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0.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 12)
본문 : 막 3:7-12
제목 :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7.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그냥 대강 적당히 인생의 의미도 모르고 보람된 일도 하지 못하고 그냥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뭔가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교회만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의 변화를 주셨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대강 적당히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반대로 믿음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살이나 신앙생활이나 바르고 보람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끝없이 공부하는 것입니다. 꼭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복음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어려서 들은 기초적인 신앙상식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초보에서부터 깊은 신앙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좋은 말씀들이 엄청나게 기록되어 있는데 깊이 있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 또 하나는 때로는 삶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타성에 젖게 되고 그러다가 조금씩 오히려 퇴보하기에 이릅니다.
교회의 역사도 가끔 타락의 길에서 교회를 개혁하여 바꾸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를 개혁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바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도 이미 없어졌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변화라는 말의 체인지(change)에서 g를 c로 바꾸면 기회라는 말의 찬스(chance)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개혁하려고 할 때 정말로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이 극한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통하여 새롭게 변화되고 그 역경을 찬스로 바꾸어야 합니다. 세계역사를 살펴보면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들이 다 이런 역경을 통과한 사람들이고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역경을 기회로 삼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교회가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점점 변질되어 왔는데 거기다가 코로나 19라는 엄청난 어려움을 만나게 되어서 그런 신앙마저도 빼앗겨버리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교회를 떠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알량한 형식적인 믿음마저 버리게 될지 모릅니다. 교회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사람들이 찬스라고 생각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이럴 때가 참된 신앙인에게는 오히려 믿음을 증명할 찬스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 신앙고백이 가짜가 아니고 진실한 고백이라는 것을 증명할 기회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성경을 더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더 잘 들으시고 반복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동안 좀 소홀하게 여겼던 신앙생활에 더 열심을 내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변화가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하는 찬스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냥 읽고 넘어가면 그 의미를 놓치기 쉬운 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엄청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각종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셨고 귀신도 다 쫓아내셨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동서남북에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신을 감추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경고하시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떠나시면서 그런 것이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아니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 목적입니다. 설교를 잘 들으시고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유대교적인 입장에서 떠나셨습니다.
본문 7절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나셨는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의 말씀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3장 1절에서 6절까지는 앞 시간에 살펴본 안식일에 관한 문제라서 그냥 지나쳤지만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그것이 율법에서 보면 안식일을 범한 일이라서 바리새인들에게 시빗거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일로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했고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회당을 나와서 바다로 물러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아무리 가르쳐봐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2장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사사건건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는 일을 비판하고 나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비판한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구약성경의 말씀들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음을 계속해서 지적했습니다. 죄 사함의 문제, 세리나 죄인들과 교제하고 식사하는 문제, 금식하지 않는 문제, 안식일을 어기는 문제에 대해서 시비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서 그런 일들을 수없이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구약의 그런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구약성경을 많이 배웠지만 그 핵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명이나 율법들을 주신 이유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꼭 알아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그때의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율법의 준수를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목적이 바르게 살고 좋은 일 하면서 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을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거나 율법은 아예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렇게 바르게 잘 살아도 의로운 사람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선한 일로 인하여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착각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선하고 좋은 일이 정말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길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서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아무리 토론해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기 이전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선은 그들을 떠나서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세상 축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서 떠나셨습니다.
본문 7절에서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오셔서 갈릴리 바닷가로 나오시자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이들도 대부분 유대인이었겠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잘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우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선 병에 걸려서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병을 고쳐서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정말로 구세주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온 사방에서 몰려 왔습니다.
여기 각 지방은 동서남북의 지방들입니다.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는 남쪽에 있었고 요단강 건너편은 동쪽지방이고 두로와 시돈은 북서쪽에 있었습니다. 동서남북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큰일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예수님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장에 가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그 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미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를 받거나 치료를 받지도 않고 무조건 만지기만 해도 되니까 그냥 예수님을 향해서 밀고 들어왔습니다.
이왕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고 또 거기 오셨으니까 또 몰려온 사람들이 다 병든 자요 불쌍한 사람들이니까 말씀 한마디만 하시든지 해서 다 고쳐주셨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거기서도 그들을 피해 가기 위해 제자들에게 작은 배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되심을 알리기 위해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병든 자를 고쳐주시려고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의 모든 병을 없애려고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죄로 인해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 세상에서 구원하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병든 자를 계속 고쳐주시면 사람들이 병만 고침을 받고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만 했지 영원한 천국에는 관심이 없고 죄 사함을 받는 데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떠나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이런 신유은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해서 병을 낫게 해준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따라 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런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기도하면 다 낫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유 은사는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슨 병이든지 다 고치셨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지 않아도 바로 즉시 나았습니다.
가끔은 믿음을 보시고 또 특별히 불쌍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다 고쳐주셨습니다. 믿음이 있거나 없거나 불쌍한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상관하시지 않으시고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유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은 조건을 많이 붙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라, 그동안 지은 죄를 회개해라, 확실히 낫겠다는 믿음을 가져라.... 그리고 헌금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입니다.
그런 것들이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그동안 잘못을 회개도 하고 믿음도 가지고 더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도 하고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셔서 병 고침도 받고 한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은혜를 잘 베푸시지 않는다는 것이며 사람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그런 특별한 은혜를 받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일 때문에 정말로 알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진짜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 고침을 받으려는 생각으로 몰려온 사람들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가시려고 했습니다. 병 고침을 맛본 사람들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바르게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급한 신비주의를 따르는 사람에게서도 떠나셨습니다.
본문 11절 12절에 “11.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몰려온 그 자리에 귀신 들린 사람들도 함께 와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예수님께서 귀신도 쫓아낸다는 소식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데리고 왔을 것입니다.
그것을 안 귀신이 미리 예수님께 아부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높이는 척합니다. 마치 귀신이 예수님과 한편인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귀신의 아부에 예수님께서 좋아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귀신이 인정한다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안 한다고 안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귀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조차 기분 나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귀신이 이런 말 하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이 귀신과 한편이라고 몰아세울 것을 아셨습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3장 22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공격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이와 비슷한 저급한 신비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영의 일을 빙자하여 마치 귀신처럼 행동하고 귀신의 사주를 받아서 하나님의 일처럼 꾸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한다고 하면서 귀신에게 점치는 것처럼 장래 일을 예언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저급한 신비주의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게 하는 일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에게 좀 어려운 신학적인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교회가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러분도 혹시 이런 잘못된 사람들을 따르게 될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위임받은 위임목사입니다. 여러분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도록 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더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광성교회에 오셔서 바른 믿음이 무엇인 줄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저의 임무이자 바램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외에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고 해도 천하만국을 준다고 해도 이 영원한 생명과 바꿀만한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 싫어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율법주의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을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저급한 신비주의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이것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오히려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영생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 믿음을 진실되게 고백하며 끝까지 지키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