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 03)
본문 : 막 1:12-13
제목 :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심.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의 한 인간의 삶을 사시고 이제 요단강에 와서 그리스도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요단강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사탄의 소굴에서 탈출하여 다시 하나님 나라인 가나안 땅에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건넌 강이 이곳 요단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뜻깊은 장소인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인생들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살 수 있도록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셔야 했는데 그것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 시험 역시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또 신앙생활을 하면서 계속해서 사탄에게 받는 시험이기도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심”입니다. 사탄이 무엇으로 예수님을 시험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에게도 있을 사탄의 시험에도 대비하자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앞으로도 천국에 갈 때까지 사탄은 많은 것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기도 하고 시험을 할 것입니다. 그런 시험을 이기고 최후의 승리를 얻기까지 이 시험에 대비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사탄의 시험을 간단하게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관심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며 복음의 시작이 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만 간단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시험의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마태복음 4장에 기록된 내용을 가지고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첫 번째 시험을 마태복음 4장 1절에서 4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셨지만 성령님께서 특별하게 임해 계셨기 때문에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기도 하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유혹을 따라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사탄의 시험이자 유혹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여기 쓰인 ‘시험’이라는 단어는 시험 외에 시련이나 유혹으로도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냐 아니냐, 그리스도이시냐 아니냐를 시험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간접적으로는 그 시험을 통과하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험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류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사탄의 종이 되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가 당했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시험을 이기심으로 우리에게도 소망을 주시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신 것입니다. 이 시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교훈을 잘 살펴보시고 다시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승리하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한 유혹은 그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육신의 먹을 것을 위해서 사용해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한 믿음보다 육신의 생명을 위한 믿음을 가지라는 유혹이기도 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 사용해보라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일 많이 넘어간 것이 이 육신의 양식을 위한 유혹이었습니다. 우선은 먹고 살아야 하고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사탄은 이 먹을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제일 많이 유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시고 그곳으로 이주해서 민족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가뭄으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해서 먹을 양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먹을 것 때문에 몇 번이나 가나안 땅을 버리고 먹을 것이 풍부한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야곱 때에는 드디어 그 가족들이 흉년을 피해서 애굽으로 들어갔고 애굽에서 나오지 못하고 400년이나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가려고 할 때 그것이 사탄의 유혹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유혹에 넘어갔고 사탄의 종이 되고 사탄을 섬기는 애굽 사람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의 시험은 광야에서의 먹을 것 때문에 받는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내세우고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 광야 길에서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 물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런 것을 다 아시고 준비하고 계셨는데 문제는 먼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실 것인데 원망부터 합니다. 지금 그 힘든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서 자유인으로 살게 해주시기 위해서 잠깐 힘든 길을 가는데 그 은혜를 모르고 원망부터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험이고 사탄의 유혹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원망하고 불평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임을 당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먹을 것으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마침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라 먹을 것에 대한 유혹을 쉽게 이길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사탄의 유혹인 줄 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거기에 넘어가지 않으시고 유혹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라고 하시면서 그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가장 유혹을 많이 당하는 것이 이 의식주에 관한 것입니다. 의식주 문제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쉽게 기적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돈을 벌고 그것도 많은 돈을 벌어보려는 생각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대항하고 죄를 범한 이후에 그 벌로 반드시 죽어야 하고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일하지 않아도 온갖 과일들을 마음껏 먹고 영원토록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일하지 않고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도 영원토록 사는 생명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마에 땀을 흘려서 일해야 겨우 먹고 사는 힘든 세상을 볼 때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며 그 죄 사함을 받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죽어가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먹을 것 때문에 입을 것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쉽게 돈을 벌어보려고 그것도 엄청나게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삽니다.
이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육신을 살게 하는 양식보다는 영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대처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 주일을 지키고 예배에 참석합니다. 예배에 참석해서도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말씀이라고 할 때 막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때 원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과 오히려 반대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디모데 전후서를 통해서 배운 것처럼 말씀은 신구약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선 나온 교리가 바른 교리이고 진리입니다. 이 바른 교리는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알고 중요하게 여기고 바른 믿음으로 영원한 천국을 가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때 이 세상의 부귀영화로 유혹하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인이 이 시험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믿음을 영원한 천국이 아닌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한 믿음으로 바꾼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천국 가는 길을 방해하는 사탄의 유혹이라는 것을 모르고 세상의 먹을 것을 위해서 바른 믿음을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두 번째 시험을 마태복음 4장 5절에서 7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귀도 예수님처럼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유혹합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 91:11-12)라는 말씀을 가지고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주신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뛰어내려도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뛰어내리라는 말씀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탄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교묘히 중요한 부분을 빼고 인용해서 그 뜻을 바꾸어서 이야기합니다. 마태복음 4장의 인용구와 그 인용구 원본인 시편 91편을 비교해보면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중간에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라는 말을 뺐습니다.
이 말씀을 넣어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의인을 그의 모든 길에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빼면 아무 데서나 뛰어내리면 천사가 그 손으로 붙잡아 주신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탄이 보낸 이단들도 이런 수법을 씁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빼거나 보태서 그 뜻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용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해서 엉뚱한 길로 가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탄의 유혹을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물리칩니다. 이 말씀도 성경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신 6:16)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맛사’라는 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이야기는 출애굽기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하여 광야 생활을 할 때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장막을 쳤는데 그곳에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원망하면서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라고 했습니다.
그 원망을 듣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호렙산에 올라가서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게 했고 그곳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도 세상 살아갈 때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을 그렇게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 병만 잘 낫게 해주시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줄 믿겠습니다. 하나님 이번 시험만 합격시켜 주시면 정말 하나님을 잘 믿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정한다고 계시고 인정 안 한다고 안 계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의 이해나 생각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늘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세 번째 시험을 마태복음 4장 8절에서 1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세상의 영광을 위해서 사탄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 세상이 전부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자기가 그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속지 않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시면서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한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를 드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도리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는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사탄의 종이 되어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사탄은 그런 고난을 통한 구원을 하지 말고 그냥 간단하게 한번 절하고 이 세상을 차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는 이런 비슷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영원한 천국에서의 복락보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유혹합니다. 신앙생활도 고난이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보다 평안하게 좋은 일이나 하고 살라고 권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십자가의 고난이나 천국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고 이 세상에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잘 사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더 사랑함으로써 사탄에게 절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유혹이 올 때 예수님처럼 사정없이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천국에 가지 못하게 이 세상에 붙잡아 놓으려는 유혹이 올 때마다 사탄의 유혹인 줄 알고 담대하게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과거의 인간들처럼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이기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사탄의 유혹이 늘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달콤한 이야기라도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에 위배 되는 말은 사탄이 우리를 멸망에 빠지게 하려는 유혹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여 우상 숭배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