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37)
본문 : 막 9:38-42
제목 :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38.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전쟁에 나간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일일 것입니다. 적군이 누구인 줄 알고 총을 쏴야지 그것이 구별이 안 되어서 아군에다가 총을 겨누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 편이 누구인지 적군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판단하고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적군과 아군의 구별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이고 이 세상은 사탄의 편이라는 아주 엄격한 구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뚜렷이 구별되는 것도 있지만 구별을 하기 어려운 것들도 더러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선생이나 이단들은 양을 탈을 쓴 이리이기 때문에 겉으로 봐서는 잘 모릅니다. 오히려 가짜가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하고 가짜들이 인간적으로 더 잘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아군과 적군을 구별해 놓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해서 어떤 사람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1절 말씀에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라는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엄청난 상을 잃어버리지 않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애매한 사람들
본문 38절에서 40절에 “38.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애매하다는 말을 잘 안 쓰셔서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 봐 간단하게 설명하면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 애매하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지 그냥 엉뚱한 것을 믿는지 애매하고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인지 아닌지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그 애매한 사람의 이야기가 38절에서 4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 보고를 드립니다.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금지시켰습니다. 라고 보고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본문이 설명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자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귀신이 쫓겨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귀신을 정확하게 쫓아내었는지 쫓아내려고 시도만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어쩌다가 약한 귀신이 예수님의 이름만 듣고도 겁에 질려 나갔는지 자세하게는 모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주 악한 귀신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도 따르지도 않던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이 좀 이상한 일이기는 합니다.
오늘날도 그와 비슷한 일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가 봤을 때 분명히 이단이고 거짓 선생인데 그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병든 자도 고친다고 주장합니다. 노골적으로 거짓 환자를 만들어서 기도해서 고친 것처럼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때로는 병든 사람이 기도 받고 나았다고 간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진리를 바로 알고 복음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 흔한 감기 하나 기도로 못 고칩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좀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한의 보고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귀신 쫓아낸다고 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다고 하면서 돌아서서 예수님을 비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기들 이익이나 챙기는 것은 좀 얄미운 짓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나쁘다고 비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깨달으면 진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질 것이고 그것이 안 되면 가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애매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다는 사람 중에도 이런 애매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졌는지 믿지도 않으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만 하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 편에서나 우리 편에서 보면 그들이 우리를 비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두지만 본인들은 참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목적은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을 행하고 기적을 행한다고 해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세상은 다 예수님을 반대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셨다는 것을 다 반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대로 예수님을 반대했고 로마인들은 로마인대로 예수님을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었기 때문에 반대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가졌던 성전이나 제사 제도나 제사장이나 장로나 서기관과 같은 직책들이 주는 혜택들을 버릴 수가 없어서 십자가의 복음은 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고 반대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로마인이나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이 참 미련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철학적으로 볼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에 반대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반대하지만 않아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반대하지 않은 사람은 속으로는 복음을 찬성하는 사람이고 복음을 위하는 자들의 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애매한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반대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하지 않은 마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은 더 높을 것이지만 그것으로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주로 집안의 아버지들이 자신은 교회에 안 나가지만 아내나 자녀들이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교회에 안 가지만 자녀들에게는 교회에 가라고 깨우고 준비시켜주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속으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안 나가도 식구들을 나가게 허락했으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천국이 있으면 집사람이나 아이들 꽁무니 붙잡고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예 몰랐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예수님을 알고 교회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반대만 안 하고 있다가 불행한 일을 당하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가족들 편에서 반대를 안 하니까 좋지만 자신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결코 상을 잃지 않을 사람
본문 41절에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있고 또 한 사람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 줄 알고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 중에 주인공은 누구이겠습니까? 당연히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인 줄 알고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을 칭찬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란 말에는 많은 뜻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고 성령님께서 그 속에 내주 동거하시는 사람이고 진리를 알고 복음을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입니다. 사탄의 종에서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한 사람이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사람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남에게 물이라도 얻어먹어야 할 불쌍한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그 사람 속에 있는 신분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정말 고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면서 철저하게 그 소속이 어디인가를 가지고 다스리십니다. 세상에는 엄격하게 구별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종이라는 뚜렷한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 종류의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대우하시면서 사랑으로 사랑으로 대우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의 종들에게는 공의로 대하십니다. 원수로 저주받을 사람으로 여기고 무섭게 대하십니다.
사람들은 공평한 것을 좋아하고 차별대우를 받는 것을 참 싫어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차별대우하는 분이심을 알면 세상 사람들은 난리가 날 것입니다. 왜 우리를 차별하느냐 공평하게 하라고 항의할 것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 하나님은 참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거기 단서조항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면 그때부터는 차별이 없으십니다.
여기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도 십중팔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스도도 모르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면서 그리스도인을 귀하게 보고 사랑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사람처럼 예수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반대는 하지 않지만 아직 그리스도롤 믿지는 않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교회에 안 다니면서도 교회가 좋은 일 한다고 건축헌금이나 구제헌금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의 상급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복을 받고 잘 삽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복 받고 행복하게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받는 복은 이중적인 복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든지 받게 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가 받을 가장 큰 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세상을 살아보면 가장 행복한 일이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서로에게 나누어주면서 사는 것이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물질을 주신 것도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도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나누고 살 사람을 보내주신 것도 복입니다. 이런 나눔의 삶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최악의 사람
본문 42절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 중에서 아주 작은 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 중에서도 연약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가난하고 도움받을 길이 없는 불쌍한 사람도 있고 영적으로도 믿음이 아직 굳게 자라지 못해서 흔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볼 때 영적으로 육적으로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연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사람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하거나 믿음을 배반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연자맷돌을 목에 매여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연자맷돌은 사람이 돌리는 맷돌보다 아주 큰 맷돌로 나귀가 돌리는 맷돌을 말합니다. 그 맷돌을 목에다 걸고 바다에 던짐을 받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복음을 전해서 교회에 온 사람을 오히려 지옥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은 엄청난 죄악입니다. 그런데 자기 명예를 위해서 돈을 위해서 이런 엄청난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우리도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해서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상처로 인해서 교회를 떠날 수도 있고 믿음을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해서 성도들의 믿음이 강해지게 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확신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는 애매한 사람이 있고 결코 상을 잃지 않을 사람도 있습니다. 연자멧돌을 목에 걸어서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은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애매한 자리에 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확실하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더 나은 불행한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되고 그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상도 크지만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아서 보람된 일 선한 일 많이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