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승리

다니엘 7장 13-18절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 내가 그 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유다의 멸망과 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이 바벨론 제국과 메대와 바사 제국의 시대를 지나면서 겪었던 큰 사건 6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통해서 하나님은 온 세상의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7장부터 12장까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등장합니다. 여기에 기록된 내용은 다니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묵시의 내용입니다. 즉 다니엘이 본 미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구약의 묵시록(계시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다니엘서 7장부터 12장까지의 내용은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내용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많은 결론이 도출되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성경을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이 다니엘서를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왜곡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즉 이 다니엘서는 다니엘 선지자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다니엘보다 몇백 년 후에 나타난 익명의 사람이 지나간 역사와 현재의 역사를 과거의 사람 다니엘의 이름을 빌려서 기록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오늘 우리의 손에 들려진 이 기록된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작품임을 믿습니다. 완전축자영감설을 믿습니다. 비록 오늘날 우리의 이성이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성경의 근본적인 의도를 훼손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가지신 최고의 목적인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고도 충분하게 담고 있음을 믿습니다. 따라서 이 성경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구원의 길을 알 수가 없고, 구원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라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성취되었고, 장차 성취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전제로 다니엘서를 바라보면 하나님이 다니엘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이 다니엘서가 기록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암울합니다. 유다가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방에 포로로 잡혀 왔습니. 에스겔이 본 마른 뼈처럼 아무런 소망을 찾을 수가 없을 상황입니다(37).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을 섬길 날을 소망하지만, 그 날이 언제 올 것인지 요원합니다. 바벨론이 멸망하면 그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더 큰 강대국이 등장함으로 저들의 꿈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장차 이루어질 역사를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역사의 주권자이며, 유일한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소망조차 가지기 힘은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이 역사를 주관하심으로 그 역사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당신이 창조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실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역사는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성전 재건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도는 이 세상의 역사에 의해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아무리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어렵고 힘이 든다 할지라도 이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의 승리를 보장해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결국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 안에서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나라를 세우시고 폐하십니다.

본문 1절에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왕위에 오른 그 원년에 다니엘이 꿈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환상은 보통의 꿈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후로도 다니엘은 몇 번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환상이 의미하는 내용은 비슷합니다. 물론 그 환상들은 나름대로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환상은 광범위한 것이었고, 어떤 환상은 특정한 사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모든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인간 세상의 모든 역사는 오직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2-12절에 보면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서 본 큰 짐승 넷에 대한 내용입니다. 첫째 짐승은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와 같았습니다(4). 둘째 짐승은 곰을 닮았는데 세 갈빗대를 물고 있었습니다(5).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았는데, 머리가 넷이고, 새의 날개 넷을 가지고 있었습니다(6), 넷째 짐승은 다니엘이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7). 다만 다니엘이 그 짐승을 볼 때, 무서웠고, 놀랐습니다. 그 짐승은 매우 강했고 열 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전의 짐승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본 환상에 등장하는 이 짐승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어떤 짐승이라고 확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다만 같았다, 닮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다니엘이 그 짐승들의 모습을 잘 몰라서가 아닙니다. 사실 이 짐승들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 등장하는 것인데, 이 짐승들의 모습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짐승들로서는 완전하게 묘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 말씀을 읽어야 하는 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설명하기 위해 세상의 짐승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짐승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환상은 다니엘 2장에 등장하는 큰 신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큰 신상은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었고, 팔과 가슴은 은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넓적다리는 구리로 되어 있었고, 다리는 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가락은 철과 진흙으로 섞여 있었습니다(2:32-33). 그리고 이 신상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그 이후에 일어날 제국들을 가리킨다고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환상에 등장하는 이 네 짐승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본문 17절에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우리가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짐승, 곧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와 같은 짐승은 바벨론 제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를 좁은 의미로 보면 느부갓네살 왕을 상징한다고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짐승, 곧 곰을 닮은 짐승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등장하는 페르시아 제국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 짐승, 곧 머리와 날개 넷을 가지고 있는 표범과 같은 짐승은 페르시아 제국 이후에 등장하는 헬라 제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짐승, 곧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무섭고 두려운 짐승은 헬라 제국 이후에 등장하는 로마 제국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네 짐승으로 표현된 제국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습은 바로 교만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를 잔인하게 짓밟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이나 힘을 지나치게 악용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역사에서 사라질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게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 즉 훗날 최대의 영토를 가지게 되고, 페르시아로 병합되었지만, 알렉산더로 대표되는 헬라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더 정복할 땅이 없어서 울었다고 알려진 알렉산더에 의해서 세어진 헬라도 로마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또한 로마는 영원하다라고 외치며 세계의 정복을 꿈꾸었던 로마도 끝내는 사분오열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근본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의 나라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처럼 보일지라도 그 나라가 영원히 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나라들이 세워지도록 허락하십니다. 그 나라들이 왕성해지도록 허용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서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게 만드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자신들이 주인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의 역사는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들의 그러한 어리석은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리십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그 힘이 오히려 그 자신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되게 하십니다. 역사의 주인이라고 교만하던 저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당신의 뜻과 계획을 위해 세우시고 폐하십니다. 아무리 크고 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이 끝나면 역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네 짐승은 바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세워지고 사라지는 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역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뿐이요, 그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에서 인류의 역사가 진행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흥망성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쇠하지 않는 나라, 왕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왕권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제국들의 모습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왕좌의 자리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모습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분을 모셔 선 자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분은 심판주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분은 만물의 창조주요, 통치주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13절에 인자 같은 이가 등장합니다. 이 분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입니다. 이분은 보좌에 앉으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이분은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서 섬김을 받으실 분입니다. 이분의 권세는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분,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시는 분은 장차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은 자기 백성의 영원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분은 잠시 비우셨던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셨다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분은 가고 오는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 하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도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그 왕국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이 나라를 받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갓입니다. 본문에서 3번에 걸쳐서 반복되는 영원하다라는 표현은 최상급의 표현으로 그 나라가 영원무궁토록 계속 존재하는 무한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되고 통치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는 달리 영원한 나라입니다.

1.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 받을 심판

본문 25절에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네 짐승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대적하는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네 번째로 등장하는 이 짐승은 성도들을 대항하여 싸우고 짓밟는 대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비슷한데,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했습니다. 이들은 분명 마지막 때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입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들의 때는 항상 정해진 시간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대적들이 압제하는 시간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최종의 승리를 소망하면서 인내하도록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 성도들에게는 궁극적인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서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22절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20절에서는 그 짐승이 붙잡히고 유황불에 던져지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대항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세상의 세력은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이 심판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저 원수들을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흔들 그 어떤 세력도 남겨두지 않으십니다.

2.예수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로 완성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본문 26-27절에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본문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세력, 적그리스도 세력의 시간이 끝나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시작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세력에게는 처참한 파멸과 형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들의 권세는 빼앗기고 맙니다. 저 적그리스도의 권세는 이 땅에서 일시적으로 그 위세를 떨칠 뿐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그 종말을 맞이하고야 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영원한 나라는 존속됩니다. 오히려 더 왕성해집니다. 적그리스도가 철저하게 파멸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주어짐으로 그가 그 영원한 나라를 통치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들에게 자신의 통치권을 공유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적그리스도와 그 세력들로 인해 박해를 받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의 반열에 올라서서 그 권세를 누리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20:4, 22:5). 다만 그 통치권은 그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그 통치권을 주시는 이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실현될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권을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심판을 시행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창세로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형벌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책이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그 나라에서 영원토록 왕노릇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궁극적인 통치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비록 왕노릇 하는 성도들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엎드려 복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자신들의 면류관을 벗어 아버지 앞에 바치면서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4:11).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본 모습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죄의 권세 아래 떨어짐으로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심판 이후에 모든 질서가 회복될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창조의 시점과 같이 제자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는 이제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의 삶은 전투적인 삶입니다. 우리가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성도의 삶은 끊임없는 전투의 연속입니다. 이 전투로 인해 성도는 많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저 세상을 주관하는 세력,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성도의 삶은 언제나 십자가의 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풀무불 같은 상황일지라도, 사자굴과 같은 상황일지라도, 성도를 완전히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이는 나와 함께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궁극적인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비록 현실은 힘이 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은 잠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끝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영원한 영광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8:18). 또한 우리 주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22:20). 그 약속은 머지않은 때에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걷고 있는 시간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나의 모든 발걸음은 하나님의 손길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세우시고, 승리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나의 역사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저 대적들을 완전히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를 믿고 인내하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자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오늘의 상황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극복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의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다시 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