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43)
본문 : 벧전 4:12-13
제목 :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에 관한 것입니다.
불 시험은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시련이 불같이 뜨거울 것을 상징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육신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으셨다고 했습니다.
흙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흙 속에는 온갖 물질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흙속엔 금, 철, 망간, 규소, 인, 텅스텐, 우라늄……. 이런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흙을 가만히 두면 이런 귀한 것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각 제련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부분은 불로 뜨겁게 태워서 불순물들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금이라도 순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높은 온도로 금 속에 섞여 있는 불순물들을 태워버려야 순수한 금이 됩니다.
철이라도 강한 강철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불로 태우고 망치로 내려쳐서 연단을 시켜야 강한 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셔서 이 세상에 보내주셨지만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강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연단의 과정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와 같은 방법으로 훈련을 시켜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거쳤음을 우리가 압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일꾼들 또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불 시험과 같은 연단의 과정을 거쳐서 그런 인물들이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불 시험을 당할 때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오고 우리 주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다시 오실 때 그 때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춤을 추기 위해서는 이런 불 시험과 같은 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앞에 다가오는 불 시험들을, 혹독한 훈련들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기쁘게 받으셔서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여러분의 믿음이 정금같이 되어서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오늘 본문 12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교회에 다니면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고 평안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어려움도 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겪게 됩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 이상한 일이 생긴 것처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이런 어려운 일들은 우리를 단련시키는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게 하는 것임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녀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바랍니다.
조금도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부모님들이 뭐든지 쉽게 해결을 해 줘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안하게 자라고 쉽게 문제를 해결해 버리고 자란 아이는 강해질 수가 없습니다.
나약한 모습으로 평생을 살게 하고 무슨 일이 있든지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훌륭하게 성장한 운동선수를 보십시오.
그들은 엄청난 훈련을 소화해 낸 사람들입니다.
훈련을 잘 받고 잘 견딘 사람은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이고.
훈련을 게을리 한 사람은 중간에 탈락되고 맙니다.
열심히 훈련을 하여 국가대표선수가 된 후에도 훈련을 게을리 하면 도중에 탈락을 시킵니다.
아이들 공부를 시켜 봐도 힘들어도 열심히 끝까지 노력을 하는 아이는 실력이 올라가고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늘 노는 아이는 실력이 떨어집니다.
아이들 공부 잘 하게 하려면 인내심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공부는 히프로 한다는 말입니다.
꾸준히 책상에 앉아 있으면 그래도 좀 낫습니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싸우고 맞고 오면 금방 달려가서 복수해 주고 그러지 마세요.
또 그런 아이들하고 놀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과 싸우고 경쟁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스스로 해결을 하고 그런 가운데 자기 위치를 스스로 차지하고 그래야 힘 있는 아이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면서 일부러 자녀들을 힘든 일을 찾아가서 하게하고 스스로 자신을 개척하도록 했습니다.
온실에서 자란 식물이 밖에 나와서 살지 못하듯이 온실처럼 따뜻한 데서 자란 아이는 세상에 나가서 살기가 어렵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성도들을 따뜻한 온실에서 키우지 않으십니다.
우리 생각 같으면 하나님은 뭐든지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고 또 없는 것이 없는 풍족한 분이시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뭐든지 다 주시고 우리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다 해결해 주시고 그래도 되실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강하게 해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그 믿음을 받은 우리가 그 믿음을 강하게 키워나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같은 믿음을 선물로 받았는데도 엄청 강하게 사용을 하고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를 정도로 약하게 사용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훈련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연단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이렇게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믿음도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 기도하면 다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님께 충성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 여러 가지의 믿음이 있습니다.
다 소중한 믿음이지만 오늘 본문 말씀이 요구하는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믿는 그 믿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믿음을 다 가지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고, 이 믿음이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하는 하나님의 새 언약이고, 이 믿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많은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고난도 당해야 하고 어려움도 겪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정도로 비참한 사람이 되어보아야 합니다.
실패와 좌절도 당해보고 손가락질 받고 비난을 당하고 세상에 의지할 데가 없어서 눈물을 흘려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막다른 골목에서서 하나님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험도 통과를 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이상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가 가진 믿음이 강한 믿음이 되게 하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을 받을 도구가 되어 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오히려 즐거워하라.
본문 13절 말씀에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당하는 고난이고 하나는 예수님 잘 믿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가 잘못을 해서 고난을 당할 때도 그 고난을 통하여 더 유익한 것을 얻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우리가 뭘 잘못해서 고난을 당하면 잘 됐다고 비웃기나 하고 동정의 눈길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오히려 그런 어려움들을 통하여 더 좋은 일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그것이 우리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난이라고 할지라도 이왕 그렇게 된 것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을 당한다면 즉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은 당하면 당할수록 더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들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시민권도 빼앗기고 살고 있던 터전도 재산도 다 빼앗기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담보로 해야 하는 극심한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예배드리다가 잡혀가면 그날부로 사형을 당하기도 하고 삶의 것을 포기할 각오로 모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하고 그 질이 달랐습니다.
그 각오가 달랐고 자세가 달랐습니다.
오직 믿음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고난을 감수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그 때에 비하면 교인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의 희생도 헌신도 없이 외려 복을 받아서 좀 편안하게 살아보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라도 붙잡고 있어보려고 교회는 온갖 감언이설로 헛된 약속들만을 늘어놓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세상에서 잘 된다 복 받는다.
출세도 하고 돈도 벌고 만사가 형통해 진다.
별별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고 교회에 온 사람들로 가득해서 고난이나 희생이나 헌신이나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들을 잘 읽어보고 진리를 깨달아 보면 예수님 믿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그것이 기뻐할 일이 아니고 즐거워할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잘 하려다가 고난을 당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고 예수님 섬기면서 살려고 하다고 손해를 보고 예수님의 성품을 따라 하다고 손해를 보고 그래야 진짜 성도요 그래야 진자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16년 동안에 세상의 교회들처럼 세상에서 복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예수축복을 외쳤다고 하면 저도 지금처럼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머리 좀 굴리고 대강 거짓말로 속이고 헛소리 좀 했다면 모르긴 해도 남들처럼 큰 교회 짓고 많은 사람들 모이게 하고 좋은 차타고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 외치다가 보니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외롭게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성도들도 십년이 넘도록 충성을 해도 부자도 못되고 이렇게 어렵게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이런 노선을 바꿀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너무나도 분명한 진리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시찰교회 설립예배에 축사를 하러 참석을 해서 그만 고함을 지르고 오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의 축복만을 강조하는 무늬만의 교회라고 한다면 천개가 생기고 만개가 생긴다고 무슨 축하할 일이 있겠습니까?
교회가 없어서 교회를 세웁니까?
참된 진리를 전하는 교회가 될 것을 믿고 축하합니다. 라고 강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말 한다고 누구하나 아 그래야 되겠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겠습니다.
그런 말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천국을 외면하고 세상을 향한 세상을 위한 세상의 교회들이 되고 말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천국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이 우리가 주님의 그 귀한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인간들이 뭘 해서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우해서 고난을 당할 때 우리를 그런 영광에 동참하는 자로 인정을 해 주신다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을 외치는 교회를 위해서 더 희생하고 더 헌신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의 기쁨을 생각하라.
본문 13절 하반절 말씀에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위해서 이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당할 때 물론 이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즐거워할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은 우리 주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그 날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받을 칭찬과 상급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 때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춤을 출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그 일을 생각하면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기는커녕 오히려 믿음을 이용해서 잘 먹고 잘 산 사람들이 슬피 울며 가슴을 칠 때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 우리 성도들은 정말로 즐거워하면서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기뻐하다는 단어는 헬라어에서는 너무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극도의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극명한 대조를 통해 고난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훨씬 큰 것임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날의 기쁨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고난들을 다 합하고 거기에 몇 수십 수백 곱을 해도 비교가 되지 않는 너무나 크고 너무나 좋은 참된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 때문에 받는 고난은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고 천국에서 받을 상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도 하늘의 상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좋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5,26).라고 했습니다.
고난이 천국을 준비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면 고난은 분명히 축복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준비하게 만듭니다.
안일과 평안은 지옥을 준비하게 하고 고난과 수고는 천국을 준비하게 합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은 축복입니다.
그 고난은 우리에게 있어서 큰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사십니까?
왜 이런 일을 당하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님을 위해 당하는 희생과 헌신과 고난은 더욱 귀한 것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영광으로 오시는 그 날에 큰 위로와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 벧전 4:12-13
제목 :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에 관한 것입니다.
불 시험은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시련이 불같이 뜨거울 것을 상징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육신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으셨다고 했습니다.
흙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흙 속에는 온갖 물질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흙속엔 금, 철, 망간, 규소, 인, 텅스텐, 우라늄……. 이런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흙을 가만히 두면 이런 귀한 것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각 제련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부분은 불로 뜨겁게 태워서 불순물들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금이라도 순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높은 온도로 금 속에 섞여 있는 불순물들을 태워버려야 순수한 금이 됩니다.
철이라도 강한 강철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불로 태우고 망치로 내려쳐서 연단을 시켜야 강한 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셔서 이 세상에 보내주셨지만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강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연단의 과정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와 같은 방법으로 훈련을 시켜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거쳤음을 우리가 압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일꾼들 또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불 시험과 같은 연단의 과정을 거쳐서 그런 인물들이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불 시험을 당할 때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오고 우리 주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다시 오실 때 그 때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춤을 추기 위해서는 이런 불 시험과 같은 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앞에 다가오는 불 시험들을, 혹독한 훈련들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기쁘게 받으셔서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여러분의 믿음이 정금같이 되어서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오늘 본문 12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교회에 다니면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고 평안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어려움도 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겪게 됩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 이상한 일이 생긴 것처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이런 어려운 일들은 우리를 단련시키는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게 하는 것임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녀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바랍니다.
조금도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부모님들이 뭐든지 쉽게 해결을 해 줘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안하게 자라고 쉽게 문제를 해결해 버리고 자란 아이는 강해질 수가 없습니다.
나약한 모습으로 평생을 살게 하고 무슨 일이 있든지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훌륭하게 성장한 운동선수를 보십시오.
그들은 엄청난 훈련을 소화해 낸 사람들입니다.
훈련을 잘 받고 잘 견딘 사람은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이고.
훈련을 게을리 한 사람은 중간에 탈락되고 맙니다.
열심히 훈련을 하여 국가대표선수가 된 후에도 훈련을 게을리 하면 도중에 탈락을 시킵니다.
아이들 공부를 시켜 봐도 힘들어도 열심히 끝까지 노력을 하는 아이는 실력이 올라가고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늘 노는 아이는 실력이 떨어집니다.
아이들 공부 잘 하게 하려면 인내심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공부는 히프로 한다는 말입니다.
꾸준히 책상에 앉아 있으면 그래도 좀 낫습니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싸우고 맞고 오면 금방 달려가서 복수해 주고 그러지 마세요.
또 그런 아이들하고 놀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과 싸우고 경쟁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스스로 해결을 하고 그런 가운데 자기 위치를 스스로 차지하고 그래야 힘 있는 아이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면서 일부러 자녀들을 힘든 일을 찾아가서 하게하고 스스로 자신을 개척하도록 했습니다.
온실에서 자란 식물이 밖에 나와서 살지 못하듯이 온실처럼 따뜻한 데서 자란 아이는 세상에 나가서 살기가 어렵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성도들을 따뜻한 온실에서 키우지 않으십니다.
우리 생각 같으면 하나님은 뭐든지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고 또 없는 것이 없는 풍족한 분이시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뭐든지 다 주시고 우리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다 해결해 주시고 그래도 되실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강하게 해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그 믿음을 받은 우리가 그 믿음을 강하게 키워나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같은 믿음을 선물로 받았는데도 엄청 강하게 사용을 하고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를 정도로 약하게 사용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훈련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연단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이렇게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믿음도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 기도하면 다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님께 충성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 여러 가지의 믿음이 있습니다.
다 소중한 믿음이지만 오늘 본문 말씀이 요구하는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믿는 그 믿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믿음을 다 가지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고, 이 믿음이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하는 하나님의 새 언약이고, 이 믿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많은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고난도 당해야 하고 어려움도 겪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정도로 비참한 사람이 되어보아야 합니다.
실패와 좌절도 당해보고 손가락질 받고 비난을 당하고 세상에 의지할 데가 없어서 눈물을 흘려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막다른 골목에서서 하나님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험도 통과를 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이상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가 가진 믿음이 강한 믿음이 되게 하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을 받을 도구가 되어 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오히려 즐거워하라.
본문 13절 말씀에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당하는 고난이고 하나는 예수님 잘 믿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가 잘못을 해서 고난을 당할 때도 그 고난을 통하여 더 유익한 것을 얻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우리가 뭘 잘못해서 고난을 당하면 잘 됐다고 비웃기나 하고 동정의 눈길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오히려 그런 어려움들을 통하여 더 좋은 일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그것이 우리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난이라고 할지라도 이왕 그렇게 된 것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을 당한다면 즉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은 당하면 당할수록 더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들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시민권도 빼앗기고 살고 있던 터전도 재산도 다 빼앗기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담보로 해야 하는 극심한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예배드리다가 잡혀가면 그날부로 사형을 당하기도 하고 삶의 것을 포기할 각오로 모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하고 그 질이 달랐습니다.
그 각오가 달랐고 자세가 달랐습니다.
오직 믿음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고난을 감수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그 때에 비하면 교인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의 희생도 헌신도 없이 외려 복을 받아서 좀 편안하게 살아보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라도 붙잡고 있어보려고 교회는 온갖 감언이설로 헛된 약속들만을 늘어놓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세상에서 잘 된다 복 받는다.
출세도 하고 돈도 벌고 만사가 형통해 진다.
별별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고 교회에 온 사람들로 가득해서 고난이나 희생이나 헌신이나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들을 잘 읽어보고 진리를 깨달아 보면 예수님 믿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그것이 기뻐할 일이 아니고 즐거워할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잘 하려다가 고난을 당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고 예수님 섬기면서 살려고 하다고 손해를 보고 예수님의 성품을 따라 하다고 손해를 보고 그래야 진짜 성도요 그래야 진자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16년 동안에 세상의 교회들처럼 세상에서 복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예수축복을 외쳤다고 하면 저도 지금처럼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머리 좀 굴리고 대강 거짓말로 속이고 헛소리 좀 했다면 모르긴 해도 남들처럼 큰 교회 짓고 많은 사람들 모이게 하고 좋은 차타고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 외치다가 보니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외롭게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성도들도 십년이 넘도록 충성을 해도 부자도 못되고 이렇게 어렵게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이런 노선을 바꿀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너무나도 분명한 진리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시찰교회 설립예배에 축사를 하러 참석을 해서 그만 고함을 지르고 오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의 축복만을 강조하는 무늬만의 교회라고 한다면 천개가 생기고 만개가 생긴다고 무슨 축하할 일이 있겠습니까?
교회가 없어서 교회를 세웁니까?
참된 진리를 전하는 교회가 될 것을 믿고 축하합니다. 라고 강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말 한다고 누구하나 아 그래야 되겠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겠습니다.
그런 말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천국을 외면하고 세상을 향한 세상을 위한 세상의 교회들이 되고 말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천국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이 우리가 주님의 그 귀한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인간들이 뭘 해서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우해서 고난을 당할 때 우리를 그런 영광에 동참하는 자로 인정을 해 주신다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을 외치는 교회를 위해서 더 희생하고 더 헌신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의 기쁨을 생각하라.
본문 13절 하반절 말씀에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위해서 이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당할 때 물론 이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즐거워할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은 우리 주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그 날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받을 칭찬과 상급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 때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춤을 출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그 일을 생각하면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기는커녕 오히려 믿음을 이용해서 잘 먹고 잘 산 사람들이 슬피 울며 가슴을 칠 때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 우리 성도들은 정말로 즐거워하면서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기뻐하다는 단어는 헬라어에서는 너무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극도의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극명한 대조를 통해 고난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훨씬 큰 것임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날의 기쁨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고난들을 다 합하고 거기에 몇 수십 수백 곱을 해도 비교가 되지 않는 너무나 크고 너무나 좋은 참된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 때문에 받는 고난은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고 천국에서 받을 상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도 하늘의 상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좋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5,26).라고 했습니다.
고난이 천국을 준비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면 고난은 분명히 축복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준비하게 만듭니다.
안일과 평안은 지옥을 준비하게 하고 고난과 수고는 천국을 준비하게 합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은 축복입니다.
그 고난은 우리에게 있어서 큰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사십니까?
왜 이런 일을 당하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님을 위해 당하는 희생과 헌신과 고난은 더욱 귀한 것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영광으로 오시는 그 날에 큰 위로와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