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지혜로운가?
다니엘 2장 17-23절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
다니엘서의 큰 주제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입니다. 즉 모든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따라서 모든 역사를 계획하시고, 진행하시고, 성취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모든 역사를 통해서 오직 당신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롬11:36).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많은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 많은 일들 가운데 때로는 우리가 이해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기에 우리는 그 사건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실례로 지금 저 중근동의 나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상자와 사망자를 포함하면 2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일은 왜 일어났을까요? 저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일까요? 저들 가운데에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택하신 자들은 없었을까요? 왜 하나님은 저 어린아이들까지도 참담한 일을 겪게 하셨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당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원망하기도 합니다. 불평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먼 곳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지는 심정은 답답함뿐입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성경에서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지구상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7절에서 예수님도 말세에 나타날 징조 가운데 하나로 지진을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모든 역사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큰 뜻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다니엘 2장은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하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지난 주일에 살펴본 말씀을 기초로 해서 오늘의 말씀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은 유다의 역사뿐만 아니라, 바벨론의 역사도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비록 포로로 잡혀 온 사람일지라도,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그들을 지켜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과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바벨론의 그 큰 권력을 가진 자들과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유다라고 하는 작은 나라에서 잡혀 온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인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그에게 다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지혜를 주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심은 다니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를 죽음에서 건지시고자 하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드러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지난주 우리가 살펴본 1장에서 다니엘과 그 세 친구가 바벨론에서 신앙의 순결을 지켰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역사의 주인이 되시고 자기 사람을 붙드셨습니다. 또한 여호와를 향한 믿음을 지킨 자들을 높이시고, 특히 다니엘에게 뛰어난 환상과 꿈을 깨달아 해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그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이 시간 『누가 더 지혜로운가?』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본문 1절에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참으로 답답함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꿈을 꾸었다는 것과 그 꿈이 비상한 것이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꿈의 내용과 의미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마음이 번민하여”라고 한 것은 지금 느부갓네살의 마음이 얼마나 어지러운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의 “마음”은 ‘그의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느부갓네살은 그 꿈으로 인해 단순히 마음이 복잡한 정도가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떨리고 있습니다. 그의 심령은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은 날이 밝자마자 나라 안에 있는 지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본문 2절에 등장하는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는 당시 바벨론 제국에서 정치와 종교,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으로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이었습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이들은 천문을 연구하여 우주의 움직임을 예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당대 즉 B.C.500년경, 바벨론의 점성술사였던 나부리만누라고 하는 사람은 지구의 1년이 365일 6시간 15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들의 과학적인 지식은 당대의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과 지혜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느부갓네살 왕이 꾼 그 꿈과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저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왕께서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라는 것뿐이었습니다(4절). 그리고 이러한 저들의 요청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당대 저 지혜자들은 꿈을 해석하는 일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꿈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 해석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왕은 꿈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 자신도 그 꿈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 꾼 꿈의 내용을 어찌 알 수가 있겠습니까? 꿈을 꾼 왕도, 그 꿈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저 지혜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당대에 종교적이든 과학적이든 지혜로는 최고라고 여기는 자들이 왕의 황당한 요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왕은 자신의 요구에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면 저들 모두를 죽이고 진멸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습니다(5절). 하지만 자신의 요구에 정확한 답을 주는 자에게는 엄청난 보상을 주겠다는 약속도 있습니다(6절).
왕의 의지는 분명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신이 꾼 꿈과 그 해석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세상에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지혜자들은 왕에게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한 사람도 없으므로 어떤 크고 권력 있는 왕이라도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인들에게 물은 자가 없었나이다 왕께서 물으신 것은 어려운 일이라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0-11절).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시겠습니까? 위대한 권력자, 곧 우리의 생명까지도 주관할 수 있는 권력자가 여러분에게 이러한 요구를 했다고 할 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아마도 난감할 것입니다. 답답할 것입니다. 문제는 분명 있는데, 그 해답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니 그 해답을 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분명 본문의 사건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나중에 다니엘은 왕에게 “왕이여 왕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라고 말합니다(29절). 아마도 이 때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왕국과 미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왕위에 오른 지 2년밖에 안 되었기에, 미래에 대한 그의 궁금증은 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왕에게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 장차 일어날 역사에 대해서 꿈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왕이 어찌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를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알려주셔도 그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 그러합니다. 오늘의 세상은 내일의 일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점도 쳐봅니다. 우상에게 가서 절도 합니다. 과학의 힘을 빌려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확할까요? 그렇게 해서 자신의 미래를 알 수가 있을까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준비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세상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설령 미래의 일을 알려주신다 할지라도 저 세상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위대한 역사,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속의 역사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사실이 온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도 변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 세상은 하나님의 이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지혜로, 자신들의 방법으로 발견하려고 합니다. 과연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하는 진리를 저 세상이 알 수가 있을까요? 오늘 느부갓네살과 저 바벨론의 지혜자들의 모습이 이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Ⅱ.하나님의 사람은 다릅니다,
자신의 요구에 대해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지혜자들을 향한 분노로 인하여 그들을 모두 죽이라고 하는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바벨론 제국의 권력자들, 특히 지혜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운명이 죽음이라고 하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자들 가운데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이는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바벨론의 권력자들 사이에 서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순결을 지킨 저들을 하나님이 높이셨고,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보다 뛰어난 자리에 서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단1:20).
모든 사람이 죽음의 위기 앞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다니엘이 나서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왕의 명령을 시행하는 왕의 근위대장에게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라고 물었습니다(15절). 사실 지금 다니엘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큰 문제의 상황에서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니엘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1장에서 본대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심을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도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분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질문에 근위대장은 왕 앞에서 일어났던 상황과 왕의 명령을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사실 다니엘이 지금의 상황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완전하게는 아닐지라도 충분한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담대하게 근위대장에 물었고, 근위대장은 다니엘에게 설명했습니다. 아마도 근위대장도 다니엘의 뛰어난 지혜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근위대장의 임무는 다니엘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니엘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것도 분명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붙잡으셨고, 그에게 다니엘을 향하여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결국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 앞에 들어가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16절).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왕에게 말미를 청한 다니엘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7~18절에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먼저 한 일은 그 친구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기도하기를 청했습니다. 여기에서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 제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느부갓네살 왕이 꾼 그 은밀한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먼저 다니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표현은 성경에서 포로기 이후에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당시 바벨론 사람들이 섬겼던 하늘이나 별들보다 훨씬 높이 계신 우주적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바로 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는 하나님만이 지금 기도하는 자들과 기도하는 내용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만이 그 모는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권능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세상의 신들이라고 주장하는 존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십니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분만이 그 꿈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가장 은밀한 것까지라도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그 꿈을 알려주시고, 그 꿈의 해석까지도 알려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포함한 지혜자들의 목숨이 보전되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자신들의 목숨만 구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지만,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이 바벨론 왕의 분노에 의한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비록 저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유다 민족의 원수일 수 있습니다. 유다를 멸망시키는데 있어 앞선 자들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들의 멸망은 민족의 원수를 갚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저들까지도 왕의 부당한 진노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답답한 일을 만날 때 어떻게 합니까? 많은 사람은 그 문제에 파묻혀서 고민합니다. 온갖 생각을 다 끄집어내서 그 출구를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이 실패하면 화를 냅니다.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의 분노를 쏟아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저들의 하는 말과 달라야 합니다. 저들이 보이는 행동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 앞에서 우리의 달리 대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저들과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시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보는 눈이 아닌 우리 믿음의 눈으로 이 시대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라고 하는 벽보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도 가지고 계십니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 문제를 가지고 당신 앞에 나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당신께 맡길 때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든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맡길 때, 하나님은 드디어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십니다.
Ⅲ.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셨습니다. 본문 19절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은밀한 것”은 분명 느부갓네살의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즉 바벨론의 왕인 느부갓네살도, 당시의 최고 지혜자라고 자부하는 바벨론의 저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들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였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그 은밀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다니엘이 환상으로 본 것은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꿈에서 본 내용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아니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이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내용, 다니엘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서 본 내용은 바로 장차 일어난 나라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본문 31절부터 35절의 내용은 바로 그 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36절에서 45절까지는 왕이 꾼 그 꿈에 대한 해석입니다. 즉 이 꿈은 한 큰 신상의 모습에 관한 것인데, 지금의 바벨론과 이후에 일어날 제국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첫 번째 부분은 금으로 된 머리로, 느부갓네살을 중심으로 하는 바벨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은으로 된 가슴과 두 팔의 부분으로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내용입니다. 세 번째 부분은 놋으로 이루어진 배와 넓적다리 부분으로 헬라 제국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부분은 쇠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종아리와 발 부분으로 로마 제국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신상이 어느 제국을 가리키고 있는가에 집중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붙잡고자 하는 것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집중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모습은 아무리 강력하고 위대한 제국이 등장한다 할지라도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분명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라고 말했습니다. 즉 아무리 바벨론 제국이 강하고, 느부갓네살이 강하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늘의 하나님, 즉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이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아무리 강하고 뛰어나도, 페르시아의 고레스라 할지라도, 헬라의 알렉산더라 할지라도, 로마의 그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황제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 모든 제국이 등장하게 하시고, 또한 그 제국들이 사라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제국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사용되게 하십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가장 강조되고 가장 중심이 되는 한 사실에 우리가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본문 34-35절에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은 본문 44-45절에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 꿈으로 보여주신 내용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제국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가 진행되는 중에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는 나라로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오히려 이 나라는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정복할 것이고, 온 땅을 뒤덮을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워지고 통치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손대지 아니한 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즉 신적 기원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구속의 역사, 그리고 이 역사를 진행해 나가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영원하시고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세력에 매인 세상 왕국을 무너뜨리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 어떤 대적에게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정복하고 승리의 영광으로 뒤덮으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세계역사의 중심에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History)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동안만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폐하시면 언제든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 나라는 이 땅에서 교회를 통해서 전개되고, 장차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우리 성도들은 그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힘이 들고 답답한 상황을 만날지라도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믿고 담대하게 맞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성도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자신들이 지혜로운 줄 압니다. 하지만 저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알려주어도, 아무리 보여주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 계시면서 우리가 깨닫게 하십니다. 믿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앞에 담대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 앞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니엘처럼, 그리고 심지어 느부갓네살처럼 말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 지혜 안에서, 참된 지혜자로 살아감으로 인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만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