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28)
본문 : 딤후 4:1-2
제목 :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1.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책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그 말씀의 주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엄히 명령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와 그 구원을 이 세상에 오셔서 완성하시고 또 마무리하실 예수님 앞에서 엄히 명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반드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앞에서 그것을 알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하신 명령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하게 하신 명령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명령대로 살려고 다짐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본문 1절 말씀에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 앞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이 말씀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또 앞서서 이야기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시는 말씀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엄청난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해주신 부분만 알 뿐입니다. 그것도 우리 인간의 한계로 인해서 완벽하게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일이나 인간 역사의 굵직굵직한 부분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기록하신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했는지 우리가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필요한 부분들만을 기록하셨습니다.
특별히 디모데전후서를 비롯한 바울 서신서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중심으로 기록한 교리 서신서입니다. 그런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라고 할 때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하나님 앞에서를 강조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받을 사람으로 선택을 하셔서 아주 간단하게 너무나 쉽게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 그 하나님 앞에서 이런 엄한 명령을 한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이름 앞에 “그리스도”를 붙인 것은 그리스도가 예수님의 직명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메시야이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주가 되시며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행하실 특별한 일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미 행하신 일이 아니라 앞으로 하시게 될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이미 행하신 일들을 보고 앞으로 행하실 일들도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나타나실 것과”라고 했는데 여기 나타나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이 세상에서 잘사는 일에 올인하지만 교회는 영원한 천국이 있는 것과 그 나라로 우리를 데리고 가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이 세상에서 복이나 받고 잘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천국이 있다고 믿기는 하지만 이 세상이 더 중요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는 하지만 은근히 안 오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 복음 천국 복음을 싫어하고 세상 축복을 더 좋아하면서 삽니다.
몇몇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 때문에 교회가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가르치던 이단들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면 이단처럼 외면당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확실하게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임을 강조합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자는 당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말하고 죽은 자는 당시 이미 죽어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도 가끔 공의로 심판을 하시기도 합니다. 너무 악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벌을 받게 하시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도 그 사람이 선한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 차원에서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을 말합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나 이미 죽은 사람들을 비롯해서 세상을 살게 될 모든 사람까지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죽고 난 다음에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심판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살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면서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다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심판주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셀 수도 없이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주로 이 세상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대상은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주로 최후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도 교회 안의 성도나 교회 밖에 이방인들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잘못했을 때 이방인들처럼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의 심판은 우리가 믿음을 떠날 때의 심판을 말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이미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 말세에 일어날 현상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최후의 심판을 세 가지의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열 처녀의 비유나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예수님의 심판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신랑을 맞으러 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열 명의 처녀 중에서 다섯 명은 정상적으로 등불에 기름이 있었고 다섯 처녀는 등불을 들고 나가야 하는데 등불에 기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름이 없는 등불을 가진 다섯 처녀는 알맹이가 없는 겉모습만 가진 위선적인 믿음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겉보기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진실한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심판이 없지만 믿음이 없거나 가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도 믿음이 없는 사람을 심판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똑같이 사명을 주셨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사명을 외면했기 때문에 그 믿음 없음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최후의 심판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가르는 심판이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은 엄격하게 다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할 때 양 즉,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과 염소, 즉 택함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구별을 합니다.
양과 염소의 심판 방법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양은 그가 세상 살면서 잘한 것만 가지고 칭찬하고 상을 줍니다. 염소는 이 세상에서 잘못한 것만 가지고 형벌을 받게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소자에게 물 한 모금 준 것만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소자에게 물 한번 주지 않은 것 가지고 지옥형벌을 받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심판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요3:18) “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모두 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재판장 되시는 예수님께 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도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때 가식적인 믿음을 가졌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우리는, 재판장 되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재판도 없고 정죄도 없습니다. 재판대 앞에 서지 않기 위해서 믿음을 점검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위대한 믿음을 주셨는데 진실한 고백이 없이 가식적으로 믿는 척만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본문 2절 말씀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고 했습니다.
1)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라고 했습니다.
“너는”은 디모데를 위시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넓게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최후의 심판이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직접적으로, 교회의 성도들은 그 일에 힘을 합하여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전파해야 할 말씀은 그 성경의 핵심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이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경 말씀을 전하지 않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고 성경 말씀을 가지고 전도하고 선교합니다. 그런데 그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든 성경이 직간접적으로 복음을 향한 말씀인데 때로는 복음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의 사상이나 경험을 가르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할 때 루터나 칼빈 같은 개혁자들이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 교회를 개혁했습니다.
그런데 자칭 개혁주의자라고 하면서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말씀의 핵심인 복음으로 돌아오지 않고 성경의 율법이나 성경의 저급한 신비주의나 성경의 기복신앙으로 돌아가서 여전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고 방송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뜻있는 목회자들이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는 정부 당국에 항의하면서 예배 회복을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먼저 회개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강단에서 설교하는 사람의 입을 막고 설교를 들으러 오지 못하게 교회 문을 닫게 하시겠습니까?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말들을 설교라고 하니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일은 기회가 주어지든지 주어지지 않든지 언제나 해야 할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만한 좋은 때가 있고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나쁠 때가 있기도 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난하고 못살 때는 천국 복음 구원의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좀 살만해지니까 이제 천국 복음 구원의 복음은 인기가 없어졌습니다. 특별히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해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고 성경을 왜곡해서 설교라고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그런 세상을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런 세상의 형편과 상관없이 항상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할수록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고 최후의 심판은 복음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이 세상의 삶은 짧고 곧 끝나기 때문입니다.
3)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으며 가르치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참으면서 계속해서 복음을 믿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쉽게 교회에 오지 않으니까 다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교회에 오게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만 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되어서 사람들 앞에서 칭찬이야 받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을 얻게 하는 사업장일 뿐이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는 예수님의 교회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일은 모두 비슷한 뜻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깨달아 알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경책은 죄인임을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는 복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계하라는 말은 경책과 비슷한 말입니다. 죄는 최후의 심판을 받는 아주 위험한 것임을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호되게 책망을 해서 최악의 경우인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일을 면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권하라는 것은 아주 강하게 책망하면서도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책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르도록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을 설명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성경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을 통한 구원이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세상의 모든 사람이 슬피 울며 후회하며 부들부들 떨면서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복음을 믿는 자들은 그 최후의 심판을 받지 않고 기뻐서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이런 귀하고 엄청난 복음을 믿고 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가족 친척 친구 이웃에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기뻐 뛸 모습을 생각하면서 참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세상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믿는 우리에게 주신 엄한 명령이 있다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