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7.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71)
본문 : 막 14:17-21
제목 :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
“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최근에 우리나라에 “수저 계급론”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여러 가지 형편에서 태어나는데 어떤 사람은 금수저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흙수저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형편에서 어렵게 살아야 합니다.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부자로 누리면서 잘 살아갑니다.
과거에도 이런 금수저 흙수저 같은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양반의 가정에서 태어나는가, 상민이나 천민의 가정에서 태어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민이나 천민의 자손은 양반이 되지 못하고 상민이나 천민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신분제도는 없어졌습니다. 비록 흙수저로 태어난다고 해도 노력하면 금수저처럼 살 기회도 많이 있습니다. 일부 특별한 재벌 가정을 뺀다면 그 외의 사람들은 노력하는 만큼 잘 살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면, 신앙적인 면에서는 아주 뚜렷하게 이 차별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사탄의 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하는 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뚜렷한 차이며 엄청난 차이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평준화된 세상에서 아직도 그런 신분의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에 의아심을 가집니다. 누구나 똑같은 형편에서 태어나고 누구나 노력하면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것은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인간의 구원을 중요한 핵심으로 기록한 성경 말씀에서 그것을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배반자 가룟 유다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서 죽음에 내어주도록 한 가룟 유다에게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태어날 때부터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사람”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말씀을 잘 들어보시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본문 17~18절에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바로 앞 절의 말씀으로 “최후의 만찬 준비”라는 제목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준비되었던 그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먹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만찬이 끝나면 내가 잡혀가서 십자가의 죽임을 당할 것인데 그 일에 악역으로 쓰임을 받을 사람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붙잡혀가서 죽임을 당할 것인데 누군가가 나를 그들에게 팔아넘길 것이고 그 사람이 너희 중 한 사람이고 지금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왜 이런 방법 즉 가까이 두고 있던 제자의 배반에 의해서 죽으셨을까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붙잡아서 끌고 간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예수라고 지적만 했는데 왜 이런 방법으로 붙잡혀 가셨을까요? 그리고 이런 악한 이야기를 최후의 만찬이라는 이 중요한 시간에 말씀하셨을까요?
1)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간의 악함을 대조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한없는 사랑으로 은혜로 인간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고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할 인간은 끝없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오히려 악으로 대하고 불순종하고 배반하는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제 내일이면 십자가의 모진 형벌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그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몰라보고 영접하고 환영하고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배반하고 팔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런 사실을 아는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악한 일을 인간들은 하고 있습니다.
창세 이후 인간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역 행위는 끊임없이 계속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살펴보면 저절로 감사가 나오고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감사는커녕 늘 원망과 불평이 입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 그리고 사랑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며 우리 인간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있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으로 주신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그와는 정반대로 이기적인 욕심 미움 다툼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창조 질서와 정반대로 사는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2) 가장 가까운 곳에, 우리 가운데 배반자가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 사람이 이방인 가운데서 나왔다거나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왔다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핵심 인물인 열두 제자 가운데서 나왔고 그것도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잘 섬기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손잡고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이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것도 돈을 받고 팔아서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외면하고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행위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많이 연구한 신학자가 복음을 모르고 엉뚱한 소리나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늘 성경을 연구하여 설교하고 설교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사명을 맡은 목사가 복음이 아닌 오히려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설교라고 하면서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훌륭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아무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복음을 전하면서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이 세상의 삶을 더 중요하게 가르친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 선생이며 예수님의 제자로 가장해서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하는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19~20절에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라고 하시자 제자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룟 유다 차례가 되어서 가룟 유다도 똑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더 자세하게 이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마 26:2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말씀하셨는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알지 못하는 줄 알고 아주 당당하게 거짓말로 속이고 있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이 안 그런 척하고 거짓말로 속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좋은 이야기들도 많으실 텐데 이런 정말로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배반자를 지적하시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룟 유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그 귀한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으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 할만 하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할 때와 같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에서 살펴본 대로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했거나 믿지 않아서이고 세상의 돈 욕심이 많아서이고 사탄이 그의 안에 침투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룟 유다가 회개할 기회를 놓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가룟 유다가 아직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인용한 마태복음 26장의 기록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부를 때 다른 제자들과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있음을 봅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했지만 가룟 유다는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여”라고 호칭한 것은 마가복음의 주제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며 복음의 시작이 되신다는 것을 알고 고백한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며 구원의 주님이 되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호칭한 것은 사람 중에는 존경받을만한 위치에 있는 훌륭한 선생님 정도로 불렀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거나 그리스도가 되심을 인정하지 않은 호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마지막 회개할 기회도 놓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도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따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잘못된 복음을 외치거나 따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윤리 도덕적인 선생님 정도로 따르는 사람은 바른 복음을 외쳐도 회개하지 못합니다.
마가복음의 기록 목적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며 구원의 복음의 시작이시며 기초가 되심을 알고 믿는 것이 너무나 소중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냥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줄 알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복음을 배반한 사람은 아닌지 주님께 여쭈어보시기 바랍니다. 바른 복음을 따르는 믿음을 가진 사람인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본문 21절에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세밀하게 정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이 일에 동원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역사도 사실은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역사였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가 나름대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원의 도를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사탄의 종으로 세상을 살다가 사탄을 위해서 마련된 영원한 지옥으로 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원의 역사에 좋은 일하는 사람으로 배정되어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처럼 악한 역할을 맡아서 욕을 먹고 지옥 백성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악역을 맡은 가룟 유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고 그런 사람은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가룟 유다는 억울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대로 그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이 악한 일을 용감하게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남을 위해서 엄청난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나 좋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영원한 지옥형벌까지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참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 가룟 유다와 반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참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분이 잘 아는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이 세상에 먼저 태어나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사람들에게 선포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길을 예비하고 회개를 선포한 세례요한을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 7:28)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선포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선포한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소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사람입니까?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먹는 악역을 담당한 사람입니까? 교회 안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여 예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은 혹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례요한처럼 여인의 몸에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참 다행한 일이요 자랑스러운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함으로 칭찬받는 사람입니까?
가룟 유다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한 것은 지금 여러분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여인이 난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회복한 사람이요 영원한 천국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요 세상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불행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평생 복음을 외치고 사는 것은 아직도 이 일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은 이 복음 속에 있는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복되게 하고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게 하는 엄청난 것이 이 복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남에게 인정받지는 못하고 대우도 받지 못하고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이 위대한 믿음을 나누어주는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룟 유다는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파는 악역을 맡아서 영원한 지옥 백성이 되므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한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믿게 되어서 세상에서 그 어떤 사람이 받는 복보다도 큰 복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비록 큰일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세상에서 손 가락질 받으며 힘든 고난의 삶을 산다고 해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가 받은 영원한 천국 영원한 생명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