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14)
본문 : 막 4:1-9
제목 :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가르치실 때 비유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중에 씨 뿌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오늘 읽기는 9절까지만 읽었지만 20절까지 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관련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 9절까지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고 10절에서 12절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고 13절에서 20절까지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하여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무슨 뜻인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여러분의 믿음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처럼 무성해져서 결실을 맺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 종류의 땅에 떨어진 씨
먼저 여기 말씀하는 ‘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씨는 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의 씨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해석하시면서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4:14)라고 하셨습니다.
‘씨’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좀 더 자세하게 같은 비유를 기록한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천국 말씀’(마13:19)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단순히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며 하나님 나라 즉 영원한 천국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의 주제를 생각하면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우선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마태복음의 가리지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마 13:37)라고 하시면서 씨를 뿌리는 자가 인자 즉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넓게 볼 때 씨뿌리는 자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목회자나 선교사나 성도들이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이 씨 뿌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씨가 떨어진 네 종류의 땅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복음의 씨가 떨어지지만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에 따라서 결실을 하기도 하고 결실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1) 결실을 맺지 못하는 마음은 길 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본문 3-4절에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라고 했습니다.
원래 씨를 뿌리는 농부는 농사일을 잘 알기 때문에 씨를 일부러 길가에 뿌리지는 않습니다. 어쩌다가 실수로 씨가 길가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거기다가 뿌리지는 않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길가에서라도 싹이 나면 좋고 안 나면 그만이고 그런 마음으로 뿌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길가에 씨를 뿌렸는데 역시나 그 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 비유를 해석한 1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다고 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가 자라지 못하고 새가 와서 먹어버리는 것처럼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감동하지 못하고 사탄이 와서 그 복음을 빼앗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도 마음이 무정하고 딱딱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잘 사귀지도 못합니다. 믿음을 갖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아무리 좋은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복음을 모르고 믿음을 가지지도 못합니다.
2) 결실을 맺지 못하는 마음은 흙이 얕은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본문 5-6절 말씀에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했습니다.
길가가 아니고 밭은 밭인데 돌이 많아서 흙이 얕은 밭에 씨를 뿌렸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뿌리를 내리기는 하지만 돌밭이라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고 물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라죽더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뜻을 예수님께서 해석하시기를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16-17)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들을 때 좋은 말씀이라고 하면서 받아들입니다. 그 말씀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야 하는데 마음이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잠깐 감동을 받아서 믿는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신앙의 깊은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그냥 교회에만 왔다가 갔다가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를 당하면 바로 신앙을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좋을 때 잘 될 때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어려움이 있고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면 아주 쉽게 이렇게 엄청난 믿음을 포기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도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다 좋은 사람인 것 같고 다 내 편처럼 보이지만 어려움을 당하면 그 속이 드러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더 잘해주고 더 도와주려고 해야 하는 데 꼭 필요할 그 때에 사람들은 외면하고 떠납니다. 관계가 더 좋아질 수 있는 기회인데 관계가 단절되어 버립니다.
믿음도 어려움을 당하면 더 기도하고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더 강해지고 믿음 생활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당하면 더 교회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그래서 쉽게 믿음을 버립니다.
3) 결실을 맺지 못하는 마음은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입니다.
본문 7절 말씀에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라고 했습니다.
가시덤불이 있는 곳에 씨를 뿌렸더니 씨가 뿌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가시덤불도 같이 자라서 씨가 자라지 못하게 기운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결국 그 씨도 결실하지는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해석해주시기를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18-19)라고 했습니다.
가시덤불을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기타 욕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 결실을 하는데 방해되는 요소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은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사실 별것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는 복음을 믿기 보다는 이 세상에 어떻게 살까에 더 관심이 많아서 늘 그 일로 염려하면서 삽니다.
그런 사람은 재물이 유혹을 할 때 쉽게 넘어집니다. 돈이 하나님보다 더 가까워 보이고 돈이 더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믿음이고 뭐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믿음도 돈을 위해서 믿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기타 욕심이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돈에 대한 욕심 외에 여러 가지 욕심들이 있습니다. 식욕이나 성욕이나 명예욕이나 세상 쾌락에 관한 욕심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적당한 욕심은 삶에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이나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법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그 지나친 욕심 때문에 이렇게 좋은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4) 결실을 맺는 마음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입니다.
본문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좋은 땅이라고 했습니다. 길가와 같이 딱딱하지도 않고 돌밭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지도 않고 가시떨기처럼 기운을 가로막는 것도 없이 부드러운 옥토와 같은 땅을 말합니다. 이런 땅에 뿌려진 씨는 당연히 그 씨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잘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20절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해석하시기를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당연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결실하는 것처럼 좋은 마음에 떨어진 복음은 당연히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믿음을 통해서 주시는 엄청난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리나 밀 같은 씨도 좋은 땅에 뿌리기만 하면 최소한 30배 많게는 100배의 결실을 하고 중간쯤 가도 60배의 결실을 합니다. 엄청난 노력을 해서 그렇게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씨가 뿌려지면 자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도 너무나 귀하고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좋은 마음으로 복음만 들었다고 하면 자연히 엄청난 능력을 가진 믿음이 마음에 자라게 되고 엄청난 결실을 하게 됩니다.
내가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믿음이 자라기만 하면 엄청난 결실을 하게 되는데 그 믿음이 우리의 죄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여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됩니다.
믿음이 하나라고 하면 그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이 최소한 삼십 배이고 보통이면 육십 배이고 잘하면 백 배까지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복을 따지면 그렇게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본문 9절 말씀에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말씀하시고 덧붙여서 하시는 말씀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 즉 비유에서 말씀하신 좋은 땅과 같이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석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길가와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떨기가 있는 밭과 같으면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믿음을 가질 수 없고 결실을 하지 못하니까 이런 땅들을 갈아엎어서 좋은 땅과 같은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리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스스로 좋은 마음으로 바꿀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 중에는 복음을 들어도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정과 선택교리는 서신서를 통해서 많이 들어서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사람은 선택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사탄의 종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하여서 바꾸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여 사탄의 종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다 떠나고 예수님 혼자 계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더 확실하게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마13:10)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10절에서 12절에 더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비밀은 미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의 비밀입니다. 신비한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기는 다 같이 듣는데 어떤 사람은 알아듣고 어떤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한 비밀을 미스테리온이라고 합니다.
택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고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들어도 깨닫지 못해서 믿지 못하게 하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비유는 성도들에게는 우리가 잘 아는 이 세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지만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좋은 땅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듣고 그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믿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복음의 씨앗이 우리 마음에 자라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엄청난 혜택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주 특별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험한 세상을 살다가 보니까 우리의 마음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처럼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길가와 같이 딱딱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인 것들을 던져주어서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 돈의 유혹 지나친 욕심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믿음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택함을 받지 못한 불신자들이나 가지고 있는 그런 악한 마음들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정말로 올바른 복음의 씨를 여러분의 마음에 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혹시 제 복음의 설교가 여러분의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면 참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믿기는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좋은 마음 밭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걱정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그런 좋은 마음을 받은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나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마음을 짓밟아서 딱딱하게 만들고 불신앙적인 것들을 던져넣고 세상 욕심 세상 쾌락에 빠지게 하여 여러분의 좋은 밭을 망가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악한 유혹으로부터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특별히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신비한 비밀을 깨닫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혹시 악한 세상 사람들이나 가지는 악한 유혹들이 올 때 믿음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