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50)
본문 : 딤전 6:20-21
제목 :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0.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올해 첫 주부터 디모데전서 강해 설교를 시작해서 마지막 주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지루하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비슷한 주제로 말씀을 드리니까 좀 지루하시기는 했겠지만, 교회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큰 도움이 되셨을 줄 믿습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머물러 목회를 하게 될 디모데에게 목회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들을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후서를 목회 서신이라고 하고 목회를 할 목회자들이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과목입니다.
성도님들은 목회자는 아니지만 교회에서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셨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때 바울의 가르침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에 교회의 핵심 교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정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일입니다.
디모데전서를 시작하면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십니까?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교훈은 가짜 교훈 거짓 교훈을 말합니다. 바울이 가르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반대되는 거짓 교리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짓 교훈이 아닌 올바른 교훈은 금년에 우리 교회가 표어로 삼고 있는 말씀인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딤전1:11)에서 알 수 있듯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는 교훈이 올바른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는 교훈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것이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맡기고 전하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그 복음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전서를 마치면서 앞서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본문 20절에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부탁한 것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부탁한 것”이라고 번역해서 그저 작은 부탁을 한 것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탁”은 “맡은 일”, “맡기신 임무”, “맡겨진 진리”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사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키라”는 말도 이렇게 행하라는 말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보다 “파수하다”, “감시하다”, “보존하다”라는 말로 번역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자신이 맡은 임무가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도록 잘 감시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교회에 부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교회에 맡기신 임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반드시 간직하고 지켜야 할 그 임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위탁하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율법을 지키고 똑바로 살게 하는 사명도 교회가 받은 사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원리를 가르쳐서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일도 교회의 사명입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살게 하는 것도 교회가 받은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명보다 정말로 중요한 핵심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입니다. 주변 사람에게 또 멀리 다른 나라까지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가 받은 사명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명은 그 복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 복음이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고 그대로 세상 모든 사람에게까지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교회가 받은 핵심 사명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합니다. 어떤 것은 그것이 향상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아주 나쁜 방향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변화되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변질되어서 나쁜 것도 있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만들고 그 품질을 점점 향상 시켜서 옛날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편리한 것들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자동차는 너무나 편리합니다. 아마도 지금은 자동차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동차의 공해로 인해서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지구가 자멸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인해서 다치는 사람 평생 불구로 사는 사람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근 통계에 의하면 1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5천 명 정도라고 합니다. 근 1년간 이렇게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사망한 사람은 8백여 명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차량뿐이겠습니까? 인간이 편하게 살기 위해서 개발한 것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차라리 변화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았으면 더 오랫동안 편하게 잘 살았을 것입니다.
교회의 교리도 2천 년을 지나면서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잘 몰랐던 것을 성경을 연구하여 잘 알게 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연구가 오히려 신앙을 변질시킨 것들이 더 많습니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만든 신학이나 교리들이 신앙의 본질을 변질시켜버린 것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몰라도 성경의 원리를 잘 몰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그 믿음만 있으면 되는데 그것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교리가 복음을 떠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적을 연구한 사람들이 은사 운동을 하면서 십자가의 복음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에서 바르게 사는 법을 연구한 사람들이 바르게 살기 운동을 하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에서 이 땅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법을 연구한 사람들이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 운동을 하면서 천국 복음을 잊고 살게 만들었습니다.
회개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이 잘못을 회개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회개 자체에 중심을 두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시하게 만들었습니다. 부흥 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심령부흥을 강조하여 신앙이 부흥되게 했지만 결국 그 부흥이 사람 숫자의 부흥 교회 크기의 부흥으로 변질되게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리라고 해도 아무리 좋은 삶의 변화라고 해도 아무리 인간답게 바르게 잘 사는 운동이라고 해도 그것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복음과 다르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커지고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과 다른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우리를 멸망에 빠지게 하는 악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가 맡은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그 복음을 믿는 일입니다. 그 복음이 없는 것은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좋아 보여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본문 20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우리가 끝까지 변질되지 않도록 지켜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의 진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지키는 방법이 망령되고 헛된 말을 피하는 것이고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반대하는 모든 말들이 망령된 말이고 헛된 말이고 거짓된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이라고 했습니다.
‘망령되고’란 하나님을 모독하는 세속적인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거부하거나 복음과 반대되는 교리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무시하고 이 세상에서 더 잘살자고 하는 것은 천국을 건설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천국을 부인하거나 천국에서의 삶을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천국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똑바로 살자고 하면서 마치 믿음이 아닌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똑바로 살 수 없고 인간의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그 죄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선행 몇 번 한 것 가지고 사람들 보기에 겉으로 착한 척 한 것 가지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하신 율법을 잘 지키고 좋은 일 하면서 산다고 하면서 자신이 똑바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베푸시는 은혜를 무시하고 그런 위대한 일을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헛된 말”은 헛된 잡담이나 공허한 수다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고 헛되게 논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는 것을 말합니다. 웃기는 이야기나 하고 농담이나 하면서 그 귀한 설교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시간에 웃기는 이야기 재미있는 세상 이야기를 하면 성도들이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들은 설교를 성도들을 웃기는 일에 많이 할애합니다.
목회자들 모아놓고 세미나를 하면서 어떤 유명한 목사님을 강사로 모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산속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왔다고 해서 은근히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참 실망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연구할 것이 없어서 사람 웃기는 방법을 연구하고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웃기는 말을 잘하는지 며칠 동안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그렇게 웃기는 이야기나 기록된 책입니까? 죄에 대한 형벌이 그렇게 웃기는 일일까요? 그 영원한 죄악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는 일이 그냥 웃기는 정도밖에 안 되는 일일까요?
설교가 재미있어요? 그러면 설교자가 엉뚱한 소리를 하든지 여러분이 그 뜻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 앞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울어야 합니다. 흉악한 범죄자에 불과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앞에서 감격하며 감사하며 울어야 합니다.
세상 잡담 세상의 가벼운 농담 웃기는 이야기 때문에 강단이 병들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변질되고 그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피하는 것 배격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복음을 믿는 위대한 믿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거짓된 지식”이란 사이비 지식, 진리를 떠난 지식, 잘못된 신학이라는 뜻입니다. 이단들도 성경 말씀에서 자기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내세웁니다. 그들이 성경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더 깊이 아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이비 이단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성경의 핵심인 복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핵심인 복음에서 떠난 것이고 잘못된 신학 즉 성경을 보는 눈이 잘못된 데서 나온 잘못된 교리라는 것입니다.
피하라고 하는 것은 그들과 상종하지 말고 피하여 도망가라는 뜻도 있겠지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물리치라는 말입니다. 그들의 망령되고 헛된 말을 그들의 잘못된 신학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물리쳐서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사람이 많이 몰려오고 그들에게 돈을 갖다 주는 사람이 많고 그들이 인기가 많아 보인다고 거기 휩쓸리지 말고 그들을 따라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맡은 믿음이 우리가 받은 사명이 세상의 그런 시시한 것과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우리가 가진 십자가의 복음이고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겨두신 최고의 것입니다.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에게 가장 귀한 최고의 보화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본문 21절에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망령된 말을 하고 헛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그것이 좋은 일인 줄 알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개그맨이 방송에서 “사람들이 옳은 말을 좋아할 것 같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좋아할 것 같아?”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 대답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옳은 말인지 옳지 않은 말인지보다 누가 그 말을 하는가에 관심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좌파와 우파가 확실하게 갈라져서 대결하고 있는 국면입니다. 좌파들은 좌파가 하는 말은 그것이 옳든지 옳지 않든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파들은 우파가 하는 말은 그것이 옳든지 옳지 않든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자기들이 좋아하는 파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좋아하고 따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그 목사가 바른말을 하는지 망령된 말 헛된 말을 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인심이 좋고 마음이 좋은 사람이고 자기에게 잘 해주면 무조건 아멘입니다.
특별히 이단의 교주들은 아무리 헛소리를 해도 이미 그에게 미혹된 사람들은 무조건 아멘하고 따릅니다. 그것이 말이 되는 말이든지 말도 안 되는 말이든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좋은 말로 들립니다.
분별없이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은 이미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은 이미 믿음에서 떠난 불쌍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의 말씀을 바로 알고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가르쳐서 성도들을 바른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사람은 아주 사악한 사람입니다.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마지막 인사가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으라고 기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디모데에게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값을 받는 것도 아니고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자격을 가지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조건 값없이 거저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값없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나 대신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금년에도 한 해 동안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핵심이고 목회자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은 곳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해서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을 얻게 하는 곳입니다.
이 복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라도 거짓된 지식으로 반론을 하는 사람이 많을지라도 그들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을 지켜야 합니다. 복음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