 더 확실하게 증명해 줄 예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언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성경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베드로시대의 입장에서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가지게 된 믿음입니다.
성경말씀은 사람이 쓴 글이 아니라 성령하나님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계획 속에 있는 약속의 말씀들 예언의 말씀들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오늘 설교의 제목은 “더 확실한 예언”입니다.
개인의 경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성경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바르게 해석을 하여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정말로 있을 확실한 약속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더욱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1.예언은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에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서 말씀해 주시기 이전에 우리 인생들은 아주 깜깜한 밤에서 살아가는 인생과도 같았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우리 인생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도 알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주 깜깜한 암흑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인간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세월에 끌려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뭘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이치들을 잘 알고 사는 사람들 같은데 사실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들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들처럼 큰소리를 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성경말씀은 어두움을 비추는 빛과 같은 것입니다.
이 우주만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우리 인간이 어디서 나왔는지 왜 이런 모양이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확실하게 말씀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죄를 지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이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복을 받고 장수하게 되는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것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참 신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인간을 향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다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이 우주의 원리를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리 인간의 참 모습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어두운 데를 밝히는 것은 등불로 좀 부족합니다.
빛이 없는 깜깜한 밤에는 등불이 참 좋은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등불은 부분적으로만 비칠 수 있고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지 못해서 모든 것을 확실히 보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을 때도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정도로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을 통해서 발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성경의 목적은 우리로 예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등불을 통하여 예수님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빛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예언 즉 구약성경을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이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이었다면 그 말씀을 통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날이 새어서 낮과 같이 환하게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어두운 세상을 밝히러 오신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마음속에 샛별이 떠올라서 환한 새벽을 맞이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 즉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이 떠올라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즉 그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 떠올라야 합니다.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아직 등불로 세상을 보고 있거나 깜깜한 밤에 그냥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또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환한 빛으로 오시기까지 우리가 이것을 주의 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렇게나 읽다가 보면 엉뚱한 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주의해서 앞뒤를 잘 살펴서 성경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계획들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하고 전적으로 그 복음을 따르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대로 믿고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의하여서 바르게 살펴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말은 성경대로 라고 하면서 길은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따르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어두운 우리의 마음의 등불이 되어서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재림을 발견할 때 우리는 밝은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닙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은 극히 짧은 말씀이지만 이 한 구절은 기독교 역사상 해석학적인 면에 있어서 가장 충돌이 많았던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소위 ‘사적 해석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구절만큼 교회 역사상 해석과 의견이 분분했던 말씀은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이 구절을 인용해서 평신도의 성경 해석 권을 박탈하였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자유롭게 읽고 해석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고 불경스러운 행동으로 간주를 하였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 그레고리 9세는 1229년에 툴로스 종교회의를 소집하게 되었고, 평신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성경을 소유하지 못하고 개인이 성경을 읽고서 해석하지 못한다는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교황과 사제단만이 성경을 소유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의 가톨릭 평신도들은 성경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1960-65년 사이에 바티칸 2차 공회가 열렸습니다.
이때에 로마 가톨릭에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서 평신도들에게도 성경을 소유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평신도들도 개인이 자유롭게 성경을 소유하고 읽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로마의 가톨릭은 무려 800년 동안이나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가톨릭보다 훨씬 늦게 탄생을 했지만 평신도들에게는 성경을 개인이 소유하고 읽고 해석하는 것이 자유롭게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성경을 마음껏 읽고 해석하고 삶에 자유롭게 적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유롭게 소지하고 읽고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은 많이 가지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서 좋지 않은 일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의 해석상의 차이로 인해서 많은 교단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 로마 가톨릭이 좋게 보이기도 합니다.
실지로 그들은 우리 개신교들을 성경을 잘못해석해서 많은 교단이 분리된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지 못하게 해서 진리가 변질 되지 못하게 한 점을 장점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을 한다는 핑계로 성도들의 눈을 가리고 오히려 교황의 주장을 성경 위에 두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정책을 바른 정책이라고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개신교는 누구나가 다 자유롭게 성격을 읽고 해석하게 함으로서 성도들이 많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나름대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앞서 지적을 한 대로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사이비 이단들이 판을 치고 거짓선생들이 성경을 가지고 장사를 해먹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바르게 정리를 해야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로마 가톨릭처럼 성도들이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자기 뜻에 맞는 대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바른 기준이 없으면 성경은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어보면 어느 한 사람도 자기가 성경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 주장은 성경의 핵심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설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전체의 뜻과 반대되는 설교를 하면서도 성경대로 설교한다고 말합니다.
요즘 소위 뜨는 목사들의 설교는 성경 말씀에 별 관심이 없이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성경을 갖다가 맞춥니다.
성경을 자기주장을 합리화 시키는 정도로 사용을 하면서 설교를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개인의 주장에 맞추어서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그 말씀을 기록하신 의도대로 해석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기도하고 묵상해서 말씀들을 객관적으로 해석을 해 왔습니다.
그분들의 연구결과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해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객관적인 해석법대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나는 기도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서 특별히 깨달았다라고 하면 조심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십중팔구는 성경의 주장과는 거리가 먼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해석을 하여 이단사상을 퍼트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예언의 해석이 예수님의 재림과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예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과 같은 방향으로 해석이 될 때 바른 해석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예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들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낸 예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예언을 해석함에 있어서 조심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사람이 쓴 글로 생각하여 사람의 생각을 중심으로 사람이 이해되는 범위 내에서 해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우리의 생각이 짧아서 이해를 하지 못할 뿐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모든 성경 말씀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기록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언은 사람의 사사로운 생각이나 개인적인 사상이나 주관적인 해석과 통찰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부산물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진리임을 항상 명심하십시오.
오직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고민하고 오랜 시간동안 연구해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학문과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성경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즉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하기도 하고 비평을 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주장에 대
해서 강력하게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은 사사로운 인간의 생각이 절대로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본문 19절과 연관해서 “예수님의 재림하심을 우리가 왜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무엇입니까?”라고 의심을 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담대히 증거합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예언은 인간의 사사로운 생각과 판단에 의해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말하는 것입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들이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쓴 예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록한 진리의 말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따라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 재림을 기다리고 사는 성도님들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