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14)
본문 : 벧전 1:23-25
제목 :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이 말씀이니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복된 소식이 무엇일까요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이 있다는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참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회갑 같은 잔치 집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잔치할 때는 음식들을 많이 차렸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병을 낫게 해 주는 약이나 병원이 있다는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약장사들이 들어오면 엉터리 가짜약인 줄 알면서도 몸에 좋다고 하니까 그냥 속아서 약들을 사다 먹었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는 먹을 것이 많이 흔해졌고 또 의료보험 제도도 잘 되어 있어서 옛날처럼 그렇게 먹을 것이나 치료약에 매달리지는 않습니다.
잔치를 해도 먹을 것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은 별로 없고 특효약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교회도 과거에는 그런 세상의 형편들을 따라서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교회에 오면 부자가 된다. 성공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정말 잘 살 수 있다. 라고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실지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부자들이 되었습니다.
또 병자들은 많고 병원 문이 높을 때는 신유집회들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신유은사를 받은 사람이 집회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기도해서 병을 고친다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었고 실제로 기도해서 불치병을 고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교회에 사람만 많이 모이면 되고 그래서 선한일 많이 하면 됐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성공을 하고 결과적으로 한국교회가 부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과정에서 교회가 전해야 할 진짜 복음은 변질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진짜 복음이 그 빛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해야 하는 기독교의 근본정신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지나치게 강조하여서 마치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가르침인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사람들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나는 것은 이런 잘못된 복음 때문에 진짜 받아야 할 것은 받지 못하고 진짜 알아야 할 진리는 알지 못하고 진짜 복음은 맛보지 못하고 겉에서만 맴돌다가 떠나는 것입니다.
이미 먹을 것도 많고 이미 병원에도 마음껏 갈 수 있고 이미 나름대로 성공을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교회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더 이상 그런 부스러기에 매달리지 말고 진짜 복음을 전해야 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가 세속화 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본래의 말씀대로 천국의 복음을 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한 기쁜 소식이 곧 이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쁜 소식이 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이 무엇인지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복음은 우리가 거듭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다 썩어질 씨로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납니다.
여기 썩어질 씨로 태어난다는 것은 부정모혈(父精母血)로 즉 아버지의 뼈와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부모님을 통해서 부모님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모님이 그렇듯이 우리의 부모님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죽어서 땅 속에 묻히고 썩어야 할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 말씀에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육체와 육신으로 살면서 누리는 아름다운 것들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벚꽃이 피고 지는 철을 우리가 통과하고 있습니다.
벚꽃이 만개할 때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도 다 포송 포송하고 예쁘고 수많은 꽃들이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날이 그저 일주일이나 열흘쯤밖에 안 됩니다.
폈는가 싶어서 가보면 금방 져 버리고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물론 꽃이 피고 지는 것 보다는 조금 시간이 길기는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영광도 쉽게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처녀총각 때 보면 참 건강하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왜 꽃 같은 청춘 때 결혼을 하는가. 했더니 그 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든 노처녀 노총각이 갈수록 결혼하기가 힘이 드는 것은 그 모습이 점점 시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처녀총각 때는 죽고 못 살더니 결혼 한 다음에는 그 사랑이 시들시들해 지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 시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출세를 했다고 해도 항상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 직장에서도 쫓겨나고 권력도 없어지고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최고 높은 자리인 대통령도 몇 년하고 나니까 힘을 잃고 서글퍼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존경하고 섬기던 석가모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석가가 예수님처럼 부활은 하지 못해도 뭔가 우리들 같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친구 집에 갔다가 돼지고기를 먹고 설사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설마 그런 분이 고기를 드셨겠는가? 그게 아니고 독버섯을 잘 못 먹고 식중독으로 죽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돼지고기를 먹었든지 독버섯을 먹었든지 어쨌든 좀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기 자신도 그깟 음식하나 잘 못 먹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복을 달라고 빌고 다니고 뭔가 배울 것이 있다고 뒤를 따르고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다시 났다고 해도 또 다시 이런 연약한 모습으로 거듭난다면 거듭남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몸이라도 계속해서 다시날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조금 다행한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모르고 한번이니까 이렇게 살지 두 번 세 번 또 이렇게 살라고 하면 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이런 썩을 씨로 다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다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여기 썩지 아니할 씨란 우리가 지금 가진 이런 생명과는 다르게 영원한 생명을 가진 씨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차피 한 번씩은 다 죽겠지만 우리 속에 있는 거듭난 생명은 영원히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완전하고 신비한 몸으로 다시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복음입니다.
우리가 가진 복된 소식은 우리가 가진 기쁜 소식은
이 세상에 살면서 좀 건강하게 좀 부자로 좀 성공적으로 잘 살수 있다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한 세상에서 완전한 몸으로 정말로 행복하게 정말로 즐겁게 정말로 신나게 살 수 있는 생명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보장이 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복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2.복음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23절 말씀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이 큰 축복입니다.
거듭난 것이 다시 죽고 썩어지는 씨가 아닌 썩지 아니하는 씨로 거듭난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더 큰 복이 되는 것은 그 거듭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이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방법이나 아니면 사람 편에서 어떤 선한 일을 하거나 고행을 하여 거듭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말씀이라는 뜻보다는 더 심오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 말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에 “로고스”(λογοs)라는 단어입니다.
로고스가 단순히 말씀으로 번역이 되지만 이 단어에는 아주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열면 이 말씀에 대하여 처음부터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라고 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가 즉 그 말씀 즉 로고스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만물이 하나도 빠짐이 없이 다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바로 태초부터 계셨고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원래 헬라인들 사이에서 이 로고스라는 말은 `원리, 이성, 정신`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순서대로 진행되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되고 한해가 바뀌고, 아침이 되면 저녁이 되고,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고,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거두고 이런 우주의 조화들을 보면서 한 원리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리를 가리켜 `로고스`라고 했던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창세기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 말씀 즉 `로고스`를 지혜요, 능력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말씀으로 번역된 로고스는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지혜요 능력이요 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고 전하는 이 복음은 사람들의 말이 아닙니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진실도 없는 그런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진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그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천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시는 그 근본 원리인 말씀으로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몸소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거듭남이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시고 그 몸으로 승천을 하심으로 우리에게 거듭난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지혜롭고, 가장 큰 능력이 있으며, 우주 만물의 근본 원리가 적용이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신 확실성이 있는 이 말씀으로 이 로고스로 우리를 거듭나게 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복음은 세세토록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4-25절 말씀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거나 없어지거나 쇠약하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이 언제나 한결같이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언제나 같은 능력으로 우리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3:19절 말씀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인생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거짓말도 많이 하고 말 하고도 후회하면서 그 말을 바꾸고
굳게 약속을 하고도 실행을 하지 않는 일이 많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4-35)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 이번에는 꼭 그대로 하려고 했는데 형편이 좀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네. 다음에 보세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아 오늘 꼭 빌린 돈을 갚으려고 했는데 돈을 줄 사람이 안 나타나서 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합니까. 돈이 거짓말을 하지…….
이런 말 한두 번 들어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 사정이 많은지 어찌 그리 핑계도 많은지 약속한번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없는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줄 알고 믿지 못하고 삽니다.
사람들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 변함이 없고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하고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 밀어놓고 사람들의 말만 앞세우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교회의 설교들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간곳없고 사람들의 이야기만 즐비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그 읽은 성경 본문과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을 설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부 자기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인용할 뿐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제법 하는 것 같지만 십자가의 복음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정신과 오히려 반대가 되는 이야기들을 설교랍시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렇게 마감을 합니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한 복음이 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도 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것이 그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썩지 않을 씨로 우리는 거듭났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세토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 벧전 1:23-25
제목 :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이 말씀이니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복된 소식이 무엇일까요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이 있다는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참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회갑 같은 잔치 집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잔치할 때는 음식들을 많이 차렸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병을 낫게 해 주는 약이나 병원이 있다는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약장사들이 들어오면 엉터리 가짜약인 줄 알면서도 몸에 좋다고 하니까 그냥 속아서 약들을 사다 먹었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는 먹을 것이 많이 흔해졌고 또 의료보험 제도도 잘 되어 있어서 옛날처럼 그렇게 먹을 것이나 치료약에 매달리지는 않습니다.
잔치를 해도 먹을 것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은 별로 없고 특효약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교회도 과거에는 그런 세상의 형편들을 따라서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교회에 오면 부자가 된다. 성공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정말 잘 살 수 있다. 라고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실지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부자들이 되었습니다.
또 병자들은 많고 병원 문이 높을 때는 신유집회들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신유은사를 받은 사람이 집회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기도해서 병을 고친다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었고 실제로 기도해서 불치병을 고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교회에 사람만 많이 모이면 되고 그래서 선한일 많이 하면 됐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성공을 하고 결과적으로 한국교회가 부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과정에서 교회가 전해야 할 진짜 복음은 변질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진짜 복음이 그 빛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해야 하는 기독교의 근본정신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지나치게 강조하여서 마치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가르침인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사람들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나는 것은 이런 잘못된 복음 때문에 진짜 받아야 할 것은 받지 못하고 진짜 알아야 할 진리는 알지 못하고 진짜 복음은 맛보지 못하고 겉에서만 맴돌다가 떠나는 것입니다.
이미 먹을 것도 많고 이미 병원에도 마음껏 갈 수 있고 이미 나름대로 성공을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교회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더 이상 그런 부스러기에 매달리지 말고 진짜 복음을 전해야 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가 세속화 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본래의 말씀대로 천국의 복음을 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한 기쁜 소식이 곧 이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쁜 소식이 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이 무엇인지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복음은 우리가 거듭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다 썩어질 씨로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납니다.
여기 썩어질 씨로 태어난다는 것은 부정모혈(父精母血)로 즉 아버지의 뼈와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부모님을 통해서 부모님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모님이 그렇듯이 우리의 부모님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죽어서 땅 속에 묻히고 썩어야 할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 말씀에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육체와 육신으로 살면서 누리는 아름다운 것들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벚꽃이 피고 지는 철을 우리가 통과하고 있습니다.
벚꽃이 만개할 때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도 다 포송 포송하고 예쁘고 수많은 꽃들이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날이 그저 일주일이나 열흘쯤밖에 안 됩니다.
폈는가 싶어서 가보면 금방 져 버리고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물론 꽃이 피고 지는 것 보다는 조금 시간이 길기는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영광도 쉽게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처녀총각 때 보면 참 건강하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왜 꽃 같은 청춘 때 결혼을 하는가. 했더니 그 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든 노처녀 노총각이 갈수록 결혼하기가 힘이 드는 것은 그 모습이 점점 시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처녀총각 때는 죽고 못 살더니 결혼 한 다음에는 그 사랑이 시들시들해 지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 시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출세를 했다고 해도 항상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 직장에서도 쫓겨나고 권력도 없어지고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최고 높은 자리인 대통령도 몇 년하고 나니까 힘을 잃고 서글퍼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존경하고 섬기던 석가모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석가가 예수님처럼 부활은 하지 못해도 뭔가 우리들 같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친구 집에 갔다가 돼지고기를 먹고 설사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설마 그런 분이 고기를 드셨겠는가? 그게 아니고 독버섯을 잘 못 먹고 식중독으로 죽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돼지고기를 먹었든지 독버섯을 먹었든지 어쨌든 좀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기 자신도 그깟 음식하나 잘 못 먹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복을 달라고 빌고 다니고 뭔가 배울 것이 있다고 뒤를 따르고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다시 났다고 해도 또 다시 이런 연약한 모습으로 거듭난다면 거듭남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몸이라도 계속해서 다시날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조금 다행한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모르고 한번이니까 이렇게 살지 두 번 세 번 또 이렇게 살라고 하면 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이런 썩을 씨로 다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다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여기 썩지 아니할 씨란 우리가 지금 가진 이런 생명과는 다르게 영원한 생명을 가진 씨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차피 한 번씩은 다 죽겠지만 우리 속에 있는 거듭난 생명은 영원히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완전하고 신비한 몸으로 다시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복음입니다.
우리가 가진 복된 소식은 우리가 가진 기쁜 소식은
이 세상에 살면서 좀 건강하게 좀 부자로 좀 성공적으로 잘 살수 있다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한 세상에서 완전한 몸으로 정말로 행복하게 정말로 즐겁게 정말로 신나게 살 수 있는 생명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보장이 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복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2.복음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23절 말씀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이 큰 축복입니다.
거듭난 것이 다시 죽고 썩어지는 씨가 아닌 썩지 아니하는 씨로 거듭난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더 큰 복이 되는 것은 그 거듭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이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방법이나 아니면 사람 편에서 어떤 선한 일을 하거나 고행을 하여 거듭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말씀이라는 뜻보다는 더 심오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 말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에 “로고스”(λογοs)라는 단어입니다.
로고스가 단순히 말씀으로 번역이 되지만 이 단어에는 아주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열면 이 말씀에 대하여 처음부터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라고 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가 즉 그 말씀 즉 로고스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만물이 하나도 빠짐이 없이 다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바로 태초부터 계셨고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원래 헬라인들 사이에서 이 로고스라는 말은 `원리, 이성, 정신`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순서대로 진행되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되고 한해가 바뀌고, 아침이 되면 저녁이 되고,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고,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거두고 이런 우주의 조화들을 보면서 한 원리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리를 가리켜 `로고스`라고 했던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창세기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 말씀 즉 `로고스`를 지혜요, 능력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말씀으로 번역된 로고스는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지혜요 능력이요 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고 전하는 이 복음은 사람들의 말이 아닙니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진실도 없는 그런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진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그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천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시는 그 근본 원리인 말씀으로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몸소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거듭남이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시고 그 몸으로 승천을 하심으로 우리에게 거듭난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지혜롭고, 가장 큰 능력이 있으며, 우주 만물의 근본 원리가 적용이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신 확실성이 있는 이 말씀으로 이 로고스로 우리를 거듭나게 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복음은 세세토록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4-25절 말씀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거나 없어지거나 쇠약하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이 언제나 한결같이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언제나 같은 능력으로 우리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3:19절 말씀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인생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거짓말도 많이 하고 말 하고도 후회하면서 그 말을 바꾸고
굳게 약속을 하고도 실행을 하지 않는 일이 많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4-35)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 이번에는 꼭 그대로 하려고 했는데 형편이 좀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네. 다음에 보세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아 오늘 꼭 빌린 돈을 갚으려고 했는데 돈을 줄 사람이 안 나타나서 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합니까. 돈이 거짓말을 하지…….
이런 말 한두 번 들어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 사정이 많은지 어찌 그리 핑계도 많은지 약속한번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없는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줄 알고 믿지 못하고 삽니다.
사람들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 변함이 없고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하고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 밀어놓고 사람들의 말만 앞세우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교회의 설교들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간곳없고 사람들의 이야기만 즐비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그 읽은 성경 본문과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을 설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부 자기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인용할 뿐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제법 하는 것 같지만 십자가의 복음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정신과 오히려 반대가 되는 이야기들을 설교랍시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렇게 마감을 합니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한 복음이 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도 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것이 그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썩지 않을 씨로 우리는 거듭났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세토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