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16)
본문 : 딤후 2:20-21
제목 :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20.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언제부터인가 금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세상에 나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서 좋은 가정과 좋은 환경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가난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어렵고 힘든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처음 태어날 때부터 잘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나누어진다는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평합니다. 왜 이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비슷한 경우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금그릇이나 은그릇처럼 귀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반대로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처럼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릇들도 태어날 때부터 그러니까 만들어질 때부터 금이나 은그릇으로 나무나 질그릇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슨 그릇으로 태어났는가와 상관없이 주인이신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주님의 일에 거룩하게 귀하게 합당하게 쓰임 받고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본문 20절에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큰 집”이 교회를 말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저런 그릇들처럼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귀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 교회의 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가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좀 귀한 일도 있고 천하게 생각되는 일도 있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대로 다양한 일들을 맡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 가운데는 ‘큰 집’이 교회라는 해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을 일꾼으로 보고 금이나 은그릇은 부자들이 와서 헌금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것으로 봅니다.
금 그릇이나 은그릇 같은 사람은 좋겠지만 나무나 질그릇 같은 사람은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잖은 일이나 하고 칭찬도 받지 못하는 서글픈 사람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성도들을 일꾼으로 보지 않습니다. 교회의 성도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도로서 헌신하고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도는 교회의 일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며 의롭다고 인정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돈 받고 일하는 일꾼이나 천하게 종노릇이나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그런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신분의 차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큰 집”을 교회 밖의 온 세상을 말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야말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귀하고 천한 일이란 특별히 구원에 관하여 말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특별히 본문 앞에서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선택에 관련되어서 해석하면 귀한 그릇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을 말하고 천한 그릇은 하나님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말씀하고 있는 로마서 9장과 연관해서 해석을 하면 “큰 집”을 온 세상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선택을 받은 사람과 버림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히 여기지 않고 버리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불공평하게 하시느냐고 원망을 합니다. 다 똑같이 대하셔야지 어떤 사람은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미워하고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망하고 따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 9:20-21)라고 했습니다.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귀히 쓸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천히 쓸 그릇을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는데 어떤 인간은 귀히 쓸 그릇 즉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을 만들기도 하시고 그냥 내버릴 천한 그릇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이고 진노의 대상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엄청나게 항의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이 세상에서 똑바르게 살고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들은 버림받은 사람이고 못나고 좋은 일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마도 단체로 몰려와서 시위를 하고 난리를 칠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불공평하시냐고 항의를 할 것이고 자신이 이런 차별을 받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라고 반항을 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을 잘 모르니까 그냥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복음 전파자들을 통해서 들려 나오는 소리들을 가끔 들으면서도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는가 하면서 믿지를 않습니다.
어차피 안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알아도 그렇게 살다가 형벌을 받아야 하고 몰라도 그렇게 살다가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알고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모르고 사는 것이 다행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얼마나 감격하고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잘 모르는 사람처럼 무감각하게 살고 세상 사람처럼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믿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보면 별 볼 일 없는 나무 그릇이나 깨지기 쉬운 흙으로 만든 질그릇처럼 천하게 보이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 보이는 금이나 은그릇 같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시는 그릇 즉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을 사람으로 선택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한 우리를 선택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보배로운 믿음을 금 그릇에 담지 않고 깨지기 쉽고 천한 질그릇에다가 담아주셨다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착한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지 않고 보잘것없고 나약한 사람들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구원의 능력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착한 사람이 자신의 행함이나 의로움을 가지고 구원을 받으면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공로로 받는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 선한 일도 하지 못한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받으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인간입니다. 늙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연약한 인간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이렇게 온 세상이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자신이 금이나 은그릇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연약한 인간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그 은혜에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러 가지 형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서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본문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20절 말씀을 이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금이나 은그릇같이 귀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나무나 질그릇같이 천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귀하게 쓰는 그릇”이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을 자기 스스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자기 스스로 깨끗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이런 것에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무엇에서 깨끗해야 하는가 하면 “이런 것에서” 깨끗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14절에서 지적한 “망령되고 헛된 말”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말하는 것이고 옳게 분별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의 핵심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진리의 핵심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 복음을 무시하고 다른 복음 거짓 복음을 전하고 따르는 것을 망령되고 헛된 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반대되는 망령되고 헛된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입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떠나서 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일입니다.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금이나 은그릇이든지 나무나 질그릇이든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조건은 그런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즉 복음을 거부하는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면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먼저 거룩한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사람이란 세상에서 특별히 구별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 된 세상에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교회로 불러내서 교회를 중심으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는 것을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지만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멸망 받을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됩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사는 것은 시시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된 사람으로 구별하여 따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한 무리 즉 성도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다른 사람입니다. 달라도 엄청나게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탄의 종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복락을 누리며 영원토록 살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흉악한 죄인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멸망당할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악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자기 이익을 챙기는 거짓 선생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실컷 이용만 당하고 나중에 버림을 받고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합당하게 요긴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악역을 담당하거나 일하고 벌 받고 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정말로 소중한 일을 기쁘고 즐겁게 보람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파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직접 복음을 들고 외치기도 하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살림을 맡기도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을 돕기도 하면서 함께 복음의 동역자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선한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은 모두에게 너무나 선한 일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을 받게 하는 이 일은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선하고 좋은 일입니다. 교회가 전도를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저 사람들이 우리를 유혹해서 데려다가 헌금하게 하고 이익을 보려고 한다고 오해합니다.
실지로 일부 타락한 교회 타락한 지도자들은 그렇게 합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들의 명예를 위해서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자기들이 영광을 받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를 그렇게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복음을 전하는 바른 교회는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원한 생명 이 세상의 그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것을 그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는 금이나 은그릇처럼 귀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나무나 질그릇처럼 천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비교적 나무나 질그릇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선택해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담아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비록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망령되고 헛된 말에서 떠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일을 합당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며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최고의 선한 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고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교회 일에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