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기초적인 내용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고, 쉽게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도 귀중한 의미가 담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사실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우리가 보통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과정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순간마다 생각해야 하고, 영원토록 잊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어느날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시간에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목사님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전혀 알지도 못했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에게 복음이 들려졌고, 내가 그 복음을 믿게 되었고, 그 복음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나의 주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과정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작은 복음” 혹은 “복음서 안에 있는 복음”이라는 별명을 가진 구절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유명한 성경 구절입니다. 아니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많이 알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경의 말씀이 많은 사람에게 오해를 일으켰고, 잘못된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 구절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는 「보편적 구원론, 만인 구원론」의 증거로 제시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과연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구원에 이르게 하실까요? 예수를 믿지 않았는데도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구원에 이르는 길일까요?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지 않고 구원을 받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죽음 이후에 예수를 믿는 길이 있고,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이르게 될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은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한일서 4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사도」라고 하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잘못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의 구원이 너무나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그 위대하고 고귀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사랑이 값싼 동정심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의 고귀하고 위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다시금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세상에 나타난 사랑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혼란을 일으키는 단어는 “세상(世上;κόσμος)”입니다. 과연 이 세상이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 유대인, 즉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본래 “세상(κόσμος)”은 구약에서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별하신 선민 이스라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구속 역사의 주역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저들을 택하시고 구별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이방인이 선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귀속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오직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요,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본문에 등장하는 “세상”이 모든 민족에게로 확장되는 것에 대해서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등장하는 세상은 유대인의 장벽을 부수고 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지 유대인이라고 하는 혈통 안에 가두어져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지혜자나, 야만인을 구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겔18:4).
특히 신약으로 건너오면 이러한 “세상”의 범위는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서 이 세상은 보통 모든 인류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세상”이라는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되는 성도들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영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모든 영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문을 넓게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딤전2:4).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 말도 맞다고 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선택하신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자기 백성을 향한 역사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역사요, 자기 백성을 통해서 나타내시는 역사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백성들에게 제한되어 나타난다고 해서 그 사랑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와 정도는 이 세상에 왔었고, 지금 와 있고, 앞으로 올 그 모든 사람을 품고도 남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그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 찬송가 304장에서는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토록 크고 놀라운 사랑이 바로 우리를 향해서 나타났습니다. 아니 바로 나 한 사람을 위해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동체를 향해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개인을 향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Augustine은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사랑할 사람이 단지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신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 가운데서 바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것도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크기와 정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만큼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존재요, 고귀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심입니다.
Ⅱ.독생자를 주시는 사랑입니다.
본문에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원문에는 “이처럼(Οὕτως)”이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타내신 사랑의 정도와 분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수준인지 이제부터 설명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정도가 어느 정도이냐 하면 바로 “독생자를 주셨으니”입니다. 즉 하나님이 나타내신 사랑의 정도가 얼마인가를 묻는다면 바로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면 자신을 주지 왜 죄 없는 독생자를 주셨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주시는 것이 어려울까요? 아니면 아들을 주시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이는 부모의 입장에 서신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당신의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만이 나타내실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랑의 가치를 그렇게 하찮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나를 위해서 독생자를 주셔야만 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 문제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일 뿐입니다. 또한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하신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를 위해서 영원하고 유일한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해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의 결과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내가 영원한 죄의 문제에 얽매여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시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과 저 천국을 유업으로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나 대신에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세상에 오셨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나를 위해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Ⅲ.영생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본문에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 목적은 두 가지로 발견되는데, 하나는 소극적인 의미요,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먼저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목적은 우리를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의 “멸망(ἀπόλλυμι)”은 ‘파괴되다, 죽는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사도 요한이 자주 사용한 용어로,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다시 말하면 소망이 전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멸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맞이하는 상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죽음, 영원한 멸망, 영원한 절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또한 이 표현이 본문에서 사용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당하는 멸망의 상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멸망하지 않고”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멸망시키시지 않기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죄인들을 멸망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의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의 대가인 영원한 멸망으로 심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시려고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목적인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의 “영생(ζωὴν αἰώνιον)”은 문자적으로는 ‘영원한 생명’, 즉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생명’을 가리킵니다. 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죽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 생명만을 의미한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영원한 형벌을 받으며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영생은 영혼불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현세에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입니다. 물론 이는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믿음을 일으키시고, 고백하게 하심으로 이 새로운 관계를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친교의 자리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는 마지막 날에 이루어집니다. 개인의 마지막이든, 인류의 마지막이든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영원한 친교의 관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멸망과 영생은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멸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원히 단절되는 것이요, 영생은 하나님과의 새롭고 영원한 친교의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영생을 얻고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본문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는 우리가 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 바로 “믿음(πιστός)”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경험도 아닙니다. 어떤 감정도 아닙니다. 이는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믿음은 단번의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번 믿었다고, 한번 고백했다고 그것이 영원한 효력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매일 매 순간 이 믿음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 삶의 영역을 통해서 그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은 바로 이러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하신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합니다(마7:21). 우리가 아무리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안에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그 아들을 믿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가 전혀 없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시작되고, 성취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나 같은 자를 사랑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에 던져질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 안에 있는 나를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나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내가 당할 영원한 형벌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인하여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근거로 우리가 영원한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시고 영원한 친교를 누리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생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날마다 이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사랑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영생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 세상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원하기를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인해 감격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전파하는 아름다운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복된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