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0.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27)
본문 : 막 7:24-30
제목 :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4.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는 제목이 붙은 마가복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왜 마가복음을 시작하면서 책 제목을 이렇게 쓰고 시작했는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여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믿음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킬 필요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급히 예수님의 생애를 잘 알고 있는 마가를 불러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는 책을 쓰게 하였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보내기 위해서 이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늘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할 것은 이 제목을 생각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며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복음이 이 책의 주제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날 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기적들이 주로 악한 귀신이 들렸거나 불치의 병에 걸렸거나 죽어야 하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이런 어려움에서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가 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입니다. 누가 교회에 가지 못하게 박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마음대로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점점 변질되어서 바른 믿음을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장삿속을 가진 거짓 선생들이 많이 침투해 있고 사기꾼 같은 이단들이 많이 침투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성경을 가지고 교묘하게 자기들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구별하기가 참 힘듭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을 잘 몰라도 예수님을 바르게 믿으면 되겠지만 진리를 잘 모르고 믿는 믿음은 흔들리기가 쉽습니다.
성경을 볼 때 설교를 들을 때 성경 전체의 핵심이 무엇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보는 본문이 성경의 핵심의 어떤 부분을 말씀하는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도 그 의미를 잘 살펴보시고 여러분이 가진 진짜 믿음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한 이방 여인이 악한 귀신이 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께 와서 간청하여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따라 오늘 설교 제목은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입니다. 여인을 무시하는 듯한 예수님의 태도에 대한 여인의 대답입니다. 이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믿음이 있음을 보셨고 그 믿음을 통해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게 해주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본문 24절에서 2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4.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 이방인의 지방으로 가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거기를 떠나서 두로 지방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거기’는 최근에 예수님께서 계시던 갈릴리 지방을 말하는 것이고 두로 지방은 이방인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에 계시다가 이제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율법을 가지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분명히 기독교는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교에서 나왔습니다. 유대교에서 나왔다는 표현보다는 유대교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기독교는 율법을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기독교는 유대인을 포함하여 모든 세상 사람들, 이방인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문화와 생활 환경이 다른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동안 유대인들이 지켜왔던 율법이나 절기나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는 것을 필수사항으로 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방인 지역으로 가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방인 지역으로 오셔서 이방 여인의 딸을 고쳐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에게도 임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방인들도 당연히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백성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그것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믿음만 있어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2)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린 수로보니게 여인
25절에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라고 했습니다. 26절에는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은 ‘헬라인’이라고 했습니다. 헬라인은 그리스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만 신약성경에 나오는 헬라인은 유대인들이 자기 민족이 아닌 다른 이방인들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였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한 이방 여인이 유대인인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여인을 ‘가나안 여자’라고 했습니다. 수로보니게가 가나안에 속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이 이방인이었으며 그것도 유대인들과 원수 관계로 있던 가나안 원주민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여서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후손들이 가나안에 흉년이 들자 우선 먹고 살기 좋다고 애굽으로 가서 거기서 애굽사람의 종이 되어서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셔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시면서 가나안 원주민들은 다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여인의 조상이었습니다. 그 원수 같은 유대인을 찾아와서 그것도 그 발아래 엎드린 것은 그의 모든 자존심을 다 버리고 복종하는 자세로 임한 것입니다.
그런 민족적인 감정보다도 더 시급한 것이 무엇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귀신 그것도 더러운 귀신이 들려서 폐인이 되어가는 자신의 딸을 그대로 두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은 방법이 없어서 내버려 뒀지만 그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자신이 있는 데서 가까운 곳에 와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체면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은 유대인이고 자신은 이방 여인 그것도 원수로 생각하는 가나안 족속의 후손인데 과연 그분이 나를 만나주기나 하고 내 간청을 듣기라도 해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바짝 엎드려서 아주 간곡하게 청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 이방 여인과 같은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타락한 인간의 후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훼방하는 사탄을 섬기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속에도 귀신이 들어와서 귀신들린 사람으로 귀신이 시키는 대로 마음의 악한 탐욕을 따라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원수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우리 속에 있는 온갖 악한 것들 귀신, 죄, 타락한 습성들 그로 인한 심판에서 지옥형벌에서 구원해주신다는 기쁜 소식인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예수님을 만나야 할까요? 그 발 앞에 바짝 엎드리고 내가 흉악한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고 이 죄악에서 나를 구원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빳빳한 자세로 잘난 척하면서 교회에 옵니다. 갈급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간절히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누가 아쉬운 사람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건방지게 행동합니다.
우리가 흉악한 죄인이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이르는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이며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그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그 여인의 간절한 간구에 예수님은 냉정하셨습니다. 냉정하게 보이려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을 개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동안 유대인이 가졌던 이방인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방인은 개나 돼지 같은 짐승으로 보았던 유대인들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방 여인이 계속 간청할 수 있는 약간은 빌미를 남겨두셨습니다. 여기 나온 개란 야생의 사나운 들개가 아니라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용 강아지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개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지만 예수님은 약간 부드럽게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강아지를 말씀하심으로써 여인에게 간청할 수 있는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셨습니다.
그 여인에게 딸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떠보기 위함일 수도 있으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떠보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이런 시험을 아는 것처럼 끝까지 예수님께 매달렸고 간절하게 구했습니다. 딸을 고치기 위한 간절한 마음 예수님을 고쳐줄 수 있는 분으로 확실히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본문 28-30절에 “28.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라고 했습니다.
1) 자신을 개라고 낮춘 여인
이 여인은 예수님께 자신을 개라고 하신 말씀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은 개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지혜롭게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 부스러기 은혜라도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이렇게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다윗왕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다니다가 사울이 죽자 드디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울 왕이 원수 같은 사람이고 왕손인 그의 자손들은 다 죽여서 불씨를 없애버려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불러서 사울의 땅을 다 그에게 주고 다윗왕과 한 상에서 밥을 먹게 대우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무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와서 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삼하 9:8)라고 했습니다.
2) 그 여인의 말을 믿음으로 보신 예수님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그녀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실 것을 결정하시면서 “이 말을 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이 말을 했으니까 네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서는 그녀가 한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한 이 여인의 말을 들으시고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마15:28)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고백을 믿음으로 보셨습니다. 자신이 개 같은 죄인임을 인정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인인 자신에게도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믿는 것을 믿음으로 보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이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부른 호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마 15:2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주 다윗의 후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의 후손이란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 여인이 이미 예수님이 메시야가 되심을 고백하는 말이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부를 때 쓰는 말이며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부를 때도 쓰는 호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 다윗의 후손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나 부활이나 영생을 믿는 지금과 같은 이런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것을 믿었고 그리스도로서 구원자로서 비천한 자신에게도 그 은혜를 베푸실 줄을 믿었습니다.
오늘날의 믿음도 결국은 자신의 비천함을 알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알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데서 믿음이 시작합니다. 비록 나는 부족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3)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녀의 딸
30절에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딸이 침상에 누워 있는데 귀신이 나갔더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붙잡혀 있다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딸이 귀신에게서 구원을 받은 것은 그녀의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찾아가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녀를 개라고 했을 때 그 말씀이 옳다고 했고 개 같은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풀 줄 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이런 행동을 보시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녀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그녀의 딸을 귀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이방인이며 귀신 들린 딸을 둔 한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믿음 있는 말로 고백함으로 귀신에게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에게서 구원받게 해주심으로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보고 구원하시는 것을 보고 우리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개나 돼지같이 천한 사람으로 취급받은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늘 그 은혜에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