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5. 광성교회 주일낮 맥추감사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감사1)
본문 : 시 136:11-13
제목 :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36편은 시편 중에 최고의 찬양 시이며 감사의 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최고의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크게 세 가지의 주제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제일 중요한 주제 세 가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신 분이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남편이나 아내 한 사람 잘 만나는 것도 참 중요하고 스승이나 담임목사 한 사람 잘 만나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섬겨야 할 하나님을 잘 만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요 영원한 우리의 운명에 관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탄을 신으로 섬긴다거나 짐승이나 물건들을 신으로 섬긴다거나 아주 나쁜 신을 만난다면 참 큰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시고 인자하신 너무나 좋은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우주 만물을 지혜로 창조해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5)
하늘과 땅 태양과 달 이 우주 만물을 아주 지혜롭게 창조해 주신 분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힘이 없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보통 선하고 인자합니다.
힘이 있고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선하지도 인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선하고 인자하시면서도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의 지혜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시고 모든 만물들 특별히 우리 모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또 영원한 운명까지도 좌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의 탈출을 구원으로 보았습니다.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고 기적적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힘든 광야를 지나서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이 많은 감사 가운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제목을 오늘 본문 13절 가운데서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라고 정했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 주신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고 우리를 종살이하던 이 세상의 악한 세력에서 영원한 죄와 멸망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구원받기 이전의 우리 모습을 살펴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3절에 보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 고향인 가나안 땅을 두고 애굽에서 살게 된 상황을 여러분을 아실 것입니다.
족장 야곱 시대에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요셉의 덕분으로 가나안을 떠나서 애굽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흉년이 지나고 어려움을 극복했으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세월이 흐른 후에도 애굽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애굽이 가나안 보다 살기가 좋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거기에 안주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나안 땅은 물이 없고 땅도 좁아서 살기가 어려운 반면에 애굽은 물이 풍족하고 땅도 넓고 그래서 먹을 것도 풍성하고 살기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정착을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의 학정에 못 이겨서 저 중국 만주 땅으로 피해가서 살았습니다.
해방이 되었으면 얼른 돌아와야 할 것인데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산 이유가 있었습니다.
만주 벌판이 너무 넓으니까 우리나라 좁은 땅에서 산골짝마다 텃밭을 만들어서 농사를 짓던 일을 생각하면 거기는 너무나 살기가 좋은 곳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허허벌판 넓은 땅을 두고 돌아오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 좋다고 그 애굽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살다가 보니까 결국에는 그들의 종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할 특별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온갖 우상 잡귀신들을 섬기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동화되고 나중에는 그들에게 종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에 관한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는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노예처럼 살아야 했고 나중에는 아들도 낳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죽여야만 했던 암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비천한 가운데 있는 그들을 기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을 때는 사람도 따르고 부탁하는 것 들어 주기도 하고 서로 잘 지내지만 막상 어려움을 당하고 비천해지면 알던 사람들도 교제를 끊고 혹시 뭐 부탁할까봐 피해가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더라는 것입니다.
제일 어려울 때 제일 비천해졌을 때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때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억해 주시고 알아주시고 제일 필요한 것을 주시고 제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구원의 한 모습입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시기는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사랑을 행하시는 원리가 구원을 행하시는 원리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과거에 구원 받기 이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비천함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기 이전에는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노예였습니다.
이 세상의 사탄의 종이요 죄의 종이요 죽음의 종이요 영원한 멸망의 종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탄을 섬기고 귀신을 섬기고 죄를 짓고 살았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그 죄악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사탄의 종으로 살면서도 자신이 종노릇하면서 사는지를 모르고 삽니다.
이 세상이 살기가 너무나 좋으니까 나는 자유인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사탄의 꾐에 넘어가서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사니까 나는 성공한 사람이야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라고 착각을 하고 살지만 실상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때는 그들이 종노릇 하고 사는 것을 몰랐지만 비참한 대우를 받게 될 때에 그들이 비로소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거기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애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만 산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착각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해 지니까, 우리가 아픔을 당하고 보니까, 우리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고 보니까, 우리가 병들고 보니까, 우리가 나이 들고 늙어 가니까, 이 세상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돌아봐주는 사람이 없고 나 스스로도 이 수렁을 헤쳐 나갈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고 우리를 그 죄의 수렁에서 사탄의 종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구원이 너무나 놀라운 기적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음이 감사입니다.
본문 13절에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보면 하나에서 열 가지 모두가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기적적인 초자연적인 방법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리고 마지막 재앙에서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장자들을 다 죽일 때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그 죽음의 사자가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더 놀라운 기적은 홍해를 가르신 것입니다.
뒤에는 변심한 애굽의 군대들이 무장을 하고 따라오고 있고 앞에는 넓은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60만 명 아이들과 여자들까지 합하면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무장한 애굽 군대를 피해서 이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니까 간단하게 바다를 갈라서 그 가운데로 길을 내고 무사히 탈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그 뜻을 잘 모르니까 이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믿지 못합니다.
아마 썰물시간 때 바닷물이 빠지니까 자연적으로 길이 생겼을 것이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닷가 얕은 곳 갈대밭으로 건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이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도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홍해를 가르신“이라고 할 때 가르다는 말은 가를 수 없는 것을 가를 때 쓰는 말입니다.
두부나 무를 갈랐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힘으로 도무지 가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랐을 때 쓰는 용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무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죄악에서 사탄의 세력에서 구원을 받은 것도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가능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탄의 세력이 얼마나 우리에게 집착을 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들이 순순히 우리들이 교회에 다니도록 놔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도 엄청 힘이 들었습니다.
모세가 우리 백성을 하나님을 섬기게 내보내 달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물이 다 피가 되게 하고, 개구리가 온 천지를 덮게 만들고, 티끌이 이가 되게 하고, 파리 떼를 보내서 온 세상이 파리로 들끓게 해도 절대 내보내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겨우 하는 말이 그러지 말고 광야로 나갈 필요가 있느냐 그냥 여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되지 않겠니? 하면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더 강하게 재앙을 내립니다.
가축이 죽게 하고 악성종기가 생기게 하고 우박을 내리고…….
그러니까 또 하는 말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갈 것이 있느냐 너희 장정들만 가서 제사를 드리고 오너라.
또 더 압력을 가하니까 그러면 짐승은 놔두고 사람만 가라 하면서 끝까지 놔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사탄의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완전히 놔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회만 갔다가 와라, 예배만 드리고 와라,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그저 형식적으로만 다녀라, 라고 하면서 우리를 완전히 놔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이 세상에 한 다리 걸쳐놓고 교회에 한 다리 걸치고 그렇게 삽니다.
여차하면 세상으로 돌아갈 것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얼른 바르게 깨닫고 확실하게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나를 기적적으로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3.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감사입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넜다고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야 길을 지나고 요단강을 건너야 비로소 하나님나라인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광야길이 일주일이면 통과할 수 있는 길이었지만 40년 동안을 돌아서 가야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낸 지도자 모세까지도 요단강 가까이에서 강 건너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했지 그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힘들다고 원망하고 불평을 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래도 애굽에 있을 때는 비록 종노릇을 해도 고기도 먹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는데 그런 것 먹을 수 없다고 원망을 했습니다.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 데리고 나와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9-11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시험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멸망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의 기록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고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기록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그와 비슷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가나안 땅이 아닌 광야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구원받기 이전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의 삶을 원망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어쩌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고생을 하고 사는가, 라고 원망이 나올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잘 되는 일도 없고 고통스러운 일만 만나게 되는가, 라고 원망이 나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 때문에 우리가 가나안 땅 즉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망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결국 이렇게 나그네 인생을 고생하면서 살다가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 요단강을 건너면 정말로 우리가 바라던 완전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죽음의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너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키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죽음의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너지 못하면 우리는 실패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소중함을 알고 죽음의 요단강 건너의 아름다운 나라를 알고 그 나라를 가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너게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일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강 건너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을 지혜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바르게 알고 감사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시 136:11-13
제목 :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36편은 시편 중에 최고의 찬양 시이며 감사의 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최고의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크게 세 가지의 주제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제일 중요한 주제 세 가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신 분이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남편이나 아내 한 사람 잘 만나는 것도 참 중요하고 스승이나 담임목사 한 사람 잘 만나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섬겨야 할 하나님을 잘 만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요 영원한 우리의 운명에 관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탄을 신으로 섬긴다거나 짐승이나 물건들을 신으로 섬긴다거나 아주 나쁜 신을 만난다면 참 큰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시고 인자하신 너무나 좋은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우주 만물을 지혜로 창조해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5)
하늘과 땅 태양과 달 이 우주 만물을 아주 지혜롭게 창조해 주신 분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힘이 없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보통 선하고 인자합니다.
힘이 있고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선하지도 인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선하고 인자하시면서도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의 지혜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시고 모든 만물들 특별히 우리 모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또 영원한 운명까지도 좌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의 탈출을 구원으로 보았습니다.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고 기적적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힘든 광야를 지나서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이 많은 감사 가운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제목을 오늘 본문 13절 가운데서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라고 정했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 주신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고 우리를 종살이하던 이 세상의 악한 세력에서 영원한 죄와 멸망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구원받기 이전의 우리 모습을 살펴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3절에 보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 고향인 가나안 땅을 두고 애굽에서 살게 된 상황을 여러분을 아실 것입니다.
족장 야곱 시대에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요셉의 덕분으로 가나안을 떠나서 애굽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흉년이 지나고 어려움을 극복했으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세월이 흐른 후에도 애굽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애굽이 가나안 보다 살기가 좋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거기에 안주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나안 땅은 물이 없고 땅도 좁아서 살기가 어려운 반면에 애굽은 물이 풍족하고 땅도 넓고 그래서 먹을 것도 풍성하고 살기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정착을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의 학정에 못 이겨서 저 중국 만주 땅으로 피해가서 살았습니다.
해방이 되었으면 얼른 돌아와야 할 것인데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산 이유가 있었습니다.
만주 벌판이 너무 넓으니까 우리나라 좁은 땅에서 산골짝마다 텃밭을 만들어서 농사를 짓던 일을 생각하면 거기는 너무나 살기가 좋은 곳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허허벌판 넓은 땅을 두고 돌아오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 좋다고 그 애굽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살다가 보니까 결국에는 그들의 종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할 특별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온갖 우상 잡귀신들을 섬기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동화되고 나중에는 그들에게 종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에 관한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는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노예처럼 살아야 했고 나중에는 아들도 낳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죽여야만 했던 암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비천한 가운데 있는 그들을 기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을 때는 사람도 따르고 부탁하는 것 들어 주기도 하고 서로 잘 지내지만 막상 어려움을 당하고 비천해지면 알던 사람들도 교제를 끊고 혹시 뭐 부탁할까봐 피해가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더라는 것입니다.
제일 어려울 때 제일 비천해졌을 때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때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억해 주시고 알아주시고 제일 필요한 것을 주시고 제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구원의 한 모습입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시기는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사랑을 행하시는 원리가 구원을 행하시는 원리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과거에 구원 받기 이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비천함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기 이전에는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노예였습니다.
이 세상의 사탄의 종이요 죄의 종이요 죽음의 종이요 영원한 멸망의 종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탄을 섬기고 귀신을 섬기고 죄를 짓고 살았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그 죄악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사탄의 종으로 살면서도 자신이 종노릇하면서 사는지를 모르고 삽니다.
이 세상이 살기가 너무나 좋으니까 나는 자유인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사탄의 꾐에 넘어가서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사니까 나는 성공한 사람이야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라고 착각을 하고 살지만 실상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때는 그들이 종노릇 하고 사는 것을 몰랐지만 비참한 대우를 받게 될 때에 그들이 비로소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거기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애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만 산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착각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해 지니까, 우리가 아픔을 당하고 보니까, 우리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고 보니까, 우리가 병들고 보니까, 우리가 나이 들고 늙어 가니까, 이 세상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돌아봐주는 사람이 없고 나 스스로도 이 수렁을 헤쳐 나갈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고 우리를 그 죄의 수렁에서 사탄의 종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구원이 너무나 놀라운 기적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음이 감사입니다.
본문 13절에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보면 하나에서 열 가지 모두가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기적적인 초자연적인 방법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리고 마지막 재앙에서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장자들을 다 죽일 때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그 죽음의 사자가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더 놀라운 기적은 홍해를 가르신 것입니다.
뒤에는 변심한 애굽의 군대들이 무장을 하고 따라오고 있고 앞에는 넓은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60만 명 아이들과 여자들까지 합하면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무장한 애굽 군대를 피해서 이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니까 간단하게 바다를 갈라서 그 가운데로 길을 내고 무사히 탈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그 뜻을 잘 모르니까 이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믿지 못합니다.
아마 썰물시간 때 바닷물이 빠지니까 자연적으로 길이 생겼을 것이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닷가 얕은 곳 갈대밭으로 건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이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도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홍해를 가르신“이라고 할 때 가르다는 말은 가를 수 없는 것을 가를 때 쓰는 말입니다.
두부나 무를 갈랐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힘으로 도무지 가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랐을 때 쓰는 용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무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죄악에서 사탄의 세력에서 구원을 받은 것도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가능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탄의 세력이 얼마나 우리에게 집착을 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들이 순순히 우리들이 교회에 다니도록 놔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도 엄청 힘이 들었습니다.
모세가 우리 백성을 하나님을 섬기게 내보내 달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물이 다 피가 되게 하고, 개구리가 온 천지를 덮게 만들고, 티끌이 이가 되게 하고, 파리 떼를 보내서 온 세상이 파리로 들끓게 해도 절대 내보내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겨우 하는 말이 그러지 말고 광야로 나갈 필요가 있느냐 그냥 여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되지 않겠니? 하면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더 강하게 재앙을 내립니다.
가축이 죽게 하고 악성종기가 생기게 하고 우박을 내리고…….
그러니까 또 하는 말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갈 것이 있느냐 너희 장정들만 가서 제사를 드리고 오너라.
또 더 압력을 가하니까 그러면 짐승은 놔두고 사람만 가라 하면서 끝까지 놔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사탄의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완전히 놔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회만 갔다가 와라, 예배만 드리고 와라,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그저 형식적으로만 다녀라, 라고 하면서 우리를 완전히 놔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이 세상에 한 다리 걸쳐놓고 교회에 한 다리 걸치고 그렇게 삽니다.
여차하면 세상으로 돌아갈 것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얼른 바르게 깨닫고 확실하게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나를 기적적으로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3.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감사입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넜다고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야 길을 지나고 요단강을 건너야 비로소 하나님나라인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광야길이 일주일이면 통과할 수 있는 길이었지만 40년 동안을 돌아서 가야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낸 지도자 모세까지도 요단강 가까이에서 강 건너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했지 그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힘들다고 원망하고 불평을 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래도 애굽에 있을 때는 비록 종노릇을 해도 고기도 먹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는데 그런 것 먹을 수 없다고 원망을 했습니다.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 데리고 나와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9-11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시험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멸망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의 기록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고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기록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그와 비슷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가나안 땅이 아닌 광야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구원받기 이전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의 삶을 원망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어쩌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고생을 하고 사는가, 라고 원망이 나올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잘 되는 일도 없고 고통스러운 일만 만나게 되는가, 라고 원망이 나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 때문에 우리가 가나안 땅 즉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망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결국 이렇게 나그네 인생을 고생하면서 살다가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 요단강을 건너면 정말로 우리가 바라던 완전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죽음의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너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키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죽음의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너지 못하면 우리는 실패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소중함을 알고 죽음의 요단강 건너의 아름다운 나라를 알고 그 나라를 가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너게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일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강 건너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을 지혜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바르게 알고 감사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