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의 성령강림
행2:1-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어느 한 사건이라도 의미 없이 일어나는 사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사건마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하나님은 특별하신 의미를 그 사건 안에 계시해 놓고 계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History)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는 또한 교회사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 사건이 없었더라면 교회는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의 사건을 통하여 교회라는 거룩한 기관을 출발시키셨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에서 이 성령강림이 가지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령강림에 대한 의미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일명 성령 운동은 그 의미가 오늘 성경에 나타난 성령강림의 사건과는 다른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혼용되는 가운데서 많은 혼란을 가져오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이 성령 운동을 잘못 해석해서 많은 교회가 잘못된 이단으로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교회가 성령 운동을 펼치는데 많은 제약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이 성령 운동을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교회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태동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견줄 수 있는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복음서의 시작이요, 신약의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강림의 사건은 사도행전의 시작이요, 신약의 1차 결실인 교회의 태동과 원동력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성령강림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승천과 연결되는 구속 사역에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이는 성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되고, 이제 그 완성된 구속 사역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사역의 시작이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성령강림의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사에서 일어난 성령강림의 사건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나타난 이 성령강림의 사건은 바로 오늘의 교회가 출발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오순절의 성령강림』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이 기지는 의미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약속 성취로서의 사건입니다.
본문 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오순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는 3대 명절 중의 하나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4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년에 3가지의 명절을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는 무교절입니다. 이는 유월절로부터 시작되는 절기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둘째는 맥추절입니다. 이는 유월절이 지난 50일째 되는 날로서 칠칠절 또는 초실절 또는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절기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보리 농사를 짓고 거둔 첫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셋째는 수장절입니다. 이는 장막절 또는 초막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절기입니다. 이는 한해의 농사를 마친 후에 모든 양식을 저장해 놓고 한 해 동안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또한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지내온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 오순절이라고 하는 절기에 강림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열매를 거두고 하나님께 그 열매를 드리며 감사했던 것처럼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교회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유월절을 완전히 성취하신 것이라면 성령강림은 구약의 오순절을 완전히 성취하신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이미 이르매”라는 말씀은 그 원뜻이 ‘가득 채우다’ 또는 ‘시간이 거의 닥쳤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오순절 날이 거의 가까웠다’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즉 이 말은 본문에 등장하는 오순절이 매년 지내온 오순절과는 무엇인가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암시해주는 말씀입니다. 그냥 시간이 흘러 1년이라는 기간이 지나고 작년에 지냈던 명절이 다시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무엇인가 계획되었던 사건이라는 강한 의미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 성령강림의 사건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요엘은 그의 책 2장 28절 이하에서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 많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5절에서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타난 “이미 이르렀다”라는 것은 요엘이 예언한 “말세”가 이미 이르렀다는 것이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요, “몇 날”이 이미 다다랐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셨고, 제자들은 약속대로 성령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에는 거짓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에는 오류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에는 오직 “성취(成就)”라는 두 글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당신이 하신 모든 약속에 대하여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두 사건은 바로 예수님이 하신 모든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보증이 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약속대로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이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강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된 사건입니다.
Ⅱ.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본문 2-4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강림의 역사를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느낄 수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현상은 자연적인 현상들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대로 역사하신 사건입니다.
성령강림의 사건은
1.홀연히 일어난 사건입니다.
여기의 “홀연히”라는 표현은 ‘갑자기, 즉시’라는 뜻입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때를 가리킵니다. 세례 요한이 탄생할 때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할 때는 열 달이라는 준비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강림의 사건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성령강림의 사건은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이 계획하고 있던 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보내주실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날도 그들은 여느 때처럼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2.하늘로부터 시작된 사건입니다.
성령강림의 역사는 이 땅에서부터 시작된 사건이 아닙니다. 이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늘은 분명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늘은 창조의 능력과 구속의 능력이 있는 곳입니다. 하늘은 의인에게는 구원이 보장되는 곳이요, 악인에게는 심판이 예비된 곳입니다. 이 하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좌정하여 계신 곳입니다. 바로 이곳 하늘로부터 성령강림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3.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했습니다.
이는 사람의 청각을 감안한 표현입니다. 즉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소리입니다. 본문에서 “바람 같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성령이 바람과 동일시되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고 했는데, 이는 ‘강한 바람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라는 뜻입니다. 결국 집 안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은 자신들의 귀에 아주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 나타나는 바람의 소리는 성령의 강한 능력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은 바람처럼 볼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힘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존재입니다. 그 어떤 존재도 성령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4.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임했습니다.
이는 사람의 시각을 감안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혀같이 갈라졌다”입니다. 성령이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임하셨다는 것은 한 성령이 여러 사람에게 같은 목적으로 나타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불처럼 강림하신 성령은 그 집에 모인 모든 사람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령이 하나이심을 의미합니다. 곧 성령의 출처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여러 사람이 여러 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성령을 받지만, 그 근본은 오직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를 불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성령이 불처럼 임하셨다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더러움을 태워 성결하게 하시는 존재입니다. 성령은 죄의 세력을 태워 심판하시는 존재입니다. 성령은 어두움을 물리치시는 존재입니다. 성령은 불가항력적인 강한 힘을 소유하신 존재입니다.
5.그들의 이성이 작용하고 있을 때 임했습니다.
성령강림의 사건은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성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때 임했습니다. 그들의 귀가 정상적으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정상적으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들이 술에 취했다고 비난했지만, 그들은 아주 정상적인 상태에서 성령강림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6.각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이는 성령강림의 사건이 단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개인적인 사건임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받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다른 사람들이 받는다고 해서 어울려서 받을 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은 오직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 속에서 받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이 개인적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개인적임을 가리킵니다. 이는 인간의 구원이 개인적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을 개인주의로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이라는 곳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개인적으로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7.모든 사람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성령은 적당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여기에서 “충만하다”라는 것은 잔에 물이 가득하여 더 이상 채울 수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성령은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 각각의 개인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성령은 그들 하나 하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성령강림의 사건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인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고, 전혀 준비할 수 없는 가운데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심으로 그들을 완전히 사로잡았고, 그들을 그 능력으로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강림의 모습입니다.
Ⅲ.하나님의 큰 일을 위한 역사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강림의 역사는 당시의 예루살렘을 발칵 뒤집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경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행동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본문 4절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11절에서는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라고 했는데, 이는 당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15개 이상의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온 사람들의 말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처음 한 일은 곧 “방언(γλῶσσα)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방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자연적으로 얻어지지 않는 언어’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 스스로 노력해서 또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언어가 아니라 어떤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갑자기 얻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배운 말이 아닌 다른 언어를 말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아주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1장에서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을 언어의 혼잡을 통하여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그 때부터 지구상에는 온갖 언어로 가득차고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은 이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입을 통하여 이 언어의 장벽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제약이 될 수가 없는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언은 교회사에 등장하는 다른 방언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과는 다른 성격의 방언입니다.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입니다. 이는 아무나 해석할 수도 없는 방언입니다. 그리고 이 방언은 개인의 신앙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방언은 달랐습니다. 이 방언은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가 있는 방언입니다. 그것도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온 많은 이방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이 각 방언으로 여러번 말을 했던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은 하번 말을 했을 뿐인데 듣는 이들은 각자가 자기의 말로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방언과는 완전히 다른 방언이요, 교회의 역사에 단 한번 나타난 사건입니다.
또한 성령이 제자들에게 이 방언을 말하게 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4절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제자들 스스로가 방언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제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았고, 제자들은 성령의 지시에 따라 방언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한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큰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큰 일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 승천하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곧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복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온 여러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명령하셨던 것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딸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던 말씀이 성취되는 첫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복음 전파에 대한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이 일에 대하여 기이히 여기며 감탄하는 부류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일을 비방하며 조롱하는 부류였습니다(5-13절).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이처럼 두 종류의 부류로 나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얻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복음을 거역하고 대적하여 심판을 받고 마는 부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증거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성령이 강림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약속 성취로서의 사건입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큰 일을 위한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성령강림의 역사가 오늘날도 계속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건은 교회사에서 단 한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또한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는 사건입니다. 성령은 한번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령의 역사는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령의 강림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성령의 충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의 역사는 단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지만 성령의 충만은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바로 이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성령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교회를 붙드시고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역사를 계속 진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신 성령은 오늘날도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당신의 역사를 진행해 나가시고 있습니다. 이 성령을 저와 여러분은 이미 받았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로 인해 우리는 예수를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로 인해 우리는 주님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로 인해 우리는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성령이 오셨음을 감사합시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셨음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주의 일에 충성합시다. 주님의 명령대로 주의 복음을 위한 증인이 됩시다. 주님이 오시는 날 주 앞에서 큰 칭찬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비취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주님의 일에 충성하는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