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종합5)

  본문 : 딤후 4:22

  제목 :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벌써 2021년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행복했습니까? 아니면 불행하셨습니까? 코로나 19 때문에 많이 불편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셨을 것입니다.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질문해서 몇 명이 행복하다고 대답을 하는가를 나타내는 지수를 말합니다. 해마다 UN에서 발표하는 인류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는데 세계 200개 국가 중에서 매년마다 상위권에 올라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이 늘 상위권에 올라가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중에 덴마크는 언제나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입니다. 왜 덴마크가 해마다 행복지수가 1등을 차지할까요? 우선은 복지제도가 참 잘돼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 자세가 그들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얀테의 법칙’(Jante Law)이라는 것이 있어서 언제나 자신들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얀테의 법칙은 덴마크 출신 악셀 산데모세가 쓴 소설(도망자는 궤도를 가로지른다)에 나오는 10개 조의 규칙입니다.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얀테라는 마을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 살기 위해서는 10가지 법칙을 지켜야 하는데 그것을 얀테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법칙은 덴마크뿐만 아니라 행복지수 상위에 있는 노르웨이 스웨덴 사람들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해서 그들이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열 가지로 되어 있는데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불행하다는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둘째,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셋째,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넷째,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자만하지 말라.

다섯째,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여섯째,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일곱째, 내가 무엇을 하든지 다 잘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말라.

여덟째,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아홉째,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열째,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

 

 다 성경 말씀에서 온 것들입니다. 성경은 교만하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시고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은 사람으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2:3)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삶의 원리로 해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까 바로 저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겸손한 척하고 살지만, 저 자신 속에는 이런 우월감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특별하고 좋은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세상적인 것이 아니고 신앙적인 면에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믿음에 대한 우월성 복음을 알고 진리를 아는 데 대한 자부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적인 우월감도 나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진리를 아는데 특별하고 똑똑하고 착한데 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까? 왜 내가 목회하는 교회가 부흥을 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좋은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저의 교만한 잘남보다는 그보다 못한 못난 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겸손한 마음을 가지니까 부족한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오늘 설교 제목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정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연히 이렇게 산 것도 아니고 내가 똑똑해서 이렇게 산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배운 디모데전후서는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칩니다. 디모데전서도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치고 디모데후서도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칩니다. 그것이 인사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오늘 본문에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 안에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함께 계셔야 하기 때문에 먼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마지막 인사이자 마지막 기도입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귀한 것이 주님께서 그 심령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로 마지막 기도로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 심령에 함께 하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라고 한 것은 디모데에게 육신적으로는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 일을 하는 이런 영적인 일에 주님께서 함께하셔서 더 열심을 내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은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신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을 가졌고 영혼은 영원한 세상을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이 둘을 서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것을 더 중심에 두고 사는가는 참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육신의 일에 더 중점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을 알지도 못하고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면서 육신을 위해서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 영적인 일에 더 중점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일보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에 가는 일에 더 중점을 두고 그를 위한 믿음이나 교회 생활에 더 중점을 두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도 세속화된 교회가 많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육신적인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도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잘 사는 일을 위해서 더 많이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보다 인간들끼리 서로서로 교제하고 사랑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삽니다.

 

 조금 타협적으로 사는 사람은 영혼이 잘되어야 하고 영혼이 잘 됨같이 모든 일이 다 잘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영혼도 잘 되고 육신의 일도 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은 영혼을 앞에 두고 기도하지만 뒤에 있는 범사에 잘 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도바울은 철저하게 이 영의 일과 육신의 일을 구분하는 사람입니다. 영이 잘 되고 육신도 잘 되는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영과 육은 서로 정 반대되는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로마서 8장에는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을 이렇게 분리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라고 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이 세상에서 육신이 잘 사는 일을 생각하고 영을 따르는 자는 영혼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7-8)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하겠지만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육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우선은 세상에서 육신이 잘되는 것이 좋고 육신의 생각대로 따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라고 말씀하시고 기도하신 이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비록 우리 몸은 죄로 인하여 죽게 되지만 영은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고 영원히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배운 대로 말세의 마지막이 되면 모두가 다 이 육신의 일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믿음 생활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 믿음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엄청나게 바보 같은 일입니다. 시간 바쳐서 돈 바쳐서 헌신하고 충성해봤자 육신적으로 얻을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때에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바란다는 기도는 정말로 중요한 기도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의 성도들이 세상을 사랑해서 믿음을 떠날 때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본문에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은혜란 값없이 대가 없이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일이 잘되면 자기가 잘해서 자기가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뭐가 잘 안 되면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세상일도 잘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이 잘 안되는 것은 다 우리의 죄악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잘 안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들 중에 온갖 죄를 지으면서도 잘 사는 사람은 그것이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1)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는 것을 그냥 우리는 우연히 어쩌다가 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이 세상에 태어나고 그 계획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하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고생한다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살기도 하고 부잣집에 태어나도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복한 삶을 살도록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사탄이 주는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2)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교회에 와 있으니까 우연히 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직 잘 모르고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결과를 안다면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서 교회에 다니게 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산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었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은 문이요 좁은 길이라고 했는데 그 길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만 그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에 선택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만 예수님을 믿게 되고 천국 백성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서 복음을 들을 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만 복음을 듣고 깨닫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잘 모르지만 여러분이 이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졌다면 여러분은 엄청난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우리에게 특별히 은혜로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믿음을 참 귀한 것입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처럼 어려움도 당하고 가난하고 힘들게 살 때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시려고 주신 것들이기 때문에 참 감사할 일입니다.

 

 늙고 병들어서 죽어갈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길이기 때문에 사실 감사할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절망의 길이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의 길이요 은혜의 길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커 보이고 더 큰 감사가 나옵니다.

 

3)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일을 하면서 삽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합니다. 그 많은 일 중에 가장 귀한 일이라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을 위해서 산 삶은 이 세상의 일로 끝납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은 영원히 상급으로 남게 됩니다.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는 것이 참 보람된 일입니다.

 

 무엇으로 그 은혜를 갚겠습니까만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감사로만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의 간곡한 마지막 소원이자 기도를 마음에 담고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계시기를 간곡하게 기도했습니다. 그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면 육신의 일보다 영의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하실 것입니다.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을 위해서 그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