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이 01)
본문 : 요이 1:1-3
제목 :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오늘부터 요한이서 강해설교를 시작합니다.
요한이서도 요한일서처럼 서신의 형식을 취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서신에는 발신자가 있고 수신자가 있습니다.
발신자는 “장로”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장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도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수신자인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의견이 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클렉테 퀴리아(εκλλεκτη κυρια)라고 하는데 이 말이 사람의 이름으로 쓰인 것이라고 보고 에클렉테와 퀴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라고 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개인이 아닌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에서 교회를 가리킬 때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은 호칭을 쓸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견해 중 후자 즉 어떤 개인이 아닌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 중에서도 예루살렘이나 큰 도시에 있는 오래 된 큰 교회가 아니라 이제 막 시작을 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는 오래 되었고 또 사도들과 같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아는 지도자가 있어서 교회가 바른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작은 교회는 오랜 전통도 없고 지도자도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기 쉬운 형편에 처한 교회였습니다.
그런 어려운 형편에 처한 교회에 요한일서에 기록했던 말씀들을 요약해서 다시 한 번 격려를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지는 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서신의 형식을 빌려서 발신자가 있고 수신자가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만 그 때 누가 누구에게 썼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그 시대의 형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진위를 더 잘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요한이서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새로 시작하는 교회, 연약한 교회, 흔들리기 쉬운 작은 교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바른 길로 가게 하시려고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읽은 1절에서 3절의 말씀은 문안인사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편지를 쓰면서 본론을 말하기 전에 먼저 안부를 묻거나 하는 인사 말씀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아도 될 만한 그런 말씀에 해당합니다.
장로가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로 인사를 하고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살펴보면 특별한 한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라고 하는 단어가 각 절마다 한 번씩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에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라고 했습니다.
2절 말씀에도 “진리를 인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3절 말씀에도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 말씀에도 “진리에 행하는 자를”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이 “진리”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말씀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진리가 무엇인지, 특별히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진리는 거짓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참이라는 뜻입니다.
진리라는 말을 철학적으로 복잡하게 설명을 하려면 끝이 없는 말입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쉽게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거짓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잘못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을 말하지만 그것이 거짓일 때도 많이 있습니다.
진리란 고의로나 과실로나 잘못된 말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말 정말 사실을 말하는 것을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진리는 개인이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지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사과를 먹을 때도 그 맛의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감정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각각 생각을 달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잘 교제를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른 것은 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누가 언제 보아도 옳은 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진리는 사람의 불완전한 지식과 반대되는 뜻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성경말씀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사람들의 지식은 완전하거나 불변하거나 정확하거나 오류가 없거나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은 우리가 가진 머리로 우리가 이해되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생각을 따른 것이지 그것이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불변하고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특별히 삼위 하나님을 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에는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시31: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을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또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요14:17)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성부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성자 예수님께서 진리가 되시며 성령님께서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강 진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아시겠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라고 했는데 진리 중에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리 중에 우리가 특별히 생각하고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야 할 진리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본문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라고 말씀하는 것은 진리가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 진리가 우리와 영원히 같이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성경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거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인 이 성경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핵심적인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의 중심인 예수님을 말합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란 복음의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길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진리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핵심적인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있는 말씀들이 다 소중한 진리임이 분명합니다.
어느 말씀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다 귀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보시면 다 보석 같고 너무나 귀한 말씀들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고 가장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할 진리란 가장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선한 것만 생각하다가 최선을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명예도 버리고 건강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선한 것을 위해서 최선의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지만 신앙을 잃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전부를 잃는다고 해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부자가 되는 법을 배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명예롭게 사는 법을 배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건강하게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배우지 않습니다.
또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다가 불순물을 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성도들이 우리가 영원히 함께해야 할 가장 소중한 진리 십자가의 복음에다가 여러 가지 잡동사니 불순물들을 많이 섞어서 참된 지리를 잘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기는 하는데 천국의 영생을 말하기는 하는데 거기에다가 이상한 것들을 함께 섞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진리의 중요성을 모르게 만들어 버리고 희석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큰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설교를 하는데 내용은 분명히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갑니다.
천국은 너무나 좋은 곳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좋은 곳입니다…….
참 모처럼 좋은 설교 하는 목사님이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다가 다른 말들을 섞어서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국에 가는 것이 복이라고 하면서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성공해서 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면서 잡동사니 복들을 영생의 복과 비슷하게 부각을 시킵니다.
또 그 설교하는 목사를 보니까 우리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르라고 외치는 목사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하얀 양복을 입고 긴 마이크를 잡고 고함을 지르며 외치는 모습이 온유와 겸손과는 거리가 먼 그런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외치기는 천국을 외치는데 자신은 이 세상에다가 최고의 것들을 고집하고 웅장하게 지상낙원을 세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건강하게 살자는 것이 뭐 잘못이라고 하겠습니까?
성공해서 부자로 살자는 것이 나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가 하얀 양복을 입거나, 빨간 양복을 입거나, 멋을 어떻게 부리거나, 마이크를 긴 것을 잡거나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 가장 소중한 십자가의 복음을 최고의 자리에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복음만을 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순물을 섞어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삶은 복음과 다르게 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진리란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을 다른 것과 섞거나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참으로 사랑을 받을 자
사도요한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 즉 작은 교회의 성도들을 참으로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성도들을 바라볼 때 가장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성도들이 진리 안에 있을 때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같이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을 볼 때 사랑스럽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실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실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사랑스러워질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할 때 그 말씀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거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라고 믿고 따를 때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따져보더라도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은 아직 죄 중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인 그대로를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때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헌금을 많이 해서 교회당도 크게 지어야 하고 봉사도 많이 해서 선한 일도 많이 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여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시고 성공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더 기뻐하시는 일은 더 사랑하시는 일은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을 중요하게 여기고 영원한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고 천국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가난할수록 천국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진리 안에서 천국을 사모하고 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3.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 있으리라
본문 3절 말씀에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진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함께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도 없고 영원토록 사랑 안에 거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한없는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같이 부족하고 못나고 어리석고 악한 인생이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가 동정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히 여기심은 우리의 삶에 평강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과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면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사실 이 세상의 성공이라는 것은 사람들과의 평화가 아닌 경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높이 올라갈수록 나로 인해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성공을 하면 할수록 적들이 많아집니다.
재벌 2세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성공을 한 정몽준 의원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분이 신문에 인터뷰한 것을 보니까 그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매일 밤 오징어 두 마리를 씹어서 먹는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고 보자고 벼르겠습니까?
그가 특별히 뭘 잘못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은 잘 된 사람을 못 보는 것입니다.
괜히 시비하고 괜히 배 아파하고 괜히 나쁜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사람들과의 평화를 누리려면 너무 출세하려고 너무 세상일에 성공하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돈을 많이 가지면 가난한 사람이 더 생기고 내가 너무 출세하면 실패와 좌절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려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할 진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온갖 거짓들 속에서 진실을 모르고 속아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거짓된 세상에서 진리를 바르게 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비록 세상의 눈으로 작은 교회이고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 영생의 복음을 우리가 알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이 진리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 요이 1:1-3
제목 :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오늘부터 요한이서 강해설교를 시작합니다.
요한이서도 요한일서처럼 서신의 형식을 취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서신에는 발신자가 있고 수신자가 있습니다.
발신자는 “장로”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장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도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수신자인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의견이 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클렉테 퀴리아(εκλλεκτη κυρια)라고 하는데 이 말이 사람의 이름으로 쓰인 것이라고 보고 에클렉테와 퀴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라고 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개인이 아닌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에서 교회를 가리킬 때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은 호칭을 쓸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견해 중 후자 즉 어떤 개인이 아닌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 중에서도 예루살렘이나 큰 도시에 있는 오래 된 큰 교회가 아니라 이제 막 시작을 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는 오래 되었고 또 사도들과 같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아는 지도자가 있어서 교회가 바른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작은 교회는 오랜 전통도 없고 지도자도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기 쉬운 형편에 처한 교회였습니다.
그런 어려운 형편에 처한 교회에 요한일서에 기록했던 말씀들을 요약해서 다시 한 번 격려를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지는 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서신의 형식을 빌려서 발신자가 있고 수신자가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만 그 때 누가 누구에게 썼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그 시대의 형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진위를 더 잘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요한이서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새로 시작하는 교회, 연약한 교회, 흔들리기 쉬운 작은 교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바른 길로 가게 하시려고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읽은 1절에서 3절의 말씀은 문안인사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편지를 쓰면서 본론을 말하기 전에 먼저 안부를 묻거나 하는 인사 말씀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아도 될 만한 그런 말씀에 해당합니다.
장로가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로 인사를 하고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살펴보면 특별한 한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라고 하는 단어가 각 절마다 한 번씩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에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라고 했습니다.
2절 말씀에도 “진리를 인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3절 말씀에도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 말씀에도 “진리에 행하는 자를”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이 “진리”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말씀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진리가 무엇인지, 특별히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진리는 거짓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참이라는 뜻입니다.
진리라는 말을 철학적으로 복잡하게 설명을 하려면 끝이 없는 말입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쉽게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거짓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잘못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을 말하지만 그것이 거짓일 때도 많이 있습니다.
진리란 고의로나 과실로나 잘못된 말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말 정말 사실을 말하는 것을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진리는 개인이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지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사과를 먹을 때도 그 맛의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감정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각각 생각을 달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잘 교제를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른 것은 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누가 언제 보아도 옳은 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진리는 사람의 불완전한 지식과 반대되는 뜻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성경말씀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사람들의 지식은 완전하거나 불변하거나 정확하거나 오류가 없거나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은 우리가 가진 머리로 우리가 이해되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생각을 따른 것이지 그것이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불변하고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특별히 삼위 하나님을 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에는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시31: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을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또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요14:17)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성부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성자 예수님께서 진리가 되시며 성령님께서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강 진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아시겠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라고 했는데 진리 중에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리 중에 우리가 특별히 생각하고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야 할 진리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본문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라고 말씀하는 것은 진리가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 진리가 우리와 영원히 같이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성경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거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인 이 성경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핵심적인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의 중심인 예수님을 말합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란 복음의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길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진리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핵심적인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있는 말씀들이 다 소중한 진리임이 분명합니다.
어느 말씀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다 귀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보시면 다 보석 같고 너무나 귀한 말씀들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고 가장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할 진리란 가장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선한 것만 생각하다가 최선을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명예도 버리고 건강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선한 것을 위해서 최선의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지만 신앙을 잃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전부를 잃는다고 해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부자가 되는 법을 배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명예롭게 사는 법을 배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건강하게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배우지 않습니다.
또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다가 불순물을 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성도들이 우리가 영원히 함께해야 할 가장 소중한 진리 십자가의 복음에다가 여러 가지 잡동사니 불순물들을 많이 섞어서 참된 지리를 잘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기는 하는데 천국의 영생을 말하기는 하는데 거기에다가 이상한 것들을 함께 섞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진리의 중요성을 모르게 만들어 버리고 희석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큰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설교를 하는데 내용은 분명히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갑니다.
천국은 너무나 좋은 곳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좋은 곳입니다…….
참 모처럼 좋은 설교 하는 목사님이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다가 다른 말들을 섞어서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국에 가는 것이 복이라고 하면서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성공해서 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면서 잡동사니 복들을 영생의 복과 비슷하게 부각을 시킵니다.
또 그 설교하는 목사를 보니까 우리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르라고 외치는 목사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하얀 양복을 입고 긴 마이크를 잡고 고함을 지르며 외치는 모습이 온유와 겸손과는 거리가 먼 그런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외치기는 천국을 외치는데 자신은 이 세상에다가 최고의 것들을 고집하고 웅장하게 지상낙원을 세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건강하게 살자는 것이 뭐 잘못이라고 하겠습니까?
성공해서 부자로 살자는 것이 나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가 하얀 양복을 입거나, 빨간 양복을 입거나, 멋을 어떻게 부리거나, 마이크를 긴 것을 잡거나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 가장 소중한 십자가의 복음을 최고의 자리에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복음만을 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순물을 섞어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삶은 복음과 다르게 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진리란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을 다른 것과 섞거나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참으로 사랑을 받을 자
사도요한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 즉 작은 교회의 성도들을 참으로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성도들을 바라볼 때 가장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성도들이 진리 안에 있을 때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같이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을 볼 때 사랑스럽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실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실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사랑스러워질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할 때 그 말씀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거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라고 믿고 따를 때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따져보더라도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은 아직 죄 중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인 그대로를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때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헌금을 많이 해서 교회당도 크게 지어야 하고 봉사도 많이 해서 선한 일도 많이 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여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시고 성공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더 기뻐하시는 일은 더 사랑하시는 일은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을 중요하게 여기고 영원한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고 천국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가난할수록 천국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진리 안에서 천국을 사모하고 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3.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 있으리라
본문 3절 말씀에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진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함께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도 없고 영원토록 사랑 안에 거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한없는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같이 부족하고 못나고 어리석고 악한 인생이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가 동정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히 여기심은 우리의 삶에 평강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과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면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사실 이 세상의 성공이라는 것은 사람들과의 평화가 아닌 경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높이 올라갈수록 나로 인해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성공을 하면 할수록 적들이 많아집니다.
재벌 2세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성공을 한 정몽준 의원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분이 신문에 인터뷰한 것을 보니까 그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매일 밤 오징어 두 마리를 씹어서 먹는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고 보자고 벼르겠습니까?
그가 특별히 뭘 잘못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은 잘 된 사람을 못 보는 것입니다.
괜히 시비하고 괜히 배 아파하고 괜히 나쁜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사람들과의 평화를 누리려면 너무 출세하려고 너무 세상일에 성공하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돈을 많이 가지면 가난한 사람이 더 생기고 내가 너무 출세하면 실패와 좌절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려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할 진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온갖 거짓들 속에서 진실을 모르고 속아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거짓된 세상에서 진리를 바르게 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비록 세상의 눈으로 작은 교회이고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 영생의 복음을 우리가 알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이 진리에 거하시기 바랍니다.